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힘이 빠졌다고 생각되면 어김없이 달려들어 밟으려는 습성이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장기판에서 살인 사건이 일어났던 일이 있다. 사건의 발단은 장기를 두는 과정에서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이 도에 넘는 훈수를 했기 때문이었다. 상대방에게 몰리고 있던 판에 옆에서 이기고 있는 쪽을 응원하면서 감정을 자극했던 모양이다. 이런 예들은 한국 사회에서 심심찮게 발견되는 현상이다. 지고 있다고 생각하거나 힘이 빠졌다고 생각되면 어김없이 달려들어 밟으려는 습성이 있다. 나중에라도 보복을 당할 가능성이 있는 상대방에게는 비록 지고 있더라도 눈치를 슬슬 보는 경향도 있다. 눈치가 빠른 것으로는 세계에서 한국 사람을 당할 사람이 없을 것이다. 아마도 요즘의 한국 분위기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요즘은 모르겠으나 우리 군대 생활하던 때를 회상해 보면 상급자가 하급자중에서 만만한 사람을 골라 시범 케이스를 보여 주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시범 케이스에 걸려 드는 사람은 대개가 체격이 왜소하고 성격이 온순한, 그리고 배경이 신통치 않다고 판단되는 사람이다. 아주 비열한 성격의 단면을 보여주는 예들이다. 조금 다른 측면이지만 조금 신사적인 사람에게는 믿는 구석이 있는지 아주 상투를 잡을 것처럼 달려 들고 깡패 같은 사람에게는 뚱개 눈치 보듯 슬금거린다. 그런 현상은 개인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크게는 다른 나라를 대할 때에도 일어난다. 좀 신사적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이나 일본에 대해서는 벌거숭이처럼 달려들어 비난하면서도 깡패 기질이 있거나 근성이 있는 중국 같은 나라에 대해서는 눈치만 살피는 경향이 있다.

경기도 포천 일동이라는 곳에서 군생활을 할때 우리 내무반에는 A라는 체격이 우람하고 목소리도 우렁찬 병장 하나가 있었다. 체격과 목소리뿐만 아니다. 시커먼 피부에 눈매가 매서운 사람이었다. 이런 그의 모습 때문에 감히 그와 대적을 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내무반원들은 혹시나 그에게 잘못 보이기라도 할까봐 언제나 그의 눈치를 보며 비위를 맞춰 주는 경쟁을 하였다. 휴가라도 다녀올 때면 신탄진 담배라도 한 갑 사다가 갖다 바치는 것은 보통 있는 일이었다. 그래야 신상이 편하다는 생각들을 하였을 것이다.

어느날 내무반 안에서 시비가 벌어졌다. 이유는 모르겠으나 몸집이 호리호리하고 얼굴이 하얀 샌님같은 B 병장과 시비가 붙은 것이다. 우리 모두 숨을 죽이며 그들의 언쟁을 지켜 보면서도 B 병장이 죽으려고 간땡이가 부은 것이 아니냐고 서로 얼굴만 쳐다 보았다. 일부는 언쟁에 끼어들어 그 힘센 병장의 편에서 B 병장을 나무라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갑자기 퍽퍽 소리가 들리더니 A가 침상 밑으로 나뒹굴었다. A가 일어나서 B에게 대항을 하려고 했지만 B의 날쌘 주먹이 A의 얼굴과 턱 밑으로 사정없이 날아들었다. 난감한 것은 A의 편을 들며 언쟁에 끼어들었던 사람들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B가 소리쳤다.
"이 X새끼들 너희들도 이리 와!"

그후 내무반은 새로 등장한 B에게 경쟁적으로 아첨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워낙 겸손한 사람이라 그는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을 보였지만, 문제는 그 기세등등하던 A가 너무도 초라하여 동정을 해 주어야 할 정도였다. 아무도 그를 거들떠 보지 않았고 풀이 죽은 그의 눈빛이 참으로 딱해 보였던 기억이 있다.

한국 사회가 전통적인 자연 부락에서 도시화되면서 익명의 사회로 변한 오늘날 사람을 대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이웃이나 친척이 아니라 SNS상에서 만나는 익명의 사람들이다. 생면부지의 사람들과 의사 소통을 하면서 친밀감이나 적대감을 갖게 된다. 같은 엘리베이터 사용하는 이웃과는 인사조차 하지 않으면서도 얼굴조차 모르는 사람들과 대화를 하는 것이다. 위에 언급한 한국인들의 비열한 성격은 SNS상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다. 조금 만만하게 보이는 개인이나 세력에 대해서는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공격을 한다. 주먹이 멀리 있으니 얻어 터질 염려도 없다. 마음 놓고 평생 동안 축적되고 단련된 욕지거리를 쏟아 붓는다. 모두 비루한 특성의 단면이다.

과격한 일부 빠들이 자기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에 대해 비판을 하면 떼를 지어 공격하는 바람에 글을 써서 먹고 사는 기자들도 움찔 한다고 한다. 그래서 어떤 대기자는 댓글 기능을 차단했다고 한다. 실제로 연예인들 가운데는 SNS상에서 근거 없는 공격에 정신적 충격을 받아 자살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얼굴을 마주 보지 않다 보니 잠재된 비루(鄙陋)한 특성이 여과 없이 표출되는 것이다.

친구중의 하나가 어디엔가 글을 쓰고 있었는데, 끊임 없이 깐죽대는 사람이 있어 감정이 극도로 상했던 모양이다. 성격이 급한 그는 실정법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그 놈을 직접 만나 패주려고 몇번 만나자고 요청했으나 거기에는 응하지 않더라며 씩씩거리는 것을 보았다. 남자인지 여자인지도 모르고 그 놈을 패주겠다고 씩씩거리는 모습에서 IT의 발전이 가져온 부정적인 폐해를 목격하게 된다. 동시에 한국인의 비열한 사회적 성격이 더욱 심화된 것 같아 보이기도 한다. 상대적이기는 하지만 이것은 분명 보편적 현상이 아니라 한국 사회의 특수성이 아닌가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