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잘못되면 문재인 대통령의 책임일까? 문재인을 대통령으로 선출한 국민 탓일까? 혹은 둘 다일까?

조선이 망한 것은 이완용을 비롯한 을사오적(乙巳五賊)의 책임이라고 배웠고 이런 지식에 의문을 갖지 않았다. 그러다 이런 인식이 ‘배운 무식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그리 오래 되지 않는다. 나라건 단체건 개인까지도 망할 소지(素地)가 넘치면 외적에 의해 혹은 스스로 망한다. 그것이 역사의 가르침이다. 조선이 일본에 병합되던 무렵 조선은 망할 소지가 차고 넘쳤다.

이완용은 미국공사도 지내 당시 조정에선 세계정세에 가장 밝은 신하였다. 그를 친일파라지만 그는 일본어를 하지 못해 일본인과 만날 때면 통역을 동반했다고 한다. 그는 독립협회 초대 회장이기도 하다.
“조선이 독립을 하면 미국과 같이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며 만일 조선 인민이 단결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거나 해치려고 하면 구라파의 폴란드라는 나라처럼 남의 종이 될 것이다. 미국처럼 세계 제일의 부강한 나라가 되는 것이나 폴란드와 같이 망하는 것 모두가 사람하기에 달려 있다.”
회장이던 때 독립신문에 남긴 그의 글이다. 그 무렵 나라는 깊게 병들어 있었다. 이런저런 것들은 생략하고 한 사례, 김홍집의 죽음은 망할 수밖에 없었던 조선을 말해준다.
 
김홍집은 온건한 개화운동 주역이다. 요새 말로 하면 ‘보수파’다. 김홍집이 개화운동에 나선 것은 1880년 일본과의 불평등조약 재협상을 위한 수신사로 일본에 간 것이 계기다. 그는 이곳에서 국제정세 그리고 일본의 개방정책을 보았다. 돌아온 그는 일본에서 깨닫게 된 두 가지 일을 시행했다. 황준헌의 ‘조선책략’ 그리고 황관응(黃觀應)의 ‘이언(易言)’이다. 《조선책략》은 “조선이 독립을 유지하고 러시아의 남진책략을 막기 위해서는 중국과 친하고 일본과 우호를 맺고 미국과 연합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는 내용, 그리고 《이언》은 “나라의 부강을 위해서는 서양의 과학기술을 도입해야 한다”는 양무론(洋務論) 및 변법론(變法論)의 이론서다.
이 책을 조정에 바치고 개화를 시행하자 이른바 유림들이 반대운동에 나섰다. 대국(大國:중국)의 주자학을 절대선[正] 서양문물은 절대악[邪]으로 규정한 유림들의 이른바 위정척사(衛正斥邪)운동권에 마주친 것이다.

그로부터 15년 기간 조선의 정치는 격동의 연속이었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동학난, 청일전쟁, 민비시해 등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그리고 1895년 박영효 등의 급진개혁파가 무너진 뒤 은퇴해 있던 김홍집은 왕의 부름을 받았다. 그는 왕의 부름에 응하면서 가족에게 관직은 사양할 것이라는 결심을 말하고 집을 나섰다. 
“상감께서 밤새 조르시니 어찌 내 한 몸의 안전만을 위해서 상감의 간청을 거절할 수가 있겠느냐? 죽음을 각오하고 상감의 간청을 수락하고 나왔다”고 그는 말했다. 조선의 마지막 총리대신 자리를 맡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듬해인 1896년 2월11일 내각에까지도 아무 통고 없이 상감은 궁궐을 버리고 러시아 공관으로 옮아갔다. 소위 말하는 아관파천(俄館播遷)이다. 총리대신 김홍집은 정병하, 유길준 등과 함께 허겁지겁 경복궁 앞으로 달려갔다. 벌써 러시아파 새 내각은 경복궁 앞에 순검들을 배치해놓았고 보부상 수천 명을 동원해 삼엄한 경계를 펴고 있었다. 그는 돌아설 수밖에 없었다.

김홍집 내각 각료들은 광화문 해태상 앞에서 순검들에 둘러싸였다. 이때 일본 군인들이 달려와 김홍집에게 일본 수비대로 피신하라고 권고했다. 김홍집은 감연히 말했다.
“나는 명색이 조선의 총리대신이다. 내가 조선인을 위해 죽는 것은 떳떳한 천명(天命)이지만 다른 나라 사람에 의해 구출된다는 것은 수치스런 일이다.” 
마지막 말을 남기고 김홍집은 죽음을 맞았다. 그런데 기록은 참혹하다.

『(조선인) 경관들이 김홍집을 경무청의 문 앞으로 끌어내 난도질하고 가슴과 등을 칼로 내리쳤다. 시체의 다리 부분을 거친 새끼줄로 묶어 종로로 끌고 와 시신을 드러내놓게 하고는 거기에다 ‘대역부도 김홍집’이라 크게 쓴 장지를 붙였다. 길에 가득 차 있던 보부상들이 시체를 향해 큰 돌을 던지기도 하고 발로도 짓이겨 시체에 온전한 곳이 한 군데도 없도록 만들었다. <국사편찬위원회, (주한일본공사관기록) 권9>』

21세기 한국 그리고 광화문은 어떤 모습인가? 배운 무식자들, 21세기판 순검 그리고 그들을 조종하는 이런저런 기관이나 단체들 그리고 부화뇌동하는 현대판 보부상은 없는 것인가.
나라가 망하는 길을 가지 않기 위해 우리들 평범한 시민들도 주변을 돌아보고 생각을 가다듬어야 하는 것 아닌가.

2018. 11. 23.            
이영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