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자유한국당은 자체적으로 혁신하고 체질을 바꿀 수 있는 세력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팥 가마니에서는 마무리 골라도 팥이요, 콩 가마니에서는 아무리 골라도 콩이다.
태극기 부대를 중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한국당을 완전히 그리고 철저하게 붕괴시키고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과거에 자유한국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이나 새누리당에 몸을 담았던 인사들, 또는 정치 평론가들조차도 현재의 자유한국당은 희망이 없다며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런 말은 쉽게 할 수 있고 그럴 듯하게 들리지만 현실을 놓고 보면 그런 주장들조차도 현실성이 없다.

일부에서는 탄핵에 동조한 바른당 출신 사람들만 청산되면 자유한국당이 보수의 심장으로 재탄생할 것처럼 떠들기도 한다. 그렇다면 바른당 출신으로서 재입당한 탄핵 찬성파 외에도 당적을 바꾸지 않은 채 자유한국당에 그대로 남아 탄핵에 찬성했던 사람들은 새로운 사람들인가. 친박 국회의원이라고 행세하던 사람들 중에 최소한 30명 이상이 숨어서 박근혜 탄핵에 동조하였다.

탄핵 통과의 의결 정족수는 재적의원의 3분의 2에 해당하는 200명이다. 234명이 탄핵에 찬성을 하고 56명이 반대를 하고 2명이 기권을 하고 7명이 무효표를 던졌다. 당시 야당과 야당 성향의 무소속의 국회의원이 모두 합하여 171명이었다. 이들이 모두 탄핵에 찬성표를 던졌다 하더라도 나머지는 자유한국당 소속이거나 친 자유한국당 성향의 무소속이 탄핵에 찬성을 한 것이다. 그 당시 자유한국당과 친 한국당 무소속을 합하면 129명이었다. 이들 중 72명이 탄핵 찬성, 기권 또는 무효표를 던진 것이다. 비박계를 자처하던 사람들의 숫자는 모두 33명, 나머지는 친박계의 찬성표다. 탄핵에 반대한 56명중에도 탄핵에는 반대하지만 박근혜 전대통령의 질서 있는 퇴진, 즉 하야를 주장하던 인물들이 있다.
한 마디로 자유한국당은 친박이든 비박이든 박근혜 전 대통령을 보호하려는 최소한의 의지조차 없었다. 어느 놈 하나 의결 현장에서 소리 지르고 눕고 저항하던 사람이 없었으며 도살장에 끌려 온 소들처럼 소리 없이 탄핵 의결에 참여하고 자신의 한 표를 행사했다. 탄핵 의결 결과 친박으로 여겨지던 너무 많은 인물들이 탄핵에 찬성을 하는 바람에 더불어민주당 인사들조차 놀랐다는 반응을 보였다. 바로 얼마 전의 일이다. 이것이 오늘날 자유한국당 다수를 이루고 있는 친박들의 얼굴이며 태극기 부대가 그처럼 존경하고 박수를 보내는 친박들의 실상이다.

김무성과 김성태만 아니었으면 탄핵이 되지도 않았고 오늘날의 보수 궤멸 상황은 도래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은 정말로 터무니 없는 주장이다. 친박 성향의 찬성표만 가지고도 탄핵은 통과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탄핵의 원죄 운운하면서 모든 원인을 김무성과 김성태에게 덮어 씌우고 자신들은 초연한 위치에서 정치적 보호색을 갈아 입는 행위는 비난 받아 마땅하다.

주군을 배신했다? 21세기 대명 천지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 주군이니 배신이니 하는 용어가 난무하는 것도 무식하기 이를 데 없지만, 설령 그런 용어를 가지고 누구를 응징하려 한다면 그것은 친박으로 공천을 받아 국회의원이 된 사람으로서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친박 의원들에게 어울리는 단어들이다. 그렇지 않은가. 비박이야 원래부터 그렇다 치고 친박으로 공천을 받았으면 친박으로서의 최소한의 의리를 지키며 주군의 탄핵에 동조하는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가. 그들은 공천을 받기 위하여 친박을 가장 했을 뿐 그들은 친박도 아니고 보수도 아니었다. 탄핵 의결이 진행되던 시기의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5%였다. 이들에게 이미 박근혜는 이미 이용 가치가 없었던 것이다.

탄핵 의결 이후 자유한국당(그 당시는 새누리당)은 새 대표로 이정현을 선출하였다. 박근혜 정권의 주류로서 최소한의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할 친박들이 반성하기는커녕 또 다시 전면에 등장한 것이다. 대표 선출 이후 얼마 지나지 않아 원내대표 선출이 있었다. 비박들은 친박을 대표로, 적어도 원내 대표는 비박으로 균형을 잡아 향후 혁신을 통하여 당의 진로를 모색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다. 비박의 원내대표 후보로 나경원 의원이 나섰는데 갑자기 친박 정우택이 원내대표를 하겠다고 나서더니, 결국은 친박 정우택이 원내대표에 선출되기에 이른다. 탈당의 직접적인 도화선이 바로 원내대표 정우택의 선출이다. 결국 박근혜를 팔아 정치하는 도로 친박당이 되는 현실을 감내하지 못한 사람들이 뛰쳐나간 것이 바른미래당이다.

지금 자유한국당은 직접적이든 간접적이든이런 정치 행로를 걸어온 사람들이 구성원을 이루고 있다. 정풍 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조차도 모두 이들 정치 파당들과 직간접으로 끈이 닿아 있는 사람들이다. 비관적 견해이기는 하지만 현재 자유한국당은 자체적으로 혁신하고 체질을 바꿀 수 있는 세력이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팥 가마니에서는 마무리 골라도 팥이요, 콩 가마니에서는 아무리 골라도 콩이다.

그렇다고 자유한국당을 완전히 없애고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조직 자체 내에서 혁신 동력이 없을 때 강구되는 유일한 대책은 외부 수혈을 통한 개혁과 혁신이다. 이것이 조직 이론의 기본이다. 이를 거부하고 자기들끼리 네가 나가라고 서로 아귀다툼을 하는 것은 점점 더 자유한국당을 수렁으로 빠뜨리는 행위가 될 것이다. 과거를 물으려면 공평하고 공정하게 물어야 한다. 지난 글에서도 언급한 일이지만 가장 비굴한 인간의 습성은 힘이 빠진 사람 또는 만만한 사람을 골라 시범을 보이고 희생양을 삼는 것이다. 김수환 추기경이 내탓을 먼저 해야 된다는 말씀이 현재 자유한국당에게는 너무도 적합하고 절실한 교훈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