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경북도의 소식통에 의하면 요즘 북한사람들 속에서는 돈을 주고 자유를 산다는 말이 공공연히 돌고 있다고 한다. 돈을 주고 물건을 산다는 말은 있지만 “자유를 산다”는 말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1년 365일 연속 이어지는 부역과 조직생활을 참아내기 힘들어 돈 있는 사람들은 간부들에게 돈을 갖다 바치고 부역과 조직생활에서 면제받고 자기만의 울타리를 치고 자유로운 생활을 한다는 뜻이다. 원래 그것을 만들어낸 장본인은 동 여맹(女盟, 조선민주여성동맹) 간부들이다. 동 여맹의 간부들이 돈을 받고 조직생활을 팔아주는 데로부터 시작되었다.
 
내가 북한에 있을 때도 있던 일이었는데 그때는 이처럼 노골화되지는 않았다. 부분적으로 여맹 간부들 사이에서 자기가 책임진 구간의 여맹원들을 20명 정도 조직생활에서 빠지도록 비밀리에 도와주고 수입을 챙기는 방법으로 시작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노골적이라고 한다. 여맹뿐만 아니라 기관기업소들에서도 초급 당 비서, 지배인들이 이런 속임수를 이용하여 사람들을 끌어다가 돈을 챙기고 조직생활을 하고 있다는 공장명판이 찍힌 보증서를 넘겨준다. 보증서를 쥔 사람들은 돈만 잘 갖다 바치면 1년이고 10년이고 상관없이 마음 놓고 조직생활에 빠질 수 있다.

그 원인을 내가 북한에 있을 때의 경험으로 분석해 보면 다음과 같다.
첫: 북한에서 한때 제일 힘든 것이 하부 말단 간부들이었다. 그들은 당의 정책관철인 부역에 인민들을 데리고 나가 하루 종일 핏대를 돋우며 뛰어다녀야 한다. 일이 끝나면 그들의 목은 이미 쉬어있다. 이건 내가 북한에서 본 여맹간부들의 모습이다. 그들에게 특권적으로 배급과 월급을 주는 일도 없다. 그렇다고 불만할 수도 없다. 그들도 집에 들어오면 자식들이 있고 남편이 있다. 가족이 편하고 자기도 먹어야 당에도 충성할 수 있다. 여맹 간부들은 인민들의 불만과 자기들의 불만을 기회로 발명처럼 이 방법을 궁리해냈다.

둘: 북한은 개인 사업이라는 게 없다. 다 국가가 틀어쥐고 나가는 사업인데 국가는 지금 돈이 마를 때로 말랐다. 작은 일을 하자고 해도 돈이 필요하다. 매일 떨어지는 당의 정책 관철에는 사람들을 불러내서 힘으로 해야 하는 일도 있지만 돈이 필요한 일이 더 많다. 세대별로 돈을 부담시켜도 국가가 빨아가는 돈을 미처 감당 못할 형편이다. 또 국가건설장들에서 기초파기 같은 것들을 여맹원들이 하다보면 점심식사라도 보장해서 일을 시켜야 할 사정이 생긴다. 국가는 과제를 줘서 일을 시킬 뿐이지 일하는 사람들에게 밥 한 끼 줄 생각을 않는다. 먹지도 못하고 계속 내밀기만 하면 능률이 나지 않는다. 이런 때를 대비해서 내적으로 벌어지기 시작한 일이 돈 있는 사람은 돈을 내고 빠질 수 있는 기회를 열어준 것이다.

오죽하면 자유를 돈으로 사서라도 누리려고 하겠는가. 북한 사람들은 태어나서부터 세뇌가 되기 시작해서 만 7살 소학교에 들어가면 그 때부터 무조건 조직생활이 시작된다. 9살이면 소년단에 입단해서 생활총화라는 엄한 규율 속에서 살아간다. 이렇게 시작된 조직생활은 사로청(사회주의 노동청년동맹, 청년들의 조직)이라는 중간 조직을 걸쳐 어른으로 성장하면 당 조직, 혹은 직업동맹(노동자동맹), 농근맹(농민동맹). 여성동맹, 등에서 한 사람도 빠짐없이 의무적으로 생활하게 되어있다. 조직생활은 말할 수 없이 비참하고 힘들다. 조직생활이라는 그 안에는 여러 가지 사업들이 빼곡히 차있다. 우선 자기가 일하는 학교나 공장, 여맹에서 공부나 노동에 성실해야 하며 주에 한 번씩 있는 강연회, 생활총화에 무조건 참가해야 한다. 그리고 조직에서 주는 분공들도 수행해야 한다.

참 힘든 것은, 먹고 살기도 힘든데 쉴 짬도 없이 사상학습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힘든 것은 사상문답식 경연이다. A4용지 10장 정도로 빼곡히 들어찬 글자들을 무조건 외워야 한다. 정치적 술어들이어서 외우기도 힘들다. 잘 못하면 주에 한 번씩 하는 생활총화에서 두들겨 맞고(조직에서 욕먹는 장면을 두들겨 맞는다는 말로 통한다), 그것도 성차지 않으면 군중이 모인 데서 머리를 수그리고 뭇매를 맞듯이 호상(互相)비판의 대상이 된다. 그러니 누가 이런 생활을 좋아하겠는가. 조직생활은 스트레스 폭탄과 같다.
 
누가 누구를 감시하란 말을 하지 않아도 스스로 감시가 되고 서로의 생활이 숨길 수 없이 폭로되어있다. 누구 네 집에 어떤 손님이 왔으며 왜 왔는가 까지 구체적으로 파악이 되어 있다. 한국에서는 남의 신분을 함부로 물어볼 수 없고 알면 불쾌감을 드러내지만 북한은 그걸 드러내지 않으면 의심의 대상이 된다. “오늘 우리 집에 어떤 손님이 왔소”를 동네 사람들에게 자랑하듯이 얘기를 해야 한다. 만약 성분이 나쁘고 보위부의 감시를 받는 사람이라면 “너희 집에 누가 온 것 같더라, 누구니?”하고 물었을 때 자연스레 대화가 오가야 한다. 빠른 대화가 오가지 못하고 갑자르면 즉시 보위부에 연락이 닿는다. 그러면 보위부, 보안 서들에서 구실을 만들어서 즉각 조치에 들어간다.

부역에 나가면 깨끗한 일이란 없다. 흙을 뒤집어쓰고 얼굴은 햇볕에 꺼멓게 타고 손들은 갈고리 같이 험해진다. 그야말로 기계 같이 일해야 한다. 장사꾼들은 나가서 죽탕이 되도록 시달릴 거면 하루 장마당에서 번 돈을 바치는 편이 낫다고 말한다. 일이 시작되면 돈을 내고 나가지 않겠다는 사람들과 어쩔 수 없어 부역에 끌려 나가야 되는 사람들로 편이 갈라진다. 이렇게 북한 인민들은 조직생활이라는 함정에서 죽어야 빠져나올 수 있다.
 
이 방법이 처음에는 간부들의 생활유지로 이용되다가 점점 욕심이 커지기 시작했다. 더 많은 돈을 긁어내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이 한 달에 쌀 3킬로로 규정해 놓았다가 5킬로, 지금은 쌀 10킬로라는 무거운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다. 한 사람이 일 년간의 자유를 가지는 데 드는 돈은 쌀 100킬로의 값이다. 그 돈으로 간부들은 집을 현대식으로 재건축하고, 배불리 먹고 입고 쓰고, 심지어 자식들에게까지 집을 사주는 강제수탈로 이어지고 있다. 인민들한테서 빨아낸 돈을 놓고 간부들 사이에서는 누가 더 먹는 가고 물고 뜯는 지경에까지도 이르고 있다.
 
북한인민들의 돈을 주고 산 자유, 이것이 자유겠는가. 자유가 아니다. 자유를 목마르게 찾는 그들의 몸부림이다. 슬프다. 마음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