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우애가 좋았던 형제간에도 불로소득인 유산이 생기면 갑자기 싸움판을 벌인다. 언젠가 북한에서 총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판문점 선언>을 보면 그 동안 북한이 주장해온 내용들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김정은의 요구가 그대로 반영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남한으로부터 받을 대북 지원까지 생각하면 그는 신바람 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마이크 폼페이오 CIA 국장이 3월31일~4월1일 북한을 극비리에 방문했을 때 아사히신문은 “김정은은 회담 후 폼페이오 국장에 대해 ‘내 배짱과 이렇게 맞는 사람은 처음이다’라며 기뻐하고 만족해했다”고 전했다. ‘기뻐하며 만족해했다’는 말은 폼페이오 국장이 내민 조건에 흡족했다는 뜻이다. 이후 실무진 간의 의견조율을 통해 회담 날자와 장소를 결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웬일인지 트럼트는 회담 날자와 장소를 발표하지 않고 미적거렸다. 안달이 난 것은 김정은이었다. 그는 5월10일 북한에 억류 중이던 미국인 3명을 석방해주었는데, 이것은 북미회담을 갈망하는 자는 김정은이며 칼자루를 쥐고 있는 자는 트럼프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후 트럼프는 회담 날자와 장소를 발표했다. 여기까지 북미관계는 순풍에 돛을 단 듯 잘 나갔다. 그랬던 북한이 6일 만에 갑자기 폭탄선언을 했다.

5월16일 김계관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일방적 핵포기를 강요한다면 미북정상회담을 재검토할 수 있다”며 미국을 협박했다. 뿐만 아니라 “미국은 우리가 핵을 포기하면 경제적 보상과 혜택을 주겠다고 떠들고 있는데, 우리는 언제 한 번 미국에 기대를 걸고 경제건설을 해본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그런 거래를 절대로 하지 않을 것”라고 못 박았다. 이상하지 않은가? 원래 북미회담의 출발점은 미국은 북한의 핵·미사일 문제로, 북한은 자국의 경제와 체제안전보장 문제로 시작되었던 것이 아닌가! 미국은 이 두 가지 문제에 대해서도 다 약속해주었다. 그런데 북한이 원래 취지와는 전혀 맞지 않는 행동을 보인 것이다. 도대체 6일 동안 북한 내부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김계관이 성명서를 발표한 다음날 리선권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이 등장하여 한미군사훈련을 정면 비판하고 나섰다. 3월6일 김정은은 우리 측 대북특사단을 만나서 “평창 동계올림픽을 위해 연기된 한미연합훈련은 예년 수준으로 진행하는 것을 이해한다”고까지 했다. 그랬던 그가 왜 갑자기 돌변했을까? 누군가에게 설득을 당했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누구에게 설득당했던 것일까?

건국 이래 북한에서 가장 큰 변화를 일으킬 ‘변수’가 생겼다. 그 변수란 북미회담 후 미국과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받을 엄청난 규모의 경제적 지원이다. 평소 우애가 좋았던 형제간에도 불로소득인 유산이 생기면 갑자기 싸움판을 벌인다. “이게 웬 떡이냐”로 분쟁이 발생하는 것이다.

등소평이 흑묘백묘론을 들고 나오면서 정치가들이 전면(前面)으로 등장했고 군부는 뒤로 밀려났다. 엄청난 경제지원과 기술지원이 현실화 되면 북한에서도 이런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그동안 선군정치로 영광을 누려오던 군부는 말할 수 없는 상처를 받게 된다.

북한이 그 동안 미국에 버텨올 수 있었던 것은 핵무기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핵무기를 이제 와서 포기하면 북한은 약소국 중 하나로 전락되고 만다. 따라서 군부는 “핵을 포기하면 우리 북조선은 죽음의 길로 가게 된다”고 김정은을 설득했을 수 있다. 그리고 그 설득은 먹혀들어간 것 같다. 6일 만에 북한이 돌변했기 때문이다.

김정은은 선친(先親) 대에 만들어 놓았던 선군정치가 자신의 발목을 잡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을 것이다. 지금은 그가 군부에게 설득당했지만 경제회생을 꿈꾸어왔던 그의 가슴에 상처 난 것만은 틀림없어 보인다. 언젠가 북한에서 총소리가 들릴지도 모른다.

태영호 전 공사는 “북한은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만일 북한이 헌법도 개정하지 않은 채 각종 경제지원과 기술지원을 받은 후 훗날 핵협상을 파기한다면 미국도 건드리지 못할 핵·미사일 강국으로 떠오를 수 있다.

6·25 전쟁 당시 미국이 북한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고 끝냈더라면 오늘날 같은 후환(後患)은 겪지 않게 되었을 것이다. 1973년 헨리 키신저와 레둑토 간에 있었던 <파리 평화회담>도 월맹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했더라면 그들에게 속아 굴욕적인 패배는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트럼프가 이런 치욕을 당하지 않으려면 태평양전쟁 당시 루즈벨트의 판단이 어떻게 변화되어갔는지를 연구할 필요가 있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영화 <스파이 브릿지>를 백악관 보좌관들이 꼭 보기를 권면하고 싶다.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주인공이 미소(美蘇) 간의 꼬인 문제를 어떻게 풀어 가는지 그리고 공산주의자들을 상대할 때는 어떤 식으로 대해야 승리할 수 있는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