연평도 피격 등 북한의 역대급 도발 때도 분노는 했었으나 위기를 느끼지는 못했는데 지금은 위기감에 잠을 설칠 때도 있다. 북한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정부 때문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지난해 12월 CNN방송 인터뷰에서 북한의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의 기술이 입증되지 않았다는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되풀이하다가 '타조처럼 머리를 모래에 파묻고 있는 것은 아니냐?'라는 비아냥을 산 적이 있다. 우리 속설에도 비슷한 얘기가 있다. '매가 돌면 꿩이 엉덩이를 쳐든 채 머리만 수풀에 처박는다'라는 것이다. 둘 다 위험한 상황을 똑바로 보고 대처하는 게 아니라 눈만 가리면 되는 줄 아는 어리석음을 지적하는 것이다.

트럼프 미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들이 북한에 속아왔다며 '전략적 인내는 끝났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요즘 이 말을 트럼프 대통령뿐만 아니라 미국의 다른 고위 인사들도 입버릇처럼 되풀이 강조하고 있다. 지금까지의 압박 정책과는 다른 무엇인가를 준비하고 있다는 뜻으로 들린다.

따지고 보면 미국이 속은 것은 북한으로부터만이 아니다. 한국도 북한과 사실상 한 패가 되어 미국을 속여왔다. 김대중은 햇볕정책이라는 속임수를 부렸고, 노무현은 북한 핵개발을 변호해왔다. 미국으로서는 혹시나 하는 희망을 가졌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으나 한국 입장을 고려하여 '전략적 인내'를 해온 것이다.

이 판국에 한국이 또 동맹국 미국을 속이려 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운전수를 자임하며 미국과 북한 앞에서 곡예를 부리고 있다. 마치 타조나 꿩처럼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 들고 있다. 미국은 올림픽이라는 세계적 큰 행사에 잘못 책잡힐까 봐 조심하면서 올림픽 이후를 벼르고 있는 눈치가 역력하다. 북한은 북한대로 문 대통령을 이용하여 자신들이 처한 이 위기를 모면해보려는 속내가 분명해 보인다. 올림픽 이후가 점점 두려워진다.

내가 지나치게 민감한지는 모르겠으나 지금처럼 안보위기를 느껴본 것은 처음이다. 동해안에 북한 무장공비들이 출몰할 때도, 버마(미얀마)에서 북한 공작원들에 의해 장관들이 무더기로 폭사할 때도, 칼(KAL)기 폭파, 천안함 폭침, 연평도 피격 등 북한의 역대급 도발 때도 분노는 했었으나 위기를 느끼지는 못했는데 지금은 위기감에 잠을 설칠 때도 있다. 북한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 정부 때문이다. 동맹국과의 신뢰를 흔들고 북한과 영합하려는 움직임이 월남의 재판(再版)이 되는 게 아닌가 하는 우려가 점증되고 있다. 그래도 이 정부를 지지하는 국민들은 무엇을 믿고 있는지 신기할 따름이다.

타조나 꿩은 그게 최선으로 알고 있다가 부지불식(不知不識) 간에 잡혀 먹히면 그만이지만 사람은 다르다. '킬링필드'니 '보트 피풀'이니 하는 일들은 타조나 꿩의 세계에서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니다. 이를 직접 경험해봐야 알겠다면 이들은 타조나 꿩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