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상황을 기준으로 과거를 해석하려는 태도는 세계 어느 역사 학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친일 청산한다는 사람들의 행태를 관찰해 보면 두 개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 첫째는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해 달려드는 장면이고 다른 한 가지는 한국전쟁 당시 공산군들이 우익 인사들을 모아놓고 집단 총살하는 장면이다.

돈키호테는 자신이 정의의 사도라는 자기 도취에 빠진 사람이다. 풍차를 불의의 거인으로 착각하고 이를 무찔러야 하는 대상으로 착각한다. 친일청산을 외치는 무리들은 엄청난 반민족 전범을 처단하는 흉내를 내면서, 자신들은 그 반민족 전범들을 처단해야 하는 정의의 사도처럼 행세해 왔다. 백 번 양보하여 그 무리들을 정의의 사도라고 인정해 주자. 그렇다면 그들이 처단해야 할 인물들이 과연 친일 인명사전에 등재된 인물들인가.

친일청산에 목을 매는 무리들은 반민족 행위자를 모범적으로 처리한 나라로 프랑스를 외친다. 프랑스와 조선의 상황을 동일시하는 이런 사람들이 과연 역사 해석의 기본적인 컨텍스트를 살피기나 했는지 알 수 없다. 친일 청산론자들이 무차별적으로 4300명이 넘는 인물들을 불명예 스러운 사전에 등재시킨 것을 보면 가장 기본적인 조건조차 고려하지 않았음이 증명된다.

프랑스의 경우는 독일과 전쟁을 선포하고 거의 6년 동안 독일을 상대로 전쟁을 한 나라다. 그들이 청산한 것은 전쟁중 적군의 편에서 반인륜적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이다. 2차대전 중 프랑스 국민의 사망자만 60만 명이다. 군인이 21만 명 사망했으며 민간인이 39만 명이다. 민간인 39만 명이 반인륜적 전범들에 의하여 사망했다. 그 중에는 9만 명의 유태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프랑스의 민족 반역자들은 나치 정권이 16세 이상의 유태인들을 색출하라는 지침서를 위반하여 16세 미만의 어린이들까지 학살하는 데 앞장섰던 사람들이다. 이런 나라에서 전쟁이 끝나고 자국 시민을 학살하는 데 앞장섰던 반민족적 인륜 범죄자들을 단죄한 것과 일제 36년 동안 살기 위하여 몇 마디 한 것을 신문에서 찾아내 프랑스에서의 반민족 행위자(협력자:collaborators) 같은 수준으로 단죄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무리들이 제 정신이 있는 사람들인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몇 마디 한 것을 두고 마치 나치 전범이나 되는 것처럼 달려드는 모습에서 바로 돈키호테가 풍차를 향하여 돌진하는 장면이 연상되는 것이다.

한일합병 당시, 1차대전, 중일전쟁, 2차대전 등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로 있던 기간에 조선은 일본과의 전쟁을 선포한 일이 없다. 나라가 없었졌는데 누가 국가적 차원에서 누가 누구를 상대로 선전포고를 한단 말인가. 조선인의 입장에서 누가 아군이고 누가 적군인가에 대한 모호성, 즉 아이덴티티가 붕괴된 상황에서 조선인들은 자신들의 일상을 살아 갔다.

연합군이 아군이고 일본인이 적군이었다는 구분 설정은 2차대전이 끝난 후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좌파들이 자신들의 결론에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하여 등장시킨 것이 바로 임시정부의 대독(對獨). 대일(對日) 선전포고라는 문서다. 임시 정부가 선전포고를 했으니 적군과 아군의 개념은 분명했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하여 이 문서를 등장시킨 것이다.

그러나 임시 정부의 문서를 보면 그 당시 광복군의 숫자는 겨우 339명이었다. 그나마 광복군의 일원이었던 증언자에 의하면 이 숫자도 과장된 숫자라고 증언하고 있다. 장개석 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더 받으려는 것 때문에 아녀자들도 그 숫자에 포함시켰다는 증언이 있다. 임시 정부의 선전포고는 그 나름대로 의의가 있고 후세들의 칭송을 받아야 할 애국적 행동이었음은 별개로 현실적으로 그 같은 선전 포고가 조선인들에게 아군과 적군의 구분을 명확하게 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느냐 하는 문제는 별개다.

이 같은 기본 조건에 대한 고려도 없이 오늘의 상황을 기준으로 과거를 해석하려는 태도는 세계 어느 역사 학자도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 역사는 팩트가 아니고 해석이라고 말한 에드워드 카(Edward Carr)도 역사학자는 과거의 사실과 해석 사이에서 중립(Middle path)의 길을 걸으라고 말하고 있으며, 과거의 역사적인 인물과 끊임 없는 대화를 하라고 말한다. 과거의 역사적 인물과 대화를 하라는 말은 그 인물을 둘러싸고 있는 context를 이해하라는 말이다. 세계 어느 학자가 과거의 인물을 불러내 자의적 기준으로 단죄하고 죄를 물으라고 했던가?

친일 인명사전 편찬 경과에 대한 글을 보면, 150여 명의 교수와 학자들이 편찬위원을 맡고 180여 명의 근현대사 전공자들이 집필위원으로 참여했다고 하는데,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다. 친일 인명사전이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가장 먼저 검토해야 할 준거 기준(Reference)을 얼토당토 않은 프랑스식 사례를 되뇌이는 이들이 과연 역사 공부를 제대로 했는지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좀 비판적으로 말하면 이들의 행동은 학자의 태도가 아니라 패거리의 몰가치적 준동일 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시대 상황과 맞물려 있는 인사들의 언행과 그 배경을 이해하려면 우리와 유사한 시대상황에 있던 나라들을 Reference로 활용했어야 했다. 그 대표적인 나라가 대만이다. 대만은 우리보다 15년 먼저 일본과 합병을 했다. 전쟁을 통하여 단순 점령된 나라가 아니라 청일전쟁 후 시모노세키 조약에 의하여 일본에 양여된 나라다. 식민지가 되는 과정에서 일본과 전쟁을 하지 않은 것이 우리와 비슷하다. 그들의 삶과 일본에 대한 인식도 거의 유사했던 나라다.

대만에서 우리나라의 좌파식의 친일 청산 대상에 오른 인물은 한 명이다. 그 나머지는 2차대전 후 연합군에 의하여 진행된 전범 재판에서 전범으로 분류된 사람들이다. 다음 글에서 이에 대한 구체적인 글을 올리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