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후장상에게는 애국이 필수이다. 평민이 자기 목숨을 바쳐 애국했다면 그 목숨 값을 더 비싸게 쳐주어야 옳다. 시호(諡號)는 왕이나 사대부들이 죽은 뒤에 그 공덕을 찬양하여 추증하는 호(號)를 말한다. 보통 여덟 글자로 시호를 지었는데 나중에 301자까지 쓰게 되었다. 301자라는 그 길이도 놀랍지만 인간이 말할 수 있는 온갖 화려한 언어로써 지었다. 그러나 평민이나 천민이 목숨바쳐 애국을 해도 시호 같은 것은 없다. 요사이 와서야 '유관순 열사'라 하지만 우리 어릴 때는 그냥 '유관순 누나'였다. 논개는 수백 년이 지나도 기생 논개일 뿐이며 기껏해야 의기(義妓)이다. '기생'이란 호칭이 부정적인 것을 감안하면 '의기'란 것도 욕이나 희롱에 지나지 않는다.

자기 목숨을 아까워 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 왕후장상의 목숨 값이나 평민의 목숨 값이나 같은 값으로 쳐주어야 한다. 아니 평민이 자기 목숨을 바쳐 애국했다면 그 목숨 값을 더 비싸게 쳐주어야 옳다. 노블레스 오블리주란 말도 있지만, 왕후장상에게는 애국이 필수이다. 그러나 천민에게는 선택일 뿐이며 애국을 하지 않아도 괜찮다. 그런데도 그런 이들이 자기 목숨을 던져서 빛나는 애국을 했다면 왕후장상의 시호보다 더 화려하고 웅장하게 지어 바쳐야 이법에 맞다. 서훈이라면 더 말할 것도 없다.

유관순 열사의 고향인 충청남도가 내년 3·1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유 열사의 서훈 등급을 올려달라는 범국민 운동에 나섰다는 소식이 있다. 박수 받을 일이다. 더욱이 몇 해 전에 좌파 성향의 한 교수가 유 열사를 향해 "친일파가 만든 영웅"이라 비판하며 "북한에서는 유관순을 모르는데 우리나라 교과서에만 유관순이 들어갔다"는 말까지 한 터에 좌파가 판을 치는 세상이니 충청남도의 뜻이 더 장해 보인다. 보란듯이 동참해야 하겠다.

유 열사는 1962년 심사 당시 건국훈장 중 가장 낮은 등급인 3등급을 받았다. 3·1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에 대한 평가가 지나치게 낮다는 지적이 많다. 유 열사 서훈 수여 뒤인 1963년 제정된 상훈법에서는 서훈 기준을 '공적이 국가와 사회에 미친 효과의 정도와 지위, 그 밖의 사항을 고려해 결정한다'고 돼 있다고 한다 서훈을 결정하는 데 '지위'를 본다니? 이러니 적장의 목을 장수가 베면 애국자가 되지만 일등병이 적장을 죽이면 "응. 너 그랬어?" 정도에 그치는 것이다.

시호나 서훈에서 지위를 따지는 것은 왕조국가에서나 있는 일이다. 현대전은 국민 모두가 참여하는 총력전이듯이 애국은 국민 모두가 해야 한다. 그러니만큼 목숨 바친 일에 지위가 높았다고 하여 더 많은 대접을 해 주고 지위가 낮았다 하여 덜 대접하는 일은 없어져야 할 것이다. 미국 등 서양에서는 장군의 묘소나 일등병의 그것이나 똑같은 크기와 모양으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