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또다시 나온 반디의 시집을 읽으며, 나는 반디는 역사에 길이 남을 문인이기도 하지만 옛날말로 하면 ‘영웅호걸’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서 한 가지 놓치지 않고 싶은 것이 있다. ‘반디 선생님’이라든가, ‘반디 작가님’이라든가 하는 호칭을 쓰지 않겠다. 반디라는 필명은 불을 달고 다니는 나비라는 반딧불에서 유래되었기 때문에 그 숭고한 의미를 전 세계가 아는 고유어로 불리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이다.)
북한은 호걸스러운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옳고 그름에 대한 정서가 깊고 무작정 순종하지 않는 체질로 배짱이 있고 담력이 있어 반항정신이 깊다.

 쉽게 한 가지 예를 들면, 북한에 유명작가 홍명희 선생님의 역사소설 《임꺽정》으로 만들어진 다부작 영화가 있는데 주인공뿐만 아니라 헐벗고 굶주리는 백성들이 힘을 합쳐 산에 숨어서 북한의 지금 같은 현실에 반항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북한정부는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고 사람들이 목숨건사도 하기 힘든 극한의 위기에 몰리자 곧 임꺽정에서처럼 인민항쟁의 위기가 닥칠까봐 당장에 이 영화 상영을 중지시켰고 영화의 주제가도 못 부르게 방침으로 묶어버렸다.
 여기에 “임꺽정”의 주제가를 적는다.
    
<나서라 의형제여

구천에 사무쳤네 백성들 원한소리
피눈물 고이였네 억울한 이 세상
산천아 말해다오 부모처자 빼앗기고
백성을 등쳐먹는 이 세상 어이 살리
나서라 의형제여, 악한무리 쓸어내고
가슴에 쌓인 원한 풀어보자>
 
 북한인민들이 왜 이 노래를 즐겨 부르는지, 북한정부가 왜 이 노래를 무서워하는 지는 가사만 들어보아도 알 수 있다. 북한인민들은 어려울 때일수록 이 노래를 무척 즐겨 불렀다. 그것은 겉으로 나타낼 수 없는 그들의 마음속 언어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인권불모지에 이런 영화가 있었다는 것이 다행이었다고 생각된다. 터칠 수 없는 피맺힌 한을 다행히도 이 노래가 감싸주었으니 말이다.
 
 나는 반디도 임꺽정 같은 호걸스러운 사람이 아닐까 생각한다. 소설, 시집들을 읽어보면 반디의 배포 유한 모습이 그대로 보인다. 어떻게 저 무서운 인권불모지에서 저렇게 천연덕스럽게 김씨 독재를 내려다보며 글을 쓸 수 있을 것인가. 원고를 그냥 가지고 있어도 무서운데 여기 한국에까지 배포되고 세계에까지 울려가니 그 배짱이야 말로 우리 민족이 낳은 놀랄만한 호걸이 아닐 수 없다. 김씨 독재는 지금 아마 많이 두려울 것이다. 인민전체의 분노를 구체적으로 드러낸 소설, 시를 독재자가 밟고 있는 현지에서 직접 써서 적국의 나라에서까지 읽혀진다는 게 독재자를 얼마나 압박할 것인가,  반디에게 참으로 감사하다. 이런 특이하고도 상상도 할 수 없는 하나의 혁명과도 같은 일은 누구나 할 수 없다.

나는 반디에 대해서 이렇게도 생각해 보았다. 북한독재자가 가장 무서워하는 언론의 자유를 북한현지에서 감쪽같이 누리고 있는 반디작가는 어찌 보면 지하에서라도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이것이 반디가 마음속에 굳히고 있는 삶의 기준이 아닐까, 두려움 속에서도 누리는 숨은 자유의 행복.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인권유린의 고통을 지치고 아플 때마다 한 자씩 써내려 가면 스스로 꿋꿋해지고 강해지는 게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그게 지금의 반디가 아닐까. “반디는 지금 인권이라는 불의 심지가 되어서 시간이 되면 악을 태워버릴 더 두텁고 강한 심지가 되는 순간이다.” 이렇게 반디의 행복의 가치를 상상해 본다.
  
나는 반디의 시집에 수록된 시의 한 편, 한 편을 숨을 죽이고 정말 핏방울을 짜내듯이 읽었다. 작가의 피와 뼈, 살이 그대로 녹아있는 한 글자 한 글자를 그대로 넘길 수 없었다. 물론 시에 담긴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놀라지 않았다. 우리 모든 탈북민들, 북한인민이 지금도 겪고 있는 평범한 일상이기 때문에 그리 놀랄 일이 아니었다. 다만 언제 이 불행이 끝날 것인가 하는 그 심연에서는 벗어날 수 없어서 타드는 가슴을 안고 책을 읽고 난 여운과 함께 한동안을 침묵 속에 앉아있었다.

반디의 시들은 독특한 서정적 세계로 줄달음쳐있다. 북한은 수십 년 동안 문단에서 김 부자 찬양을 서정시 위주로 일러왔기 때문에 반디의 서정적인 시의 수법이 당연한 거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더없이 독특함을 다시 한 번 말하고 싶다. 시의 구절구절에 깊은 서정이 그대로 녹아있다. 좀 더 특이한 것은 시들 속에 녹아있는 색채가 진하고 강한 비유, 은유들은 당초에 어느 시인도 노래하기 힘든, 반디만이 가져올 수 있는, 고유한 향기이다. ‘계모’, ‘김주석의 노래’, ‘오적타령’, ‘둘러리 타령’, ‘붉은 백성의 노래’, ‘꽃제비의 노래’ 등등. 거의 모든 시들에서 잘 표현되고 있으며, 한 많은 세상에 대한 한숨이 섞인 타령적인 서정시 형식으로 읽혀진다.

 시들을 부분적으로 분석해보면 ‘계모’에서는 노동당을 계모라는 비유로 신랄함을 보여주었고, ‘둘러리 타령’에서는 둘러리(들러리)라는 함축된 언어, 평범한 비유로 악의 세상을 통째로 드러내는 수법을 사용했다, ‘김주석의 노래’에서는 눈물 나는 유머, 또한 타령조로 오래도록 먹먹해지게 하는 서정적인 세계로 푹 빠져들게 한다. 모든 시들이 한결같다. 이 모든 시들을 종합적으로 놓고 보면 “북한이란 인권불모지가 낳은 유례없는 시의 세계다”라고 말하고 싶다. 뼈와 살에 깊숙이 젖어든 한이 그대로 핏방울이 되어 툭툭 튕겨났다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반디의 시집을 분석하면서 북한주민들에 대해서도 좀 정리해본다. 지금 북한은 옛날의 북한이 아니다. 허덕이고 굶주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악의 세상에서 사람들의 반항심도 나날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단순한 예를 들면 지금 그들의 목소리는 하나와 같다. “이제는 당을 믿지 않는다, 나라를 믿지 않는다.” 이 말은 “위대한 영도자 김정은 동지”라고 부르는 독재자를 믿지 않는다는 말과 같다. 다시 말하면 독재자가 빨리 사라져야 우리가 잘 산다는 말과 같다. 악착같은 선전과 정치적 억류로 당연한 것이 너무 늦었다.

마지막으로 북한인민을 포함한 전체 대한민국 국민이 바라는 독재가 기어코 무너지고 영원한 자유가 꼭 올 것이라고 믿으며 현지의 ‘자유 투사’ 반디에게 진심으로 되는 격려와 응원을 다시 한 번 뜨겁게 보낸다. 꼭 건강하셔서 만나는 날이 오기를 기원한다.

붉은 세월

반디 著

140페이지 | 130*198mm | 10,000원 | 2018년 1월 18일 | 979-11-85701-52-3-03810

전화 주문 가능 (02-722-9411~3)

국민은행 360101-04-065553 (예금주: 조갑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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