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나마 견실하여 나라의 경제를 이끌어 가는 몇몇 대기업조차 부실 기업으로 만들고 결국은 해외에 헐값으로 팔아 넘길 작정인가. 집권 여당의 원내대표 홍영표가 삼성이 20조만 풀어도 2백만 명에게 1천만 원씩 나누어 줄 수 있다고 발언을 했다가 여론의 질타를 받은 바 있다. 비판 여론이 거세지자 진의가 잘못 전달되었다고 해명을 했으나 여러 가지 정황을 보면 진의가 잘못 전달된 것이 아니라 정확하게 전달된 것처럼 판단된다.

좌파 시민단체인 '재벌 사내유보금 환수 운동본부'와 '사회변혁노동자당' 등은 이미 지난 4월부터 대기업의 사내유보금을 환수하겠다고 활발하게 활동 하고 있다. 홍영표의 발언은 이들의 정서를 대변한 진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홍영표의 발언이 단순한 실수가 아니라는 사실은 요즘 좌파 언론들의 기획 기사나 민주당 대표에 출마하고 있는 인사들의 발언에서도 감지되고 있다. 다만 883조를 어떻게 다룰 것인가에 대해서는 저마다 약간 다른 처방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분명한 사실은 문재인 정부와 여당 그리고 좌파 시민단체나 좌파 언론 모두가 대기업의 사내 유보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는 것만은 틀림 없다.

지난 글에서도 짤막하게 언급을 했지만 사내 유보금은 궁극적으로 법인의 소유가 아니다. 법인이 누군가에게 돌려 주어야 할 돈을 잠시 보유하고 하고 있는 것이다. 만약 오늘 회사가 청산을 한다면 사내 유보금은 주주에게 지불해야 할 몫이다. 법적으로는 사내유보금이 법인의 소유가 맞지만 진짜 주인은 따로 있다는 것이다. 그 진짜 주인을 어떻게 표현 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영어로는 Principal이라고 표현한다. 권한의 최정점에 있는 사람이 바로 principal이다. Principal은 학교에서는 교장으로 번역되기도 하지만 주식회사에서는 주주를 가리켜 Principal이라고 한다. 삼성의 이건희 회장이나 이재용 회장은 삼성의 진짜 주인이 아니다. 그들은 주주를 대리하는 사람들일 뿐이다. 그래서 주주의 권한을 위임받은 이사(理事) 가리켜 Agent라고 부른다. 요약하면 이재용을 비록한 경영진들은 agent들이고 주주들이 principal인 것이다.

좌파 시민단체들과 민주당 정부가 주인의 허락도 없이 대리인들을 협박하여 회사 돈을 환수하겠다는 것은 법 이전의 날강도와 같은 짓이다. 물론 그 진영에서도 이런 날강도 짓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하고 다른 목소리를 내는 인사도 있다. 민주당 대표 경선에 출마한 김진표 의원이 바로 그다. 정치인이 되기 전 직장 생활의 대부분을 경제 부서 공무원으로 보냈고 재경원 장관까지 역임한 인사이기에 이 같은 문제점을 모를 리가 없을 것이다. 그의 주장은 일면 타당한 측면이 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금산 분리를 완화하여 재벌 기업들이 벤처캐피탈에 진출할 수 있도록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벌 기업이 벤처캐피탈을 설립할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하여 유망기업을 지원하는 형태로 사내 유보금을 투자로 유인해 보자는 발상이다. 문제는 김진표 의원의 아이디어도 현재와 같은 좌파 경제적 무드가 팽배한 현실에서는 전혀 실효성이 없다는 것이다. 벤처캐피탈에 투자하여 성공을 거두더라도 좌파들은 또다시 재벌 집중 현상을 공격할 것이며 거기에서 생성된 사내 유보금을 나누자고 주장할 것이 아닌가. 향후 경제 정책의 방향에 따라 분위기가 달라질 가능성도 있을 수 있지만 요즘처럼 좌파들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상태에서 기업들은 키워서 잡아 먹자는 심산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

좌파들이 대기업들의 사내유보금을 가지고 착각하는 것이 또 한 가지 있다. 사내 유보금은 현금이 아니다. 현금 형태로 보유하고 있는 부분도 있지만, 재고 자산, 아직 받지 못한 외상값, 토지 및 건물과 공장 시설, 특허와 같은 무형 고정자산 등 다양한 형태로 소유하고 있는 것이다. 현금 흐름이 세계적이라고 하는 삼성전자조차도 2백 몇조의 사내 유보금중 현금 자산은 32조에 불과하다. 현금 보유 2위인 하나은행의 현금 보유액은 9조 정도. 지불 준비금을 감안하며 그 현금은 맘대로 쓸 수 있는 돈이 아니다. 정확한 통계는 알 수 없으나 사내 유보금 대 현금 자산 보유 비율을 감안하면 30대 재벌의 현금 보유 금액은아무리 많이 잡아도 150조 정도를 넘지 않을 것이다.

민주당의 일부 인사와 좌파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재벌 그룹에 낮잠 자는 883 조' 운운하는 것을 보면 정말 무식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30대 재벌이 가지고 있는 현금 자산을 모두 환수해도 150조에 불과한데 883조를 환수한다는 것은 회사를 처분하여 부채를 청산한 후 주주에게 돌아갈 회사의 자기자본을 모두 가져가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디에서 이런 지식을 주어 들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런 아이디어를 내는 사람의 얼굴 좀 보고 싶다. 그래서 30대 재벌을 모두 해체해 버리자는 것인가.

한국은 20년 전에 IMF 사태의 혹독한 시련을 경험한 바가 있다. 알짜배기 기업들이 해외에 헐값으로 팔려 나가고 멀쩡하던 기업들이 파산하고, 많은 중장년 시민들이 한참 일할 나이에 실업자가 되고 노숙자가 되는 일까지 경험하였다. IMF의 원인은 경제 체질, 즉 재무구조가 악화되었기 때문이지만, 그 재무구조 중에서도 현금과 같은 유동 자산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산이 많고 사내유보금이 많아도 현금이 부족하여 채무 불이행 상태가 되면 기업은 망하게 되어 있다. 사내 유보금이 많고 현금 흐름이 좋다는 말은 기업 경영을 잘했다는 것인다. 이 기업들을 칭찬하고 자랑을 해도 모자랄 판에 마치 노동자를 저임금으로 착취하여 그 돈을 회사에 축적한 것처럼 생각하는 사람들이 현 집권 세력이라는 사실이 참으로 부끄럽다. 그나마 견실하여 나라의 경제를 이끌어 가는 몇몇 대기업조차 부실 기업으로 만들고 결국은 해외에 헐값으로 팔아 넘길 작정인가.

*헌법 제 126조: 국방상 또는 국가 경제상 긴절한 필요로 인하여 법률이 정하는 경우를 제외하고 사영 기업을 국유 또는 공유로 이전하거나 그 경영을 통제 관리할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