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질이 나쁜 죄는 남에게 억울한 피해를 주는 경우다. 지난 2015년 '백남기 사망 사건'이 일어난 시위를 과잉 진압했다는 혐의로 기소된 구은수 전 서울경찰청장에게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앞으로 2·3심이 남아 있고, 검찰이 항소나 상고를 포기할 것 같지는 않으니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 기쁨은 잠시이고 당사자로서는 얼마나 더 시달려야 할지 아득할 것으로 보인다. 변호사 비용도 엄청날 것이다. 개인적 비리 문제도 아니고, 당연한 직무 수행에 꼬투리가 잡혀 수십 년 공직 생활의 끝이 이렇게 비참해야 하다니 보는 이로서도 가슴이 아프다.

김용판 전 서울경찰청장도 비슷한 곤욕을 치렀다. 지난 2012년 대선 당시 권은희 서울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김 전 청장으로부터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위한 압수수색 영장 신청을 만류하는 전화를 받았다'는 취지의 폭로가 있었다. 이로 인해 김 전 청장은 검찰의 기소로 1심과 2심, 그리고 대법원 재판까지 지루하고도 피곤한 재판을 받아야 했다. 아마 변호사 비용도 엄청나게 들었을 것이다. 결국 무죄로 판명났다. 그러나 허위 폭로한 권은희는 이후 국회의원이 되어 지금도 건재하다. 검찰은 권 전 과장의 상관 모해 사건은 대법원 상고를 포기했었다. 허위 폭로한 x은 봐준 것이다. '엿장수' 마음대로다.

법을 바꿔야 한다. 지금 검찰은 영장 청구나 기소권을 너무 남발한다. 구속 영장 청구가 마치 검찰의 능력인 양 오해되고 있는 것 같다. 영장 청구가 기각되는 경우 담당 검사에게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장치가 필요해 보인다. 그리고 형사 사건이 최종 무죄로 판명되는 경우에는 기소 검사에게 직권남용죄를 물어야 할 것이다. 권력을 휘두를 때는 책임이 뒤따른다는 것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함부로 구속영장 청구를 하거나 유죄의 확실한 증거 없이 기소를 하는 권력남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장치 없이 수사권이나 기소권을 경찰에까지 나눠주게 되면 권력남용은 더욱 확대되고 억울한 피해자만 늘어날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질이 나쁜 죄는 남에게 억울한 피해를 주는 경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