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으로 하여금 정치적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건전한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중요한 기둥이라 믿게 되었습니다. 보수 몰락의 원인을 백가쟁명식으로 파헤쳤기에 따로 중언(重言)하지 않겠습니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는 사람이 없어 첨언합니다. 박정희 신화의 배경이 가능했던 근본 원인 중의 하나가 건전한 권력이 자본을 육성할 뿐 아니라 통제 지휘하는 체제였기 때문입니다. 또한 정치 자금의 통로가 비교적 단순하여 자본이야말로 권력의 눈치를 볼 필요 없이 부과된 정치 자금만 부담하면 오히려 마음껏 사업을 펼칠 수 있는 체제였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은 자유 민주체제란 차를 구동하는 엔진인 자본주의를 일종의 한국적 신형엔진으로 탑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체제가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고 민주화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자본을 계속 통제만 했지 보호하는 조치를 소홀히 하여 자본이 스스로 살 길을 찾아 나섰던 것입니다. 아마 이 시기부터 대한민국 자본을 대표하는 재벌들이 현재 권력뿐 아니라 미래의 권력에도 본격적으로 돈줄 역할을 했다고 봅니다. 또한 현 권력은 정치 안정을 위해 야당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했던 터라 이와같은 일종의 일탈(逸脫)을 눈감아 주었습니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권에서는 현재의 권력뿐 아니라 하이에나 떼와 같은 언론, 노조, 참여연대 등 각종 정치 외곽단체뿐 아니라 심지어는 반 국가단체에 이르기까지 이들을 실질적으로 육성케 하는 젓줄 역할을 짊어지기도 했습니다.

이 자본의 일탈 행위가 이명박 박근혜 정부에서조차 통제는커녕 인식조차 되지 않은 가운데 급기야는 이들의 젓을 먹고 자란 반국가 사회단체들이 소위 촛불의 배후 세력이 되어 정권을 뒤집는 결과를 낳고, 그 순간 보수 정권의 울타리 안에서 큰 자본은 오히려 미래의 권력에 맥없이 굴복하고 순종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데리고 살던 마누라를 뻇긴 것에 비유를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입니다.

나는 대한민국 정치제도 중에서 가장 우수한 점을 바로 이 권력의 자본 통제로 믿었고 미국의 정치 체제에서 소위 Super PAC(Political Action Commitee)이란 민간 단체가 무한대의 정치 자금을 자신들이 지지하는 정치인이나 정당을 지원할 수 있는 미국식 정치제도를 타락한 것으로 여겼더랬습니다. 그런데 이번 박근혜 대통령 탄핵으로 벌어진 불법 헌정 중단의 사태를 바라보면서 관념적 지식에 근거한 신념이 얼마나 나약하고 실없는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보수 우익은 자본을 지키는 데 실패했습니다. 자본이 불법단체에 시달리면 법으로 막아줬어야 했습니다. 불법시위 공갈 협박을 하면 법의 이름으로 강력한 처벌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순간적인 정치 위기를 모면하느라 직무유기하고 때로는 불법단체의 편이 되기도 했던 것입니다. 그러고도 늘 자본을 조강지처 내지는 자기 편으로 여겨 왔던 것입니다.

나는 자유한국당이 자기 혁신을 못하고 지지부진한 이유도 여기에서 찾습니다. 이미 親朴이든 親李든 탄핵 찬성파든 반대파든 갈라지는 것이 정도(正道)였습니다. 갈라져서 국민의 심판을 받고 간택받은 집단이 보수 우익의 성원을 받았더라면 이런 몰골까지는 전락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못 갈라지는 이유 단 한 가지가 바로 정치 자금입니다. 차고 나가는 놈들은 그 순간 북풍한설에 맨몸으로 나서는 꼴이니 나간 놈들조차 다시 들어오는 것 아니겠습니까? 무슨 수단을 써서라도 黨에 남는 것이 당의 돈과 재산을 차지하는 길이니 누가 패가망신의 길을 걸으려 하겠습니까?

운동권의 원조 김문수조차 이런 현실 속에서 관리자형 지도자로 전락한 것을 지켜 보면서, 이 한국형 자본주의의 근본적 결함 즉 자본의 권력에의 종속이 보수 우익의 전격적 몰락을 불러오고 회생의 전기조차 마련하지 못하는 이유라고 보는 것입니다. 자본이 자유롭게 정치 스폰서가 되는 체제였다면 이미 친이든 친박이든 탄핵 찬성파든 반대파든 자본의 스폰서를 받아 자기들의 정치적 신념에 의거한 당을 만들어 심판을 받았을 터이고 그 결과 쉽게 갈등을 봉합하고 오히려 다시 뭉쳐 반 문재인을 기치로 다시 뭉치는 자연스런 전기를 마련했을 것입니다.

문재인 정권에 굴복한 자본들이 오히려 핍박받는 것을 보면서 이 자본, 자본주의란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끼면서 보수 우익은 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다시 살릴 것인지 깊은 성찰을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제 자본으로 하여금 정치적 선택의 자유를 허용하는 것이 건전한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중요한 기둥이라 믿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