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제징용공 배상 판결은 사실상 이념적, 정치적 판결이다. 이것이야말로 日帝 때 벌어진 일에 대한 경제적 보복 아닌가. 오늘자 조선일보 사설 하나의 제목은 '일본도 중국 수준의 나라인가'이다. 사설은 일본이 폭력적이고 야비하다면서 개탄하며 끝맺고 있다. 이 사설 내용을 보고 심히 우려되어 쓴다.

사설 내용은 이른바 강제징용공 배상 판결 이후 한일 간의 갈등 끝에 일본 정부가 우리를 상대로 경제 보복에 나선 것을 비난하는 것이다. 외국의 공격에 자국 편을 드는 것은 언론사로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이번 경우는 무턱대고 자국 편에 설 수만은 없는 일이어서 문제이다.

사설은 먼저 미국, 영국의 유력 언론사가 엊그제 실시한 일본의 대한국(對韓國) 경제보복에 대해 우려하고 있고 심지어 일본 내 유력 언론도 자국 정부의 태도를 비판한다고 운을 뗐다. 그러면서 일본의 무역 보복이 한국과 일본은 물론 각국이 긴밀하게 얽혀있는 전 세계 산업의 공급 체인을 교란시키는 부작용을 낼 것이라는 데 대부분 해외 전문가들 의견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일본에 비판적인 시각이 더 많다고 전제해놓고 시작하는 것이다. 그 후부터 사설의 논리모순과 단편적 판단에 따른 편향적 지적이 시작된다.

사설은 “1965년 국교 정상화 이후 한일 사이에 숱한 갈등이 벌어지고 충돌도 빚었지만 경제만큼은 긴밀한 상호 협력관계를 깬 적이 없다”며 우리와 일본은 사실상 하나의 경제권이고 주요 산업에서 두 나라 기업들은 시계 부품처럼 긴밀하게 연결돼 돌아가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일본의 보복은 50여 년간 축적해온 한일 경제협력의 틀을 흔들고 신뢰 관계에 근본적인 금이 가게 한다고 주장한다. 사실을 말한 후의 해석이 올바르지 못하다.

사설은 경제 부문은 정치적으로 개입할 일이 아닌데 일본의 보복은 정부 차원의 정치적 대응인 것이라 잘못되었다는 요지이다. 하지만 이른바 강제징용공 배상 판결이야말로 다분히 정치적인 것이고 그 판결 후의 문재인 정권의 태도도 정치적이었지 않나. 일본의 대한국 수출품목 규제조치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치적 보복으로 이해하듯이 일제 때 징용공에 대한 일련의 소송제기 과정과 그 재판 결과 또한 누가 보더라도 이념적이고 정치적이지 않나. 이것을 부인한다면 이번 사태를 논할 소양과 자격이 없다.

강제징용공 배상 판결은 사실상 이념적, 정치적 판결이다. 이는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할 수 있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일제 때 벌어진 일에 대한 경제적 보복이므로 사설이 말하는 바로 그 50년간 축적해온 한일 경제협력의 틀과 신뢰를 흔드는 것 아닌가.

우리 대법관 임명은 대통령의 권한이고 국회와 대통령의 의중이 강하게 작용한다. 대법관의 임기를 6년으로 한 것은 임기 5년의 대통령의 성향이 대법원에 일방적으로 작용하는 것을 견제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으로 문재인 정권이 들어서서 말하자면 보수우파 몫의 대법관 지명까지 문재인 정권이 차지해 버렸다. 즉 대법관 구성의 균형이 완전히 깨진 것이다. 이런 연유로 징용공 배상 문제 같은 이념적, 외교적, 정치적 사안들을 폭넓게 균형적으로 고려해야 할 그런 판결들이 왼쪽으로 기울고 있음은 언론이 더 잘 알 것이다. 이것을 모르거나 부인한다면 언론 자격이 없다.

그런 현실이 있는 한편, 사설 지적대로 1965년 한일협정 후에 한일 간에는 숱한 갈등이 있었지만 50여 년 동안 긴밀한 상호 협력관계를 깬 적이 없었다. 그런데 우리의 특정 이념 집단과 좌파 정권이 결국 편향적 대법원을 구성하여 그 긴밀한 관계를 깨뜨렸다는 건 삼척동자도 알만한 사실이고 그렇다면 일본이 그 관계를 깼다는 조선일보 사설의 지적은 논리모순적이고 왜곡된 것 아닌가.

사설도 그렇고 시민들도 대체로 '일본의 보복'이라는 표현을 쓰는데, 그 표현이 적절한지는 의문이다. 개인적으로는 '방어'적 성격이라고 보는데, 아무튼 이 ‘보복’이라는 단어는 우리의 공세에 따른 반작용임을 자인하는 셈이다.

서두에서 사설은 미국, 영국 언론의 일본 비판을 전했는데, 물론 그들은 비판할 수 있다. 문제는 조선일보가 취해야 할 입장이다. 미영의 언론은 이번 한일 간의 갈등 문제를 자세히 알 수 없는 위치에 있다. 단지 보편적인 국제질서에 대한 관념에서 우선 보이는 현상을 비판할 뿐이다. 더군다나 그 매체들의 면면을 보라. 리버럴하거니와 보수우익 성향의 정권들에 비판적이고 아베 정권과 트럼프 정권의 긴밀한 관계에 마뜩하지 않아 하는 편이다. 그러니 아무래도 이번 아베 정권의 조치에 비판적일 수밖에 없다. 시사 문제에 관심 많은 이들이라면 다들 짐작할 만한 이런 현실을 도외시하고 일부에 불과한 그들의 일본 비판을 무비판적으로 덜컥 수용하는 것은 한일 관계 정상화를 기대한다는 조선일보가 선뜻 취할 태도가 아니다.

우리 대법원의 판결과 이에 대한 문재인 정권의 태도는 국제법과 조약, 협정의 통례에 비추어보더라도 일본에 대해 도발적인 것이었다. 특히 이를 대화로서 해결하고자 하는 일본 정부의 다각도의 노력을 우리 정부는 외면했다. 여기에 일본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일본 기업은 자국 정부가 한국 정부와 맺은 협정 등을 믿고 이 땅에서 사업해왔다. 자국민과 기업이 타국에서 재산을 몰수당하면 가만히 있을 국가가 어디에 있겠나. 일본 아니라 어느 나라인들 가만있지 않게 마련이다. 사실 그것은 군사전쟁 사유에 속할 정도의 중대 사안이다.

사설도 “과거 한일청구권 협정문에 '양국 간 청구권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된 것으로 확인한다'고 명시돼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한국이 이 합의를 깼다고 일본이 분노할 수는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일본이 분노한 원인을 제거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 그런 인정을 해놓고도 “그러나 그것을 외교적 방법이 아니라 경제 보복이라는 폭력적이고 야비한 수단으로 표출하나. 양국 관계의 미래를 위해 실로 개탄스러운 일이다”고 하는 것은 일본더러 무조건 참으라는 소리이고 일본이 하는 방어는 무조건 잘못이라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조선일보의 시각과 판단은 反日에 앞장서는 좌파 단체들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바가 있어 심히 우려된다.

조선일보는 요미우리 신문 등도 아베 정부의 이번 조치를 비판한다고 하는데, 물론 일본 내에 그런 목소리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이 사실상 정권 차원에서 한국 내 일본 기업의 자산을 압류, 매각하려는 것에 분노하거나 상식 밖이라고 하는 일본 국민이 매우 많은 것도 현실이다. 즉 관건은 한국에 대한 경제 보복이 지나치다는 일본 내의 의견을 압도하는 의견들이다. 문제는 그런 여론을 잠재우거나 대응할 방법이 우리 정부와 조선일보에 과연 있는가이다. 위와 같은 조선일보의 사설은 문제 해결은커녕 한일 간의 국민감정을 본의 아니게 이간질하는 것이다. 가장 무서운 것은 양국의 국민들 간의 감정의 골이 깊어지는 것이다.

조선일보는 알아야 한다. 앞으로 공격받을 쪽은 우리이지 일본이 아니다. 아직은 보복이라 할 것도 없다. 일본은 100개의 카드 중에 고작 몇 개를 썼을 뿐이라고 하지 않나. 우리 언론은 일본도 피해가 클 것이라느니 운운하는데, 일본의 피해가 크든 적든 중요한 것은 우리가 입을 피해이지 일본이 입을 피해가 아니다. 가당치 않는 논리와 감정으로 공연한 싸움을 걸어서 피해를 본다면 그야말로 바보 같은 짓인데, 왜 언론은 ‘우리도 만만하게 지지는 않을 것, 일본도 피해를 볼 것’이라는 어린애 같은 소리들을 하며 기업 생각은 눈꼽만치도 없는 反日좌파 세력들의 간을 키우고 있나.

조선일보는 중요한 사실을 놓치고 있다. 요미우리 신문 등 일본 언론이 자국 정부의 경제 보복을 비판한다고 하지만 그들은 결국 한국에 대한 보복으로 일본이 입을 작은 피해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를 걱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국 기업의 이익을 걱정해주고 있는 것이다. 요미우리나 아사히 신문의 성향이 아베 정권에 비판적이라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어쨌든 그들은 자국 기업의 피해를 걱정하느라 자기네 정부를 비판하는데, 이런 태도를 조선일보는 좀 배울 수 없나? 요미우리나 아사히의 아베 정권 비판 보도만 발췌해서 옮길 게 아니라 그들처럼 조선일보도 우리 기업을 위해 문재인 정권 비판에 열을 올릴 수 없겠느냔 말이다.

조선일보의 사설에 시비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조선일보의 역할이 그만큼 크다고 보고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다른 매체들의 올바른 리더가 되라는 의미이다. 조선일보가 일본의 일부 보도를 옮겨가며 일본 정부를 비판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문재인 정권에게 자신감만 불어넣어 줄 뿐이다. 설마 그 이유에서 그런 사설을 쓰는가? 조선일보도 反日的임을 이제 커밍아웃하는가? 그렇지 않다면 양국 국민감정을 악화시키는 발언은 중단하기 바란다. 보다 깊이 있고 보다 본질적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조선일보가 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