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이 옭아맨 후 김대중·노무현도 건드리지 않던 전두환을 박근혜가 나서서 새삼 자근자근 밟기 시작했다. 2013년 6월 11일, 취임한 지 불과 4개월이 채 안된 박근혜 대통령(이하 직함 생략)은 국무회의를 통해 "고의적, 상습적 세금 포탈이 사회를 어지럽혀 왔다, 엄정한 법의 심판을 받도록 해야 한다"라며 "전직 대통령 추징금 문제는 과거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가 해결 못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라고 선포했다. 필자는 방송을 통해 본 그 모습을 지금도 선연히 기억하고 있다. 문재인이 수년이 지난 사건들을 들춰 재조사를 지시한 것보다 더욱 추상같았다.

이미 국회에는 당시 야당이던 최재성 의원 등 11명이 발의한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일명 '전두환 추징법'이 계류 중이었다. 당시 집권 여당인 새누리당(지금의 한국당)의 암묵적인 반대로 사실상 통과가 어려운 채 폐기될 상황이었으나 박근혜의 발언이 있은 후 돌연 입장을 바꿔 속전속결로 합의가 이뤄졌다. 이렇게 '전두환 추징법'은 박근혜의 '추징 의지' 발언 보름여 만에 전격적으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김영삼이 옭아맨 후 김대중·노무현도 건드리지 않던 전두환을 박근혜가 나서서 새삼 자근자근 밟기 시작했다.

이 법은 본인뿐 아니라 가족이나 측근 명의의 재산도 추징할 수 있고, 압수수색도 할 수 있고, 시효도 10년으로 늘었다. 검찰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입법 19일 만에 전두환 자택 압수수색을 시작으로 가족들 재산까지 다 뒤졌다. 둘째 아들의 이혼한 전처 재산까지 뒤졌다. 전두환 부인 이순자 여사는 "우리가 존경하고 모셨던 박정희 전 대통령의 따님이 그렇게 했다는 것에 너무 충격을 받았다"라며 "나는 진짜 죽으려고 했다"라고 나중에 한 방송 인터뷰에서 억울한 심정을 토해냈다.

지금까지 수사와 정황상 밝혀진 결론은 전두환은 천문학적 금액의 정치자금을 모았지만 이를 개인적으로 착복한 게 아니라 정치권에서 골고루 나눠 썼다. 김대중·김영삼에게도 나눠졌다. 그리고 전두환은 이 돈을 거두면서 특정인이나 특정 업체와 거래를 한 사실이 없다. 물론 소위 '고물'이야 있었겠지만 지금까지 검찰은 전두환 아들들의 재산까지 털어감으로 사실상 '고물'도 남은 게 없는 것 같다.

앞으로 이 '전두환 추징법'은 결국 박근혜의 전재산도 몰수하게 될 것이다. 박근혜 재판(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2심 벌금은 1심의 180억 원에서 20억 원이 늘어난 200억 원이 선고되었다. 벌금과 추징금으로 115억 원이 청구된 국정원 특활비 2심 재판이 아직 남아 있지만 이미 확정된 벌금만으로도 박근혜로서는 전 재산을 다 털어 넣어도 갚을 수 없는 액수다. 그렇다면 머잖아 자신이 독설을 날렸던 '전직 대통령 추징금' 문제가 될 판이다.

오늘날 보수우익의 궤멸은 어느 날 갑자기 이뤄진 것이 아니다. 이처럼 보수우익을 해치거나 옭아매는 갖가지 악법들이 작용을 한 것이다. 모두가 한국당(역대 전신들 포함)의 협조 아래 만들어진 법들이며, 특히 최초에 제정한 '5·18 특별법'은 앞장서 만들었고 '박근혜 탄핵법'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파괴력을 발휘해 왔다. 박근혜 탄핵은 말 그대로 박근혜 탄핵이지만 5·18 특별법은 대한민국 정체성 탄핵이었던 것이다. 작금의 한일 간 긴장고조도 이와 무관할 수 없다. 이제 와서 뒤집을 수도 없는 살아 있는 성역이 되었다. 그로 인한 결과는 운명에 맡기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