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가수들의 평양공연 소식을 보니 마음이 새록새록 해진다. 미지의 땅처럼 가볼 수 없었던 북한에서 우리 예술인들이 공연을 펼친다는 것은 하나의 대사변이 아닐 수 없다. 우리 가수들에게는 일생에서 가장 잊지 못할 추억으로 남을지 모른다. 한국 방송과 국민들은 한국이 북한에 줄 이미지에 대해 모처럼 떠들고 있다.

북한의 가수들은 물론 청소년들 속에서는 또 한 차례 말없는 한류바람이 몰아칠 것 같다. 그들은 한국가수들이 부른 노래뿐만 아니라 레드벨벳의 자유로운 차림새를 부러운 눈으로 지켜보았을 것이다. 레드벨벳이 입은 반바지는 한국에서는 누구나 하고 다니는 젊은이들의 차림새이지만 북한에서는 자본주의 황색바람이라고 부르는 강한 이미지에 속한다.

조금은 야하다는 표현으로 다가올지 모르지만 사춘기 청소년들 속에서는 이미 한국, 중국드라마들에서 실히 익힌 모습들이다. 문화의 충격보다 남한의 자유로운 차림새를 속셈으로 무척 부러워할 것 같다. 나도 30대였을 당시 북한에서 외국드라마들을 몰래 보면서 이 같은 차림새에 반한 적이 많다. 편하고 간편하면서 색시미가 넘치는 차림새를 하고 싶은 젊음의 욕망은 독재라는 문에 갇혀 한이 될 정도로 강렬했다.

한국노래들은 며칠 후면 새것에 민감한 청소년들 속에서 귓속말로 전파되고 작은 수첩들에 몰래 노래가사가 적히고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며 다닐 것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다.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은 북한 청소년들뿐만 아니라 인민들 속에서도 가장 인기가 많을 것 같다. 나는 이 노래를 몰랐지만 요즈음에 알게 되어 몇 차례를 연속해서 들어보았다. 이 노래를 듣는 순간 북한인민다운 억울한 감정이 울컥 새어나왔다. 이 노래를 역류해서 들으니 북한인민들이 독재의 총구에서 살려달라는 애원처럼 들려왔다. ‘총 맞은 것처럼’은 너무 신통한 노래를 고른 것 같다.
 
그런데 이 한류바람 뒤 끝에 몰고 올 북한의 후 폭풍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벌써 이 정도면 북한은 내부적으로 남한의 공연에서 인민들이 받아들일 비사회주의 생활양식에 발동이 이미 걸려있다고 봐야 한다. 보위부는 이미 내적인 지시를 받고 준비가 되어있다. 한참 글을 쓰고 있는데 역시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 한국 예술인들의 공연을 앞두고 전날 노동신문에 실린 글이 소개되었다. “자본주의 예술은 썩어빠진 부르죠아 생활 양식을 유포시킨다. 자본주의 사회는 극소수의 특권계층에게는 천당이지만 돈 없는 근로대중에게는 지옥과도 같은 사회다”는 혹독한 글을 실었다. 이미 내다본 것이고 북한이 늘 악착같이 하는 짓이라 놀랍지는 않다. 

북한이 할 짓들이 눈에 보인다. 여러 형태의 그루빠들이 집집의 서랍들을 뒤지고, 심지어 학교에서 공부하는 대학생, 중학생들의 가방을 검열하는 등 여러 가지 비열한 수법으로 청소년들에 대한 사상검토를 주시한다. 그들의 수첩에 적힌 남한 노래들뿐 아니라 불순한 문자들을 색출해내기 위해서다. 나는 지금도 비사회주의그루빠의 못된 행위들이 지워지지 않는다.
 
하루는 다른 동네를 지나는데 3살 먹은 아기가 엉덩이를 들썩이며 춤추고 동네사람들이 같이 흥에 겨워 떠들며 웃고 있었다. 나도 아기가 귀여워서 웃으며 지나갔다. 오는 길에 보니 내가 지나갈 때 비사회주의그루빠와 아기 아빠가 다툼질을 벌이고 있었다. 가까이서 들어보니 아기가 엉덩이춤을 춘 것이 죄가 된 것이다. 비사회주의구루빠는 누가 배워준 것인가를 아기 아버지에게 따져 묻고 있었다. 아기들이 좋을 때 엉덩이를 흔드는 것은 본능인데 자본주의 생활양식을 퍼뜨리고 있다고 시비가 붙은 것이다. 3살 먹은 아기의 뜻도 모르는 자유도 방해가 되는 국가이다. 우리 동네의 한집은 중학생인 딸이 한국노래가 적힌 수첩이 발각되어서 소동이 일어났고 한 집은 어느 점집에서 본 가족의 신수가 적힌 수첩이 발각되어 보위부에 불리어갔다.

북한에 있을 때 한국노래를 불러서 잡혀간 청소년들이 많다. 문제는 한국노래인지도 모르고 부른 청소년들이 많다는 데 있다. 북한에서는 한국 노래를 중국에서 사는 재중동포들이 작사 작곡한 노래로 착각하고 부르는 예가 많다. 북한 사람들이 오래전부터 좋아하던 ‘사랑의 미로’도 다른 가사를 끼워 넣었기 때문에 지방 사람들은 흔히 모르고 불렀다. 나도 한국에 와서야 알았다.

나는 2000년대 중반에 동네 친구한테서 CD 한 개를 얻어왔는데 한국에 와서 몇 년이 흘러서까지도 그것이 한국노래모음인 줄 몰랐다가 최근에 알게 되었다. 한 달 전에 유재석이 출연하는 해피투게더에 나온 김경호 가수를 보고 저 중국선족 가수가 어떻게 여기에 와있는가 새삼스레 보다가 그가 한국  수라는 것을 알고 되게 당혹했다. 내가 북한에서 즐겨 본 그 CD 주인공의 얼굴, 이름까지 그대로였다. 그 CD에는 거의 2시간짜리 노래가 들어있었는데 김경호씨 뿐만 아니라 여러 가수들의 노래가 들어있었다.

그때 북한사람들은 미남자인 김경호 씨에 대해 상당히 인기가 많았고 여러 가지 루머들이 많이 나돌았다. 부자라는 말이 북한에서는 되게 낯설지만 다른 나라에서 부자라고 하면 대단하게 여긴다. 김경호 씨가 부잣집 딸과 결혼했다는 루머도 돌았고 굉장히 부러워했다. 공연을 관람한 평양시민들은 한국의 매 가수들에 대해 그들의 사생활에 대해서까지 알고 싶을 정도로 궁금할 것이다.

김경호 씨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모두 하나같이 움츠렸을 것이다. 그 CD는 동네집들이 돌려가면서 보던 거였는데 우리 집에 와서 제일 많이 머물러 있었던 거 같다. 혹시 전기가 와서 녹화기를 켜는 기회만 생기면 애들도 부모님도 그 CD를 자연적으로 끼어 넣었다. 한국으로 떠나기 몇 주 전에 주인에게 돌려주었다.
 
웃기는 것은 그 잘난 보위부가 다른 것은 다 단속하면서 이 CD만은 단속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동네사람들도 자연히 중국에서 사는 중국동포로 착각하고 흔연히 들었고 단속에서 배제되어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소름이 끼친다. 만약 보위부가 남한노래라는 것을 알았다면 굉장한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참 고소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우습기까지 하다.
 
요즘 한류열풍이 몰아치는데 보위부가 잠잘 수 없다. 지금도 생각나는 건 매일같이 휩쓰는 비사회주의그루빠와 보위원, 보안원들의 못난 모습들이다. 인민들은 그루빠가 멀리에서 나타나기만 해도 모두 끼리끼리 연락을 해서 밖에 문을 잠그고 달아나 버린다. 잘못한 일이 없는데도 그들은 귀신같이 걸고든다. 나는 2008년도에 리모컨이 말썽이 되어 끌려갔던 적이 있다. TV는 사오는 날에 즉시로 통로(채널)를 고정시켰고 보위부에서 인정한다는 검열딱지까지 붙어있다. 북한에서 리모컨으로 절대 외국통로를 볼 수 없다. 그런데 리모컨으로 외국영화를 볼 수 있다고 우기며 걸고 들었다. 우리 집뿐만 아니라 여러 집의 리모컨을 동시에 걷어갔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가 되는 세상이다.

북한에서 일어나는 재판들을 보면 거의 마약이 아니면 한국드라마, 노래 이런 것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김정은이 이번에 비핵화에서 주장한 것과 같이 체제붕괴 때문에 벌이는 소동이다. 하지만 옷자락에 감춘 송곳이 숨겨지겠는가. 어느 때든지 꼭 박살나고야 말 북한체제의 결말은 꼭 오고야 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