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공공지출 대폭 축소 등 사회 전반의 혁신이 필요한 때인데 우리 스스로 의원 정수를 늘린다는 건 염치가 없는 일입니다. 그동안 같은 당 대표가 이유가 뭐든 밥을 굶고 계시다는데 최소한의 인간된 도리로 그 단식의 명분이 되고 있는 연동형 비례제에 대해 발언을 삼가 왔습니다. 그런데 어제 단식을 푸셨다고 하니 이제 마음 편하게 그 문제에 대해 제 입장을 밝힐까 합니다.

우선 저는 지금의 소선거구제가 다수득표제로 사표(死票)가 발생할 수 있고 그러한 사표를 방지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정치에 입문한 직후에는 한때 그렇게 선거법을 개혁해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습니다.

그런데 좀더 한국정치의 특수한 상황을 겪어보고 나니 선거제도란 게 그냥 산술적 합리성만 볼 게 아니라 그 나라 특유의 권력구조와 민주주의의 작동원리, 그 나라가 처한 특수상황 등을 고려하지 않고 따로 떼어서 볼 수 있는 게 아니란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즉 이상과 현실 간에 괴리가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우선 우리나라의 권력구조는 제왕적 대통령제입니다. 즉 대통령이 입법부(여당), 사법부, 기타 사정기관과 모든 정부 산하기관의 기관장과 임원들의 인사권을 장악하고 그로 인해 심지어 민간영역에까지 인사에 사실상 영향을 미칠 수 있는데 그 영향력의 원천은 바로 대통령이 공천권을 통해 여당을 지배하는데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문재인 대통령 들어 훨씬 더 직접적이고 노골적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의 다수의사는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 남용을 국회가 강력히 견제해 달라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원리가 발현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현 대통령제에서는 대통령을 견제할 강력한 야당과 국회가 출현할 수 있도록 선거제도가 정비되어야지 오히려 이중대·삼중대를 양산하는 제도가 되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안 그래도 먹고살기 힘들어 죽겠는데 엉뚱한 소득주도성장인가 뭔가 실험해서 경제를 죽여버리고, 비핵화는 되지도 않는데 오매불망 김정은만 기다리며 아예 대놓고 내려오란 얘긴지 지뢰제거하지 비무장지대 정비 한다지 GP폭파하지 철도도로까지 시원하게 연결해서 깔아준다지, 해안선 철책이나 전방지역 군사시설 제거한다지, 정찰금지구역 설정해 북한 도발을 탐지하기 어렵게 한다지…도대체 뭐가 급한 겁니까? 너무 이상해서 정체성을 의심하게 됩니다.
핵의 일방적 불균형 상태에서 그렇게 북한의 도발에 무방비상태를 만들고자 하는가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비상상황이라고 현 정국을 인식한다면 강력한 단일야당이 출현하는 것이 나라를 걱정하는 다수의 민심을 제대로 대변하는 것이라고 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지 않고 각자 군소정당으로 존속하겠다고 하면 결과적으로 지리멸렬하거나 이중대에 불과한 다수의 야당이 생겨 대통령의 폭주는 걷잡을 수 없게 되고 나라의 위기를 그대로 맞게 됩니다(어쩌면 지금 그런 상황인지도 모릅니다). 더구나 국민들이 보았을 때 현재의 군소야당들이 도대체 어떠한 선명한 정치철학을 갖고 결기 있게 실현하고자 하는지 등 각 정당의 철학적 차이를 분명히 구분하기 어렵고, 국민들로부터 나라야 어찌되든 군소정당으로라도 차기총선에서 생존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계산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둘째, 지금은 공공지출 대폭 축소 등 사회 전반의 혁신이 필요한 때인데 우리 스스로 의원 정수를 늘린다는 건 염치가 없는 일입니다. 사실 경제가 이리 추락하는 것도 미래의 희망이 점점 없어지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가 지나치게 권력투쟁에 매몰되어 미래가 없고 책임이 없는 정치가 되어서 아닙니까? 따라서 의원정수는 어떠한 경우에도 늘리는 것을 반대합니다.

셋째 연동형비례가 무조건 좋은 겁니까? 연동형이라는 게 비례후보 리스트를 만드는 거지 않습니까? 그런데 우리나라의 현실에서 여당 공천권을 사실상 대통령이 쥐락펴락하는 상황에서 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한다는 건 사실상 '문재인 리스트'를 만들자는 것이나 다름이 없습니다. 어쩌면 문재인 대통령 입장에서는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격이지요. 그래서 더더욱 문재인 대통령이 제왕적 권한을 행사하며 폭주하는 현 상황에서는 결코 연동형이든 뭐든 비례제 확대는 절대 안됩니다.

정당 간 노선 차이가 분명하지 않은 우리나라 정치 현실에서는 나라야 어찌되든 군소정당으로라도 생존하기 위한 정치공학적 계산이 아닌가 하는 의심을 국민들로부터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제왕적 대통령에 대한 견제보다 정치적 생존에 집착하다 보면 자칫 과거 민한당의 유치송처럼 오히려 민심에 반하는 정치를 하게 됩니다. 공천개혁도 제대로 되지 않은 채 기득권 정치인들 중심으로 계보 정치하듯 패거리 지으며 다수정당이 난립하는 것은 '개혁'이 아닙니다. 여의도 정치의 논리나 정치공학에 매몰되지 말고 국민들 앞에 떳떳한 정치를 하는 것이 진정한 '개혁'일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