親朴·親李가 아닌 親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아직도 제정신은 아닌 듯하다. 잘못이 당 내분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알면서도 본성대로 가는 것인지 여전히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얼마 전 40대 후반으로 모 대기업 임원인 처남네 집들이에 다녀온 적이 있다. 가족끼리의 저녁 술자리가 펼쳐졌다. 자연히 현 시국에 대한 의견들도 오갔다. 필자에 비해 아직 젊은 축인 처남의 얘기도 들어봤고 특히 대학 졸업반인 처조카로부터 많은 의견을 들었다. 모두 보수우익 성향이지만 기성 정치인들이나 어른 세대보다는 훨씬 시야가 넓고 전향적 사고를 갖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이런 젊은이들이 나서서 혁명적인 방법을 모색해 볼 일이다. 그렇지 못한 채 현재의 끝없는 계파 싸움판인 한국당식 정치지형으로는 희망이 없어 보인다. 보수우익이 저런 꼴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에서 자유민주주의는 끝내 힘을 잃고 인민민주주의를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속설도 옛말인 듯, 박근혜(존칭 생략) 탄핵은 도리어 보수가 분열로 망한 역사적 사건이다. 따지고 보면 그 발단은 지난 17대 대선에서 이명박(존칭 생략)의 대선 새치기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박근혜는 후보 경선에서 패하자 군소리 없이 승복 선언을 했다. 억울함이 있다는 것을 아는 국민들에게 잔잔한 감동까지 주었다.

주도권을 쥔 親李 세력은 이어서 치러진 18대 총선 후보 공천에서 굴러온 돌이 박힌 돌 뽑듯 친박계를 무자비하게 내쳤다. 이재오가 언제부터 보수우익이었는지 기가 찰 일이었다. 여기서 박근혜가 앙심을 품고 '나도 속고 국민들도 속았다'는 비수를 날렸다. '親朴 연대'가 만들어지고 어느 정도 국민적 호응도 얻었다. 본격적인 혈투가 시작된 것이다.

이명박은 대통령이 되어 박근혜를 후계자로 보호하고 지분 인정을 했어야 했다. 자기만 한번 해 먹고 다음은 모르겠다는 심보가 아니었다면 박근혜에게 총리직을 제의하는 등 후계 수업을 생각했어야 했다. 그런데 아예 뿌리를 뽑아버리려 했으니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오너 한 사람만 쳐다보며 일할 때는 그런 행태가 추진력으로 포장될 수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전 국민들이 보고 있는 정치판의 같은 진영에서 이런 행태를 보인 것은 치명적 실수였다. 박근혜를 향한 테러 내지는 전쟁 선포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박근혜는 선거의 여왕이라 불릴 만큼 이미 내공을 갖춘 저력이 있었다. 살아남았고 이명박 정권의 도움 없이 정권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다. 야당의 극렬한 태클과 당내 비박 세력들의 비협조로 준비했던 많은 정책들이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되는 어려움을 겪었지만 여론의 분위기는 괜찮았다. 특히 해외 순방에서 보여준 우아한 자태와 외국어 실력은 한국의 위상을 높이는 데 크게 기여했다. 대통령이 할 일은 그런 것이다. 큰 틀의 이념적 방향을 제시하고 이의 실현은 총리 중심으로 이뤄나가는 것이다. 황교안 총리를 기용하여 안정된 정국을 이끌었다.

문제는 역시 총선이었다. 박근혜 정권이 별 대과 없이 관리되었고 야당의 지리멸렬로 새누리당(현 한국당)은 의석 180석을 희망할 정도로 분위기가 좋았다. 그러나 후보 공천에서 다시 親朴·親李 갈등이 불거졌다. 객관적으로 볼 때 주도권을 쥔 親朴 측에서 유승민 등 도저히 같이 갈 수 없는 사람들을 배제하려는 것은 옳았으나 당 대표인 김무성을 제대로 다독이지를 못했다. 이명박이 박근혜를 소홀히 다뤘듯이 박근혜 역시 김무성을 소홀히 다룬 것이다. '옥새 사건'도 그래서 생긴 것 아닌가?

총선 결과는 실망스러웠고 이는 박근혜 탄핵의 서막이 열린 것으로 볼 수가 있다. 좌익들이 세월호 사건을 들고 집요하게 파고든 것도 틈이 보였기 때문이다. 최순실 사건이 불거지자 좌익들이야 말할 것도 없고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親李 세력들이 탄핵에 앞장선 것이다. 빌미를 만들고 맥없이 쓰러진 박근혜의 대처가 어이없기도 했지만, 어리석은 자들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같이 죽는 길인 줄을 모르고 탄핵에 가담하다니…어쩌면 이런 경우를 두고 운명이라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로 인해 수장인 朴과 李 둘 다 감옥으로 보내고 말았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 싸우고 있다. 이번 지방 선거에서 참패를 당하자 '잘못했습니다'며 엎드렸으나 아직도 제정신은 아닌 듯하다. 잘못이 당 내분에 있었다는 사실을 모르는지 알면서도 본성대로 가는 것인지 여전히 싸우고 있으니 말이다.

지나간 일을 장황하게 늘어놓는 것은 이 한정된 게시판에서조차 갈라져 다투는 모습이 안타까워서다. 문제가 어디에 있었는지 되돌아보고 반성하자는 취지다. 어느 쪽이 주도권을 잡든 한국당이 끝없는 내분 상태로는 재기의 희망이 없다. 그렇다고 떨어져 나온 애국당 중심으로 뭉치자는 주장도 현실성이 없다. 어떻게 하든 한국당 모습을 바꿔야 하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현 지도부는 물론 모든 소속 의원들이 기득권을 내려놔야 한다. 親朴·親李가 아닌 親한국으로 돌아가야 한다. 서로 부둥켜안고 "우리가 왜 이리됐노?"라는 참회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그리고 우리 편이 아닌 '형님 먼저 아우님 먼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

또 한 가지 중요한 문제가 있다. 박정희 시대에는 '우리도 한번 잘 살아보세'라는 국민적 공감대와 절박함이 있었다. 이후 우익에서는 시대 변천에 따른 새로운 이슈를 개발하지 못했다. 반대로 좌익들은 그 방법에 문제가 있다손 치더라도 북한과의 평화라는 좌표를 설정하고 다수 국민들로부터 멸시까지 받아가며 끈질기게 추구해왔다. 국가적으로는 독이 될지 복이 될지는 두고 볼 일이지만 지금 때를 만난 것이다. 보수우익에서는 아직까지도 '좌익 척결'이니 '종북 척결'이니 외쳐대지만 이는 예전의 '반공(反共)' 범주에서 벗어나지 못한 공허하고 식상한 구호다. 한때 '선진화'를 내걸었지만 이 역시 국민들 마음을 움직이지 못했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 한국당이 세력 다툼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재기할 방법은 있을 것이다. 20대에서 50대까지 다양한 연령에서 정치적 관심이 있고 분야별 리더급인 인물들을 선발하여 대책위원회를 꾸려보면 어떨까? 지난 4월, 노재봉 전 국무총리, 박관용 전 국회의장 등 정계 원로들이 참여한 '대한민국 수호 비상 국민회의'를 창립했지만 사회적 반향이 없다. 언론의 외면 앞에서 정치 모임은 무력하기 짝이 없다. 젊은이들이 모인다면 언론도 외면하기가 어려울 것이다. 이들 젊은 기수들이 보수우익의 이정표를 새로 세우고 국민들에게 세로운 정치적 어젠다를 내놓는 것이다. 나아가 차기 총선에서 후보 공천심사까지 행사하는 것이다. 이는 대강의 윤곽이고 구체적 실무에서는 머리 좋은 사람들이 안을 내어 한번 시도해봄직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