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수가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맞지만, 野黨인 이상 정부·여당과 싸워야 한다. 검찰 고위직 인사가 발표되었는데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유임되었다고 한다. 앞으로도 구속영장의 제왕 윤석열을 앞세워 정치보복 수사를 계속해나가겠다는 문재인 정권의 의지가 읽힌다.

6·13 지방선거에서 자유한국당이 납득하기 힘들 정도의 대패를 당한 것은 선거가 정권 심판 선거가 아닌 이전 정권과 야당 심판 선거가 되어버렸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게 된 결정적인 원인이 바로 이명박, 박근혜 정부 주요 공직자들을 줄줄이 구치소에 보내버린 정치보복 수사라고 본다. 허구헌날 검찰이 이명박 정부 누구누구, 박근혜 정부 누구누구에게 구속영장을 청구했다는 연합뉴스 속보가 푸시알림으로 뜨고, 확정되지 않은 그들의 범죄혐의가 기정사실화되어 방송사들의 저녁 뉴스 헤드라인을 장식하니 이를 보는 많은 국민들이 지난 정권들과 그 당시의 여당이었던 한국당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이 들지 않는다면 이상한 것이다. 거기다 유능하고 참신한 인재들이 자기들도 검찰수사 받을까봐 자유한국당에 잘 들어오지 않으려 하는 부작용마저 생겨났다.

한국당은 이같은 과거정부에 대한 정치보복 수사의 심각성을 인지했어야 했다. 마땅히 검찰청사 앞에 나가 항의집회를 열던가 광화문 광장으로 나가 대규모 장외투쟁을 했어야 옳았다. 범법자를 옹호하는 것은 한국당이 수호해야 할 법치주의 정신에 맞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헌법에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있고, 검찰이 확정되지 않은 피의사실을 자꾸 언론에 공표하는 것은 충분히 지적할 만한 문제다. 또한 검찰의 원칙 벗어난 구속수사 일변도와 법원의 일관성 없는 영장 발부에는 제1야당이 이의 잘못을 지적하는 목소리를 냈어야 했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선 긋기에만 바빴다. 자기들이 잡혀가는 게 아니라고 軍과 국정원의 애국지사들이 수갑차는 걸 방관하기만 했다. 심재철 부의장이 국회 정론관에서 서훈 국정원장, 윤석열 지검장 등을 내란죄로 고발해야 한다고 연설했을 때 여기 동조하는 당 지도부와 중진의원이 거의 없었다. 한국당 의원들은 이기적이고, 게으르고, 野性이 없다. 투쟁할 줄을 모른다. 취업하려고 국회의원이 된 생계형 정치인들이 많아서 그런 것일까. 이러한 점은 한국당에서 바른미래당으로 간 의원들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과거 민주당은 검찰이 좌파진영에 불리한 수사를 하려고 하면 늘상 검찰개혁을 말했다. 검사들 권한을 줄여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수시로 검찰을 견제했다. 지금 문재인 정권이 추진하는 공수처 설치나 검경(檢警) 수사권 조정도 그런 차원의 일환이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검찰이 자기들한테 칼을 들이대는 건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자유한국당은 대표였던 홍준표가 검사 출신이어서 그런지 검찰의 칼날로부터 우파를 지켜줄 어떤 지렛대도 꺼내들지 않고 있다. 이러면 검사들은 민주당 눈치는 보더라도 한국당 눈치는 볼 것이 없다.

선거에서 이렇게 깨졌다면 한국당이 어떻게든 바뀌어야 한다. 보수가 품격을 지켜야 한다는 것은 맞지만, 야당인 이상 정부·여당과 싸워야 한다. 소속 의원 전원과 대규모 당원들을 동원한 장외투쟁도 좀 하고 그래야 한다. 그렇게 하다 보면 내부의 친박·비박 갈등도 봉합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