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실과 범죄는 다른 것이다. 형법은 범죄를 예방하는 데 도움은 될지언정, 과실을 예방할 수는 없다. 과실치사란 형벌을 유지할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다. 미국에는 과실치사라는 형사상 죄가 없다. 즉, 살해하려는 의도(foul play)가 없다면 과실에 의한 어떤 경우라도 형사상 죄가 되지 않는다. 다만 민사상 배상 책임은 있으니 민사적인 책임은 당연히 가지게 되어 금전적으로 배상은 해야 한다.

우리는 일상생활 전 분야에 걸쳐서 일단 사람이 사고로 죽으면 과실치사라는 형사상 책임을 따진다. 죽은 사람은 한 번 죽으면 다시 살릴 수 없다. 죽일 의도가 없는 과실에 의한 사망 사건을 형사상 책임을 지게 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한 가지 이유뿐이다. 국가가 실형선고 가능성으로 가해자를 압박하여 피해자와 금전적 합의를 종용해서 피해자에게 적절한 금전적 배상을 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다.

우리나라가 경제개발도상국일 때는 돈 없다고 배 째라는 사망사고 가해자에게 국가가 개입하여 피해자에 대한 민사상 배상을 비싼 비용의 변호사 선임없이 쉽게 유도하는 게 필요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제 사회 안전망이 갖춰지고 일인당 국민소득이 3만 불인 세계 10대 경제규모의 나라이다. 이런 나라에서 아직도 과실치사라는 형벌이 필요한지 의문이다.

죽은 사람은 어떤 경우라도 살아나지 않는다. 더구나 살해하려는 의도가 없는 과실에 의한 사망사고에 대한 형벌은 재발 방지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여서 과실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과실과 범죄는 다른 것이다. 형법은 범죄를 예방하는데 도움은 될지언정, 과실을 예방할 수는 없다.

과실에 의한 사망사고는 민간차원에서 해결하고 과도한 국가 공권력 개입은 배제하는 게 맞다. 다만 과실이었는지 아니면 살해의도를 과실로 포장한 것인지는 당연히 경찰이나 검찰에 의해서 철저히 조사되어야 할 것이다. 그 이후 과실로 판명났을 때는 민사 사건으로 처리됨이 맞다는 생각이다.

과실에 의한 사고로 수영장에서 익사 사고가 발생하였다고 안전요원이나 수영장 주인을 감방에 보내는 일은 미국에서는 불가능하고 한국에서는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현실적으로 피해자와 합의가 되면 한국에서도 과실치사로 감방에 가지는 않는다. 결국 배상금 지급을 국가가 개입하여 처리하느냐 아니냐의 문제이다. 나는 미국 시스템이 맞다고 생각한다.

5년 전 응급실 과실치사 사건으로 민사상 배상이 다 끝난 사건을 얼마 전 법원 1심 형사재판에서 금고 1년~1년6개월의 실형선고를 하며 의사 3명을 법정 구속한 사건이 있다. 이전까지는 과실치사 의료사고로 실형 법정 구속을 받은 적이 전무하였는데 법정 구속이 처음으로 이루어져 의사들이 집단 반발을 하였다. 사람을 살리려는 선의를 가졌지만 과실치사가 발생하는 의료 분야뿐 아니라 다른 모든 분야에서 과실치사란 형벌을 유지할지 다시 생각해 봐야 할 시점이 아닌가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