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살기 좋은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좋은 줄 모르고 대학생들이 데모나 하고 밤마다 술 취해서 다니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1970년대 해외 취업자가 늘어나면서 해외출국자 보안교육이 철저했다. 그때는 출국할 때마다 받아야 했다. 그때 있었던 이야기다.

부산에서는 해외취업 선원들이 많아 국민학교(대창국민학교) 교실을 빌려 교육을 했다. 단골 강사는 중정 부산지부에서 나온 분과 부산시경 외사과에서 나온 某 경위였다. 중정 부산지부에서 나온 분은 자기 소개가 없어 직책도 성함도 모르고 '조 대가리 강사'로 기억하고 있다. 늘 하는 강의 내용이 이승만 박사가 시골에서 강연했다는 '부지런한 농부와 게으른 농부'였기 때문이다.

"부지런한 농부 조 대가리(이삭)는 축 늘어지고, 게으른 농부 조 대가리는 빳빳합니다."
그래도 웃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중정에서 나온 강사인데 감히 웃을 수가 없었다. 그러자 강사는 흥이 깨졌는지 '제물'을 찾았다. "69번 교육생!"

그 당시는 해외취업자가 많아 한 회 교육생이 70명이 넘었다. 교실이 빽빽해 여름에는 더위와 땀 냄새로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갑자기 호출을 받은 교육생이 큰 소리로 대답했다. "예!"
강사가 고압적으로 말했다. "내가 방금 뭐라고 했습니까?" 69번 교육생은 차마 말을 못하고 머뭇거렸다. 그러자 강사가 "오늘 좋은 번호 받았는데 졸지 말고 똑똑히 들어요! 집에 가서 마누라한테 잘 해주고."

그 말에 어느 나이 지긋한 교육생이 손을 들고 말했다. "강사님, 할 말이 있습니다." 강의실 분위기가 서늘해졌다. "뭡니까?" 강사가 말했다

"지난 해도 같은 내용이던데 안보 교육하고 조 대가리하고 무슨 관련이 있습니까. 아무리 우리가 선원이지만 너무 인격을 무시하는 것 아닙니까?"
"아니, 당신 직책이 뭐요? 선장이요?"
"네, 선장입니다."
"선장이면 선장이지 안보 교육 도중에 강사한테 항의하는 겁니까? 당신은 특별교육을 받아야 되겠군! 나중에 교육 마치고 교무실로 좀 오시오!"
"예, 알았습니다."

그 때는 값 싸다고 싱가포르나 홍콩에서 북한산 북어는 물론이고 중공산 통조림만 부식으로 실어도 선원이 앙심을 품고 신고하면 선장이 불려가던 시절이었다. 그 선장은 해사(海士) 1기생 이맹기 제독이 설립한 ㅇㅇ해운에 근무하는 선장으로 해군 대령 출신이었다. 해사 후배가 중정 요직에 근무하고 있었다. 그 사건 후 '조 대가리' 강사는 좌천됐다는 후문이었다.

부산시경 외사과에서 나온 분은 흑판에 자기 소개를 하고 강의를 시작했다. 부산 남포동 환락가에 밤이 이슥하면 어느 취객이 "이 썩은 대한민국아!" 하고 외친다는 첩보가 돌았다. 비밀리에 수사를 하다보니 이상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잡고보니 북한 갑첩이었다. 잡히고 나니 후련하다고 말하며 이렇게 말했다.

"이 살기 좋은 대한민국에 태어나서 좋은 줄 모르고 대학생들이 데모나 하고 밤마다 술 취해서 다니는 것을 보면 너무 안타깝다. 내가 이 땅에 태어났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다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