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자를 배워야 우리말 실력이 풍부해진다 오늘 아침(10월22일) 조선일보(朝鮮日報) A12면 ‘삼성 응시생 당황하게 만든 “토사구팽”’ 기사는 다시 한 번 우리말을 생각케 한다. 많은 응시생이 토사구팽(兎死狗烹), 청렴결백(淸廉潔白), 당구풍월(堂狗風月), 몽매(蒙昧) 등의 한자말 뜻을 잘 몰랐던 듯하다. 학교에서는 가르치지 않고 사회에서는 사용하는 이중구조(二重構造) 때문일 것이다.

우리말을 표기하는 도구, 한글은 세계 어느 나라 언어학자들도 인정하듯 가장 발달된 문자다. 알파벳은 26자라고 하지만 발음기호가 있어서 사실상 글자 수는 30개가 넘는다. 하지만 한글 24자는 글자가 곧 발음기호이기도 하다. 이보다 더 발달된 글자는 없다.
하지만 글자가 곧 말은 아니다. 이를 간과(看過)하는 사람이 많아서 걱정이다. 우리말 속에는 한자말, 영어말, 일본말 등이 녹아들어 있다. 그 중에서도 한자말은 2천 년 동안, 사용되면서 우리 문명과 문화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우리는 그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 문자가 문명과 문화를 축적하는데 2천~3천년의 시간이 걸린다고 한다. 영어나 한자는 딱 여기에 해당된다. 영어는 그리스, 라틴어를 포함, 그 이전 페니키아, 이집트, 수메르의 문자와 개념을 이어받아 엄청나게 풍부한 언어가 되었다. 한자도 고대의 과두(올챙이)형 상형문자, 갑골문, 금석문(金石文) 등의 단계를 거쳐 기원전 3세기, 진시황(秦始皇)이 전국(戰國)을 통일하면서 현재와 비슷한 형태의 모습으로 정착했다.

한반도에 한자가 전달된 것이 삼국시대 초기라고 한다. 2천년 가까이 된다. 한 문명과 문화를 창출하기에 충분한 시간이다. 그것을 무시하고 지난 수십 년간 일부 계층에서 이 한자 문화를 깨부수려고 전력을 다해왔다.

한글이 가장 발달된 단계의 문자이긴 하지만, 역사가 572년에 불과하다. 그동안 모든 계층이 이 글자를 열심히 갈고 닦았다고 해도 순수한 우리말 개념어(槪念語)를 만들기엔 절대적 시간이 부족했을 텐데, 사회적 리더들은 창제된 그 글자를 450여 년간 쓰지 않았다. 최초의 한글사전이 만들어진지는 100년도 안된다. 문화어(文化語)로 발달될 틈이 없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글과 한국어를 구별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선지, 한자는 푸대접을 받아왔다. 유치원에서도 영어는 가르치는데, 고등학교에서도 우리말의 일부가 되어버린 한자말의 본 모습(漢字)을 가르치지 않는다.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이런 현실에서 많은 대기업 응시생들이 위의 문제에 정답을 쓰지 못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