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만사는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다. 진보·좌파의 태평성대가 영원하리라는 착각에서 빠져나오기를 충고해주고 싶다. <'검찰이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고 궁금해하는 사람을 많이 보았다. 검찰은 1년 6개월여간 수사 인력을 연인원 540여 명 투입해 사실상 적폐 청산 수사 하나에만 매달려왔고 압수 수색만 200여 회를 실시했다. 구속은 60명에 육박하고 기소는 110명에 다가간다. 장·차관급만 11명이 수감돼 있다. 대통령은 곧 2명이 감옥에 있게 될지 모른다. 지금까지 나온 징역형을 다 합하면 87년이고 앞으로 100년을 넘길 가능성이 높다. 11년 전 대통령 선거 때 일까지 뒤지고 구속됐다 풀려난 사람을 기어이 또 구속하려고 한다. 시중 얘기대로 조선시대 사화(士禍)를 방불케 한다.>

이상은 21일자 조선일보 양상훈 칼럼의 일부다. 李朝 500여 년을 관통하는 고질적 당쟁 중에서 연산군 때부터 명종에 이르는 50여 년에 걸친 피비린내 진동하던 4대 사화(士禍)를 가리켜 많은 사람들은 우리 韓民族의 수치의 역사 또는 치욕의 역사로 꼽고 있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정치인들의 패거리 성격의 붕당 정치는 있게 마련이고 권력을 잡기 위한 암투나 협잡질은 있게 마련이지만 조선 시대의 4대 士禍의 특징은 허무맹랑한 모략으로 정적의 씨를 말리는 야비함에 있었다.

그런데 최근 문재인 장권이 출범하고 나서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는 적폐(積弊)청산 또는 역사 바로 세우기라는 이름 하에 자행되고 있는 칼바람을 보자면 아무래도 조선시대의 士禍를 연상케 하는 대목이 없지 않다.

물론 법치 제도가 갖추어지지 않던 시대의 무지막지한 모략과 보복과는 다르지만 공정하게 집행되어야 할 국법이 보복적 성격을 띈다던가 정적의 뿌리를 잘라내 자신의 권력 유지의 도구로 이용하려 든다면 이는 더 이상의 국법이 아니라 흉기라고 봐야 할 것이다.

적폐(積弊)는 청산되어야 마땅하지만 권력을 가진 정권이 전 정권의 적폐를 청산한다며 칼바람을 일으키는 것은 자신을 신성시(神聖視)하려는 오만에서 나온 만행일 뿐 적폐 청산이 아니다.

모종의 악의가 함의된 법의 재단은 결코 적폐의 청산이 될 수 없으며 악순환이 되풀이될 뿐이다. 역사 바로 세우기도 마찬가지다. 역사 바로 새우기는 선거에서 이겼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정권이 강행해서 역사가 바로 세워지는 것은 아니다.

광주에서 발생했던 5·18 사건에 관한 역사 바로세우기는 異論이 엇갈리는 문제로서 훗날의 역사가에게 맡길 일이지 이를 신성시하여 국가의 기본법인 헌법 전문에 올려서 특정 세력 편의 손을 들어주는 것은 오히려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다.

최순실의 국정 농단에 대통령이 관여했다는 이유로 수백 만의 인파가 서울 시내를 온통 벌집 쑤셔놓듯 했던 소위 거대한 촛불집회는 정상 사회에서 있을 수 있는 일은 아니다. 대통령이 국정 농단에 가담했다고는 하나 그 영향이 나라의 기둥 뿌리를 흔들 정도로 위중한 일도 아니었고 대통령이 권력을 남용해 국력을 소진시켰거나 포악한 짓을 한 것도 아니다. 법치국가답게 조용하게 법에 의해 처리해도 될 문제였다는 얘기다.

그런데 특종 기사에 이성을 잃은 듯한 언론들이 경쟁적 뻥튀기식 그리고 선동적으로 보도함으로써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들을 흥분시켰고 정적의 흠집만을 살피던 정치인들은 이때야말로 권력을 챙길 수 있는 기회라는 듯 이성 잃은 탐욕 챙기기가 결국에는 권력을 무너트리고 챙기면서 이긴 자와 망한 자를 마치 善과 惡의 귀결인 듯 독선적으로 재단하여 부관참시를 연상케 한다. 그야말로 합법을 가장한 현대판 士禍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긴 자는 한순간에 正義의 使者 포청천이 됐고 망한 자는 惡의 化身으로 단죄되어 있는것 없는 것 미주알 고주알 시시콜콜 까발려저 재기 불능토록 만들었다. 그야말로 士禍의 멸문지화(滅門之禍)를 연상케 하는 장면이다.

특정 정당에서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되어 법의 심판을 받았다면 그로서 끝날 일이거늘 탄핵된 대통령이 속했던 정당을 재기 불능으로 만들려는 듯 무소불위의 수사로 인민재판을 무색케 하려는 처사는 아무리 선의로 보려 해도 치사한 권력 남용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부언하거니와 적폐의 청산은 권력 다툼에서 이긴 자의 칼바람에 의해서가 아니라 이성적 합목적성에 기초해야 가능한 일이다.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부정행위의 죄명으로 수감되었다. 법 앞에서는 만인이 평등한 대우를 받는 것이 법치 사회이니 전직 대통령이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그러나 10여 년 전에 있었던 부정한 사건까지 들춰내어 적폐를 청산한디면서 자신들의 선배 정치인들의 적폐에 관해서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으면서 적폐청산 작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면 세상 사람들이 속아주리라고 믿는가?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부정행위와 국정농단이라는 이유로 수감되어 법의 심판을 받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공교롭게도 진보·좌파 세력의 정적인 보수·우파 정당 출신들이다. 그래서인지 진보·좌파 정당 집권 시절의 적폐에 관해서는 털끝 하나 건드리지 않고 있다. 진보·좌파인 DJ·노무현 정권 시절은 요순(堯舜)시절의 태평성대 시절이었다는 것인가?

두 명의 전직 대통령이 부정행위와 국정농단이라는 이름으로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면, 가만 내버려 두었더라면 저절로 붕괴될 처지에 있던 주적 김정일 왕국에 천문학적 거금으로 회생시켜주고 핵무기마저 개발할 수 있는 힘을 길러준 DJ·노무현 정권은 애국자라도 된다는 것인가? 세상 만사는 뿌린 대로 거둔다고 했다. 진보·좌파의 태평성대가 영원하리라는 착각에서 빠져나오기를 충고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