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북(美北)대화와 관련해 정신 차릴 새 없이 일어나는 소식들을 보며 생각이 깊어진다. 이제 보름 후에 평양에서 펼치게 될 대한민국 예술단의 공연소식,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인도적 대북지원 발언, 큰 그림을 떠올리는 문재인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추진모임결성, 김칫국 질타를 받고 하루 만에 무산되긴 했어도 어쨌든 일어난 일들이다.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현송월은 남북역사의 주인공이라도 된 것 같았다. 언론은 모두 흥에 겨워 보였다.

발 빠르게 통통 튀는 소식들, 과연 좋아 보이는 흐름인지 아닌지를 분간하기 어렵다. 물론 미북대화를 앞두고 한민족이라는 의미를 부각시키는 것이 그리 나쁜 일이 아니며 10년 이상을 애모쁘게* 기다려 일어난 일들에 환영을 보내는 것도 즐거운 일이다. 빈 그릇을 놓고 허황하긴 하지만 노벨상수상을 그리는 대통령의 꿈도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런데 어쩐지 내 작은 생각에는 별로 석연해보이지 않는다.
(*애모쁘다: ‘성화를 받거나 뜻대로 되지 아니하여 애타고 안타깝다’는 뜻의 북한말)

정부는 지금 북한의 비핵화라는 국제적 난문제를 안고 있다. 동시에 북한인권이라는 김정은의 비위를 긁는 어려운 문제도 함께 안고 있다. 엄격한 의미에서 험난한 길을 걷고 있다. 그런데 왜 항상 문제의 중심이 보이지 않는가, 정부가 시작한 일들은 문재인 대통령이 노벨상을 기다릴 만큼 큰 것을 노린 것이 아니던가. 작은 것도 잃으면 안 되지만 북한의 큰 놀음에 놀아날 가봐 우려된다. 한국과 북한의 놀음판을 보면 항상 의구심이 생기고 불안하다. 지금도 키는 북한이 쥐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어제 강경화 장관의 말을 옮긴다.
“대북 인도적 지원의 경제적 지원은 제재와 상관없이 지원할 준비가 돼있다.”
나는 귀를 의심했다. 미북대화에서 핵심의 주역들인 우리 정부가 준비한 것은 북한에 퍼주는 작전으로 시작한다. 물론 이명박, 박근혜 정부시절에도 하던 일들이라고 해도 지금은 사정을 고려해서 안고 갈 문제라고 본다. 작은 것도 퍼주는 시기는 잘 계산 되어야 한다고 본다. 미북대화의 밑거름을 이런 식으로 고인다면 이전의 실패와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 정부의 막 퍼주기 때문에 북한에 핵이 커진 것은 사실이다. 콩나물에 물을 막 퍼줘서 너무 자라면 영양가가 없다. 그때는 버려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시절 북한에 드나들며 해놓은 일은 막 퍼줘서 적의 승리를 만들어준 것밖에 없다. 그리고는 북한이 전쟁을 일으킬까봐 미국의 핵과 군인들이 와서 지켜줘야 하니 항상 위기만 겪고 있다.

북한사람들은 독재가 빨리 무너지기를 바라는데 한국정부는 쓰러져가는 독재에 약을 줘서 자꾸 살려주는 역할을 한다. 애달픈 것은 북한 인민들뿐이다. 나는 북한에서 대한민국의 쌀이 반갑지 않았다. 장군님이 싫어 죽겠는데 말끝마다 “장군님이 대적(對敵)투쟁에서 승리한 쌀”이라고 요란하게 선전을 들이대고 부역에 끌어내니 좋을 리 없었다. 한 달에 고작 일주일분을 주면서 사정없는 부역에 시달렸다. 오죽했으면 북한사람들이 “제발 하루 식량도 공급하지 말고 우리를 좀 놔주라. 놔주면 우리가 절로 벌어서 어떻게 하든 먹고 산다”고 할까.

물론 한민족의 도움이 고맙다. 하지만 그 고마움으로 우리 북한인민들은 더 끌려 다니며 구차스럽게 살아왔다. 어린이 의약품, 영양제들을 보내준다고 해서 가난한 인민들의 손에 다다를 것이라는 것은 꿈도 꾸지 말았으면 한다. 내가 오기 전에 우리 시의 보건담당부장이 해임, 철직되었다. 유엔에서 들어온 의약품(북한에서는 한국에서 들어온 의약품이나 영양가루 같은 것을 한국물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애초부터 유엔, 혹은 중국물품이라고 말한다)을 시당 책임비서와 협의 하에 장마당에 넘겨주고 저들의 배를 채웠다, 그리고는 국가건설에 보태 썼다고 거짓말을 한 것이 탄로 나서 책임비서는 빠지고 그 죄를 보건부장이 통째로 걸머쥐고 해임되었다.

우리가 북한을 도와주고도 과연 보기 좋은 떡일까, 먹기 좋은 떡일까. 북한 사람들은 지금도 말한다.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어서 먹을 것이 없어지자 대신 우리에게 작은 자유가 생겼다. 죽을 만큼 싫었던 조직생활이 뜸해져서 한동안 생활총화도 안했고 그냥 먹고사는 벌이만 하도록 내버려두었다. 그때부터 탈북이라는 자유도 시작되었다, 생각지 못했던 일들이 일어났고 세계에 북한 인권을 알리는 유리한 국면도 맞이했다. 자유 안에는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다 있다. 북한 인민들은 자유만 있으면 산다. 그러니 남한정부에 피를 토하듯이 말해 주고 싶은 것은 북한 인권에만 전심해 달라, 이것이다.

지금이 아니라도 북한을 도와줄 기회는 얼마든지 있다. 지금 북한에 퍼주는 것은 인민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김정은에게 충성하는 일이다. “보라, 적국이 드디어 우리에게 항복해오기 시작했다. 대적과의 투쟁에서 얻은 우리의 승리이다”하고 강연회에서, 학습회에서 김정은의 위상을 높여주는 일만 만들 것이다. 작은 것을 주든 큰 것을 주든 김정은을 기쁘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북한 인민들을 편하게, 행복하게 해주는 정부를 보고 싶은 것이 소원이다. 이 핵심 안에 문재인 대통령이 구상하는 노벨상의 영광스러운 자리도 들어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