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세 아기는 스스로 판단력이 없다. 그 아기에게만이라도 누군가 구명 재킷을 입혀줄 수는 없었을까? 부다페스트에서 유람선을 타고 야경을 즐기던 우리 관광객 33명이 탄 배가 다른 유람선과 충돌하여 탑승객 중 7명만 구조되고 7명은 사망한 것으로, 그리고 나머지 19명은 실종되었다는 비보가 날아 들었다. 6세의 아기에서부터 60~70대의 장노년층에 이르기까지 갖가지 사연과 추억을 남기는 가족 단위의 여행객들이 부푼 기대를 안고 떠났던 관광객들중 많은 분들이 죽었거나 아직 생사를 모른다고 보도되었다. 유감이지만 급류가 흐르는 차가운 강물에서 실종된 지 이미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서 생존자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생존자가 있을 가능성이 많지는 않아 보인다.

필자도 9년쯤 전에 내자(內子)와 함께 부다페스트의 도나우(다뉴브) 강에서 유람선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오래 전이라 기억은 가물가물하지만 '하블레아니' 호라는 독특한 이름 때문에 기억하는데 같은 유람선을 탔던 것 같다.

일부 우리 언론은, 해당 유람선에는 구명 조끼가 없었다는 보도에서부터, 또다른 언론은, 너무나 순식간에 유람선이 침몰했기 때문에 선박에 비치된 구명동의(救命胴衣)를 입을 시간이 없었을 것이라고 보도했다. 필자가 유람선을 탄 그 날도 구명 재킷에 얽힌 사소한 일화가 있었다.

필자는 안전 문제에 보통 사람들보다 훨씬 민감한 편이다. 우리가 유람선을 탄 날에도 유람선 선장이나 선원, 혹은 여행 가이드 그 누구로부터 안전 조끼에 대한 안내 방송이나 조언은 없었다. 필자가 여성 가이드에게 안전 조끼를 안 주느냐고 물으니, 의외라는 듯이 입을 필요가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제주도 출신인 필자나 집사람은 한때는 잠실에서 강북 쪽으로 한강을 가로지르는 수영 클럽 행사에도 거의 매년 참가했기 때문에 한강보다는 강폭이 약 200m 정도는 짧은 부다페스트의 도나우 강쯤은 배가 전복되더라도 너끈히 건널 자신이 있었다.

가이드의 실망스런 반응에 안전 조끼 착용을 포기하고 객실에 들어갔는데 한쪽 벽면에 수십 개는 족히 넘어 보이는 구명동의가 구비되어 있는 것이 보여서 우리 내외는 꺼내어 입었다. 동행한 일행 25명으로부터 따가운 눈총을 아랑곳하지 않고 유람선이 운행하는 동안 우리 내외는 구명 조끼를 입고 있었는데 그 배에서 구명 조끼를 입은 사람은, 40여 명의 승객 중 부부로 보이는 서양인 4명과 우리 부부가 전부였던 것 같다.

내 경험에 비추어 금번 사고 당시에도 해당 유람선에는 구명 재킷이 분명 구비되어 있었을 것 같지만 이번에도, 반드시 입도록 하는 조치는 취해지지 않은 것 같다. 또 한 가지는, 국제 항로에서 몇날 며칠을 바다에서 여행하는 쿠르즈 여행이 아니라, 금번처럼 한두 시간 내의 단시간 동안 강이나 바다에서 행해지는 유람선 여행이라면 배에 승선하고 있는 동안은 늘 구명 조끼를 입고 있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점이다.

'순식간에 일어난 사고여서 구명 동의를 꺼낼 시간적 여유가 없었을 것'이라는 OO일보의 언급은 전문가같지 않은 시각에서의 지적이어서 살짝 아쉬움이 남는다. 사고가 난 후에는 구명동의를 입을 수 있을 만큼 시간적 여유가 없고 기울어진 배에서 구명동의가 있는 곳으로 찾아갈 수도 없기 때문이다. 승객들은 유람선 실내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갑판에라도 나가면 요즘같은 절기의 야간 시간대에 강바람이 차갑기 때문에 구명 재킷은 찬 바람을 막아주는 보온 역할에도 도움이 된다.

수영을 못하더라도 구명 조끼만 입었더라면 물에 빠져서 죽으려고 밀어넣어도 물 속으로 잠기지 않으니 100% 생존을 보장했을 텐데 죽는 순간에야 구명 조끼를 왜 안 입었을까하는 허망한 교훈을 새겼을 것을 생각하니 너무나 안타깝다. 6세 아기는 스스로 판단력이 없다. 그 아기에게만이라도 누군가 구명 재킷을 입혀줄 수는 없었을까?

유유히 흐르는 한강을 운항하는 여의도나 잠실 선착장의 한강 유람선에 그 많은 탑승객들 중에 누구도 구명 조끼를 입은 승객은 아직 본 적이 없다. 더운 여름날 100명도 넘는 승객 중에서 유일하게 구명 조끼를 입은 나를 외계인처럼 쳐다보던 야릇한 승객들의 시선에 뻘쭘했던 기억이 새롭다.

다뉴브 강처럼 수상 교통 상황이 복잡하지 않은 한강에서 사고가 왠 말이냐고요? 다뉴브 강에서 사고를 당한 승객들도 사고 직전까지는 같은 생각이었을 것이다. 비가 많이 와서 유속이 빠르거나 역류하는 강물에서 유람선이 교각에라도 부딪히는 순간에도 이런 한가한 생각을 할 여유가 있을까?

불행을 당한 분들의 명복을 삼가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