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문점 선언문 3조 3항은 애초에 애매모호하게 작성되어 중의적(重義的)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난 11일 미국의 소리(이하 VOA) 방송은 한국과 북한이 유엔에 공동 제출한 판문점선언 영문본(英文本)에 “남북이 올해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 적시되었다고 보도하면서, 이 영문본을 둘러싼 논란이 뜨거웠다. 당초 남과 북이 합의한 판문점선언에는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기 위한 회담을 개최한다고 되어있는데, 유엔에 제출한 영문본에는 그 내용이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VOA와 청와대 사이, 그리고 여러 언론들 사이에 논란이 있었지만 어쨌든 합의한 내용이 무엇인가에 대한 결론은 났다. 애매모호하게 작성된 한글원문의 합의문이 유엔에 제출된 영문본에 의해 유권해석이 내려진 듯한 모양새다. 결론은 남과 북이 ‘올해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했다’는 것이다. 유엔에 제출된 영문본 내용을 살펴보자.

9월 6일 우리 정부와 북한은 유엔에 판문점선언 영문본을 제출했다. 이 문서는 조태열 유엔주재 한국 대사와 김인룡 북한 대사대리의 공동 서명을 거쳐 유엔총회와 유엔 안보리에 동시에 회람됐다.

문제가 되는 조항은 판문점 선언 3조 3항이다. 이 조항에는 "남북이 정전협정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했다"며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대체하고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한국과 북한, 미국이 관여하는 3자 혹은 중국을 포함한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하기로 합의했다"고 적혀있다.

『The two sides 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 that marks the 65th anniversary of the Armistice Agreement and actively promote the holding of t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sides and the United States, or quad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sides, the United states and China with a view to replacing the Armistice Agreement with a peace agreement and establishing a permanent and solid peace regime.』

즉 유엔에 제출된 합의문대로 하면 남과 북은 두 가지를 합의한 것이 된다. 1) 올해 종전선언을 한다, 2) 3자 또는 4자 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한다는 것.

그런데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4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상회담을 끝낸 뒤 내놓은 선언문의 3조 3항이 애초에 애매모호하게 작성되어 중의적(重義的) 해석이 가능하다는 것이 문제였다. 3조 3항은 ‘남과 북은 정전협정 체결 65주년이 되는 올해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고 돼 있다.

즉, 읽는 사람에 따라 ▲‘종전 선언을 위한 3자 또는 4자 회담 개최 적극 추진’이라는 1개의 합의 사항으로 볼 수도 있고, ▲‘올해 종전 선언 및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 또는 4자 회담 적극 추진’이라는 2개의 합의 사항으로 볼 여지가 있다.

문제는 4월 회담 직후 정확한 해석을 요구하는 기자들의 질문에 청와대가 현재 유엔에 제출된 영문본과는 다르게 답변해왔다는 것이다. 청와대가 당시 외신기자들에게 배포한 영문 번역본에서 ‘연내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전환, 평화체제 구축을 위해 3자 혹은 4자회담을 적극 추진한다(actively pursue)’라고 번역했다. 즉 2개의 합의가 아니라, 종전선언 등을 위한 회담의 적극 추진이라는 1개의 합의라는 해석이다. 이 번역본은 지금도 청와대의 외신 보도자료에 그대로 올라가 있다.

『During this year that marks the 65th anniversary of the Armistice,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actively pursue t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Koreas and the United States, or quad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Koreas, the United States and China with a view to declaring an end to the War, turning the armistice into a peace treaty, and establishing a permanent and solid peace regime.』

또한 당시 한 문장에 여러 내용이 들어있어 해석에 논란이 일자 백태현 통일부 대변인은 정례브리핑에서 “종전선언 등 문제는 남북만이 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며 “3자 또는 4자 회담을 개최해서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한 것”이라고 친절하게 설명까지 했다. 종전선언은 전쟁 당사국들이 참여해야 한다는 점에서 미국을 제외한 남북 양측의 동의만으로는 진행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정부가 확인해 준 것이다.

그런데 VOA의 보도로 그동안 대한민국 정부가 설명해 온 합의내용과 달리 유엔에 제출된 합의문은 영어문장이 수정되어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기로 합의했다’라는 것이다.

논란이 일자 외교부는 “유엔에 제출된 판문점선언의 영문본은 남북이 합의한 국문본에 충실한 번역본”이라고 해명했다. 정부가 북한과의 합의를 바탕으로 연내 종전선언을 강하게 추진하는 만큼 내용상으로는 틀린 게 없다는 취지다. 즉 결론적으로 4ˑ27 판문점선언 3조 3항의 내용은 2개의 합의가 맞다는 것이다.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하기로 한다는 합의, 그리고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3자 또는 4자 회담 적극 추진.

그러면서 청와대의 최초 영문 번역본이 ‘비공식(unofficial)’ 문서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두 달 뒤인 6월 발행한 남북 정상회담 결과집에도 그대로 이 번역본을 실었다. 유엔에 배포하기 위해 번역본을 다시 손대기 전까지 따로 정리해놓은 공식 영문 번역본은 없었다.

청와대의 어설픈 해명에 이어, 연합뉴스 등 몇몇 언론들도 이번 일을 ‘단순 해프닝’으로 보도하고, 마치 VOA가 ‘종전선언을 적극 추진하는 한국 정부를 못마땅하게 여긴 미국’을 대신해 일부러 논란을 키운 것처럼 보도하자, VOA는 청와대 관계자와의 ‘단체 카카오톡’ 대화 내용까지 공개했다.

VOA에 따르면, 당시 미국 유력 일간지의 한국계 특파원은 단톡방에서 "종전 선언을 올해 한다는 겁니까? 아니면 회담을 올해 추진한다는 겁니까?"라고 물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종전 선언을 위한 회담을 올해 추진합니다"라고 답했다. 카톡 내용까지 공개한 VOA는 "당시 청와대 설명에 따라 외신들은 대부분 '(종전 선언이 아닌) 회담에 합의했다'고 보도했다"며 청와대 해명을 반박했다.

이번 논란을 보면서 놀란 것은 청와대가 북한의 비핵화 문제, 판문점선언 및 그 비준안 처리, 종전선언 등 국가적 중대사에 있어서 얼마나 ‘말장난’을 하고 있느냐 하는 것이다. 청와대는 설명해야 한다. 애초에 북한과 올해 안에 종전선언을 추진하기로 합의해놓고, 왜 아닌 것처럼 브리핑을 한 것인지, 또 미국 정부 측에는 어떻게 설명하고 전달해 온 것인지, 당시에는 미국의 눈치를 보다가 이제 와서 북한의 압박으로 ‘올해 안 종전선언 합의’로 문구를 수정한 것인지 등 설명할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대체 북한과 무슨 합의를 한 것인가. 이런 애매보호한 선언문을 들이밀며 지금 국회에 비준동의해 달라고 요구한단 말인가.

9월 17일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방문을 하루 앞두고 남북정상회담준비위원장을 맡은 임종석 비서실장은 프레스센터에서의 브리핑을 통해 이렇게 말했다. "이번엔 비핵화라는 무거운 의제가 정상회담을 누르고 있다고 할까, 이 대목이 이번 회담에서 저희가 매우 조심스럽고 어려운 점"이라며, "(비핵화) 이 부분은 실무적인 차원에서 논의할 수 없는 의제이고, 논의해도 합의에 이를 수 없는 것"이라며 "두 정상 간에 얼마나 진솔한 대화가 이루어지느냐에 따라서 비핵화의 구체적 진전에 대한 어떤 합의가 나올지, 또 그 내용이 합의문에 담길 수 있을지, 합의문이 아니면 구두합의가 이루어져서 발표가 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이 모든 부분이 저희들로서는 블랭크(blank, 백지상태)"라고 말했다.

역시나 ‘말장난’같은 애매한 표현들 투성이이다. ‘비핵화’라는 목표도 보이지 않고, 비핵화를 이루기 위한 구체적인 대화 방향에 대한 내용도 없다. 그러면서 ‘진솔한 대화’를 통한 진전이라니ˑˑˑ대체 무엇을 위한 대화를 하겠다는 것인가. 비핵화를 하겠다는 것인지 못하겠다는 것인지, 비핵화의 구체적 진전에 대한 확신도 없는데 평양은 왜 가는 것인지, 도통 이해할 수 없다.

지난 4월 이후 비핵화 논의가 진행될수록 문재인 정부의 의도와 말을 ‘믿을 수 없다’는 사실만 더욱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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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 판문점선언 3조 3항의 세 가지 영문 번역

한글 원문: "남과 북은 정전협정체결 65년이 되는 올해에 종전을 선언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하며 항구적이고 공고한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남·북·미 3자 또는 남·북·미·중 4자회담 개최를 적극 추진해 나가기로 하였다."

① 유엔 제출 번역

"The two sides 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 that marks the 65th anniversary of the Armistice Agreement and actively promote the holding of t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sides and the United States, or quad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sides, the United states and China with a view to replacing the Armistice Agreement with a peace agreement and establishing a permanent and solid peace regime."

② 청와대 최초 영문 번역

"During this year that marks the 65th anniversary of the Armistice, South and North Korea agreed to actively pursue t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Koreas and the United States, or quadrilateral meetings involving the two Koreas, the United States and China with a view to declaring an end to the War, turning the armistice into a peace treaty, and establishing a permanent and solid peace regime."

③ 북한 번역

"The north and the south agreed to declare the end of war this year, the 65th anniversary of the Armistice Agreement, replace the Armistice Agreement with a peace accord and actively promote the holding of north-south-U.S. tripartite or north-south-China-U.S. four-party talks for the building of durable and lasting peace mechanis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