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들도 머지않아 전임이 된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느닷없이 대국민 사과를 했다. '지난주 특별조사단이 발표한 참혹한 조사 결과로 심한 충격과 실망감을 느끼셨을 국민 여러분께'라고 시작된 사과문을 죽 읽어봤다.

무엇에 대한 사과인지 구체적 내용이 없다. '특별조사단의 최종 조사 결과를 접한 순간 비참한 심정'이었다고 했는데 정작 비참한 심정이 들게 한 그 내용이 없다. '법원행정처'가 뭔가 권력을 남용했다는 뜻으로 읽히는데 정작 그 내용이 없는 것이다. '국민들의 질책을 사법부 혁신의 새로운 계기'로 삼겠다고도 했으나 어느 국민들이 무슨 질책을 했는지 도대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만 같다. 일반 국민들은 그저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다.

이를 이해하려면 대강의 설명이 필요해 보인다. '블랙리스트'라는 용어가 한창 유행(?)하던 때 사법부에서도 '사법부 블랙리스트' 논란이 일어났다. 법원행정처가 특정 성향 판사들을 가려 불이익을 줬다는 說이다. 이에 김명수 대법원장의 지시로 특별조사단을 꾸려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했다. 법원행정처 소속 판사들의 컴퓨터를 본인 동의 없이 강제로 개봉하여 불법 논란을 빚기도 했다. 1차 조사에선 의혹이 사실무근이라고 결론 내렸고, 2차 조사에선 법원행정처가 일부 법관들의 동향을 수집한 정황이 담긴 문건을 발견했으나 불법으로 볼 수 없다고 발표했다.

그래도 설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특정 판사들이 자기들이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 계속 압박을 가하자 3차 조사에 나섰다. 3차 조사에서도 '판사들의 성향을 파악하기는 했지만 실제 불이익을 준 정황은 없다'라고 했다. 그리고는 별건 수사로 "전임 대법원장이 재임 당시 청와대와 '재판 거래'를 시도하려 했다"라는 얼토당토 않은 새로운 의혹을 내놨다. 이게 전부다. 이 3차 조사 결과를 놓고 김 대법원장이 '비참한 심정'이 들었다며 대국민 사과를 한 것이다. 무엇이 비참하고 무엇을 사과한다는 말인지 어리둥절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들끼리 셀프 조사에 셀프 사과를 한 것으로 보인다.

세상에 어느 조직이든 내부 동향 파악이나 개별 성향 분석조차 하지 않는 조직은 없을 것이다. 아무런 인사 관리도 없이 모두가 자유방임 상태라면 이는 조직이라 할 수도 없다. 문제는 조사 내용을 이용하여 불이익을 주는 것이다. 그런 게 없었다고 특조단에서 발표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대법원장이 지금 사과를 하고 무슨 일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일각에서는 전임 대법원장을 엮기 위한 수작으로 보는 듯한데 이게 사실이라면 탄식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김 대법원장은 문재인 정권의 코드 인사라는 것은 국민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대통령도 그렇고 대법원장도 그렇고 이들은 딴 세상 사람들 같다. 전직 대통령을 욕보이고, 전임 대법원장을 욕보여 무슨 이득을 얻고자 함인가? 아예 과거사위원회를 조직하여 우익 인사들을 말살시키고 적폐 청산이란 명분으로 지지율을 높이려는 불순한 정치를 하고 있다. 前任을 욕보이는 것은 누워서 침 뱉기다. 자기들도 머지않아 전임이 된다는 사실을 생각해주길 바란다. 그리고 대통령이나 사법부의 권위에 상처를 입혔을 때 오는 국가적 혼란도 생각을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