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의 기적'이 화염병과 죽창으로 이뤄진 게 아님은 너무나 잘 알면서도 화염병 들고 죽창 들었던 사람들이 주인 행세하고 있다. 전후 사정이야 어찌 됐든 한일합병으로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은 36년간 섞여 살았다. 한국인 누구도 친일로부터 자유로울 수가 없다. 좌익들이 자신들과 뜻이 맞지 않으면 친일파라고 공격하는 것은 아주 사악한 폭력이다. 천박한 '우리끼리' 이념에 사로잡혀 세상을 어지럽히는 불량배에 다름 아니다. 같이 어울려 살았으면서 이제 와서 패를 갈라 적대하는 것은 너무나 가증스럽다. 특히 일제 헌병 오장 아들이나 총독부 참의원 손자 같은 자들이 말이다. 필자는 그들을 그들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엮어 욕할 마음은 없다. 다만 그들 패거리들이 지금 오히려 다른 이들을 상대로 친일파라고 악을 쓰니 가증스럽다는 것이다.

한일합병이 되고 대부분 조선인들의 의식은 나라의 주인이 李氏가 되었든 일본 천황이 되었든 별 차이가 없었다. 이는 당시 신문 보도들을 살펴보면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는다. 갑자기 된 것도 아니고 오랜 시간을 두고 벌어진 일이었다. 오히려 일제하에서는 탐관오리들의 착취가 덜했고, 노예나 마찬가지였던 하층민들에게는 살 길이 열렸다. 일제가 벌이는 각종 기간산업에 일자리가 생겼고, 일본으로 건너가 공장이나 탄광에라도 취직이 되면 한 밑천 잡을 기회가 생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일본으로 건너가기 위해 온갖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밀항자들도 속출했다. 산업화로 진보하는 과정이었다.

일본으로 갈 수 없는 사람들은 만주로 떠났다. 학교에서는 일본인들에 의해 토지를 빼앗긴 사람들이 간 것으로 가르치고 있지만 이들은 대부분 머슴이나 소작농 출신들로 애초에 땅이 없었던 사람들이다. 만주에 가면 넓은 들판이 있다는 소문 따라 개간하러 떠난 것이다. 일부는 장사도 하고 그렇게 사회를 이루고 살다가 해방이 되었으나 북쪽에 공산주의 나라가 들어서자 갇히고 말았다. 이것이 오늘날의 조선족인 것이다.

간혹 살 만한 양반네가 떠난 경우도 있다. 우리는 이들 모두가 家産을 정리하여 독립운동을 위해 떠난 것으로 배웠지만 누가 알겠는가. 이들 중에는 조선에서는 이제 더 이상 양반 행세를 하며 살기가 어렵다고 생각하고 떠난 것인지, 또는 무슨 범죄를 저지르고 달아난 것인지 자세한 내용은 알 수가 없다. 김구만 하더라도 조선에서의 행적이 항일운동가였는지 우범자였는지 불분명하다. 지금도 많은 국민들이 해외로 떠나고 있다. 독립운동하러 떠나는 게 아니라 새 삶의 터전을 마련하여 떠나는 것이다.

내 처의 작은 외할아버지는 지금은 타계하시고 안 계시지만 유명한 분이다. 광복군 출신의 독립운동가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총리 물망에 올랐지만 끝내 응하지 않으셨다. 이 분이 광복군에 몸 담게 된 것은 일본 유학 중 학병 징집되어 장쑤성 쉬저우에 배치되었다가 탈출하여 광복군을 찾아간 것이다. 만약 징집이 되지 않았더라면 광복군 입대도 없었을 것이다. 그러면 지식인으로서 일제하의 대학교수라도 지냈을 것이고 지금은 친일로 낙인찍혔을지도 모를 일이다. 나는 이를 운명으로 본다.

필자는 사람이든 무엇이든 운명이 있다는 것을 믿는 편이다. 인생에서 본인이 개척할 수 있는 여지는 아주 제한적이다.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인으로 행세하며 사는 것이다. 외국인이 되기를 원한다고 해서 함부로 바꿀 수가 없다. 서류상으로는 바꿀 수 있어도 인종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일본에서 태어났으니 일본인이고 한국에서 태어났으니 한국인인 것이다. 그런저런 사람들이 다 모여 사는 곳이 미국이다. 이를 보면 순종보다는 잡종 사회가 더 잘 사는 것 같다. 합리적인 사고와 준법정신이 이를 가능케 해주는 것으로 필자는 본다. 혹은 여기서도 '우열의 법칙'이 존재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은 지금 뒤로 돌아가고 있다. '우리끼리' 정신이 합리적인 사고 체계를 망가뜨리고 있다. '한강의 기적'이 화염병과 죽창으로 이뤄진 게 아님은 너무나 잘 알면서도 화염병 들고 죽창 들었던 사람들이 주인 행세하고 있다. 이들은 반평생 법을 어기며 산 사람들이다. 자기들만이 정의고 선이다. '불법의 정의와 선'이라는 역설이랄까. 막무가내다. 자기들 뜻에 맞지 않으면 공격 대상이다. 대한민국을 세우고 경제력 세계 10위권의 기적같은 발전을 이룬 선배들을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선배들이 우여곡절 끝에 구축해놓은 이웃 나라들과의 우호관계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오직 자신들이 예전부터 생각해오던 북한과 중국으로만 자빠지려 한다. 북한이 저렇도록 비참하게 살고 있는 현실을 뻔히 바라보면서도 그들과 합치기만 하면 모든 게 다 잘될 것으로 생각하는 듯하다.

그들은 그렇다 치고 이를 바라보고도 무엇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분간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국민들(특히 젊은이들)이 문제다. 이웃 나라와 싸움 걸면 지지율 올라가는 것이 바로 '우리끼리' 현상, 즉 동네 양아치패 현상이다. 물론 교육이 잘못된 탓도 있지만 눈 앞에 보이는 것조차 분별을 하지 못한다는 것은 합리적인 사고 체계가 망가졌기 때문이다. 무슨 수단으로든 하루라도 빨리 이를 바로잡지 못하면 대한민국은 결국 도태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