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먼 광주를 먹는다? 설사 먹었다고 해도 통일이 될까? 왜 광주냐? 먹는다면 차라리 가깝고 머리인 서울을 먹고 말지.＂ 남한 침투시 서울에서 잡혔지만 술주정꾼으로 모면할 만큼 작은아버지는 술을 좋아하셨다. 제 결혼식 때에도 북한서민 중에 서민이 마시는 카바이트 술도 사양하지 않고 마셨다. 기분이 좋으셨을 때 대남사업상 말하기 힘든 문제를 물었다. 사실 누구나 궁금하기 그지없는 문제이기도 했다.

그것이 바로 5.18 광주사건에 대한 것이었다. 이에 대해 북한사회에 파다하게 알려진 것은 <우리 사람들의 공작결과>라는 것이다. 이것이 얼마나 지독한 믿음으로 굳어진 것이었나 하면 탈북하여 여기에 와서도 여전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주성 탈북작가는 이런 주장을 담은 책까지 냈다. 그의 저서 <보라빛 호수>에서 5.18은 김대중의 요청에 의해 북한 특수군이 광주 도 청사에 지휘부를 두고 벌인 시가전이라고 한다. 5.18 현장 취재기자였던 조갑제의 기사에 대해서는 글로 담지 못할 욕을 하며 부정한다.

그러면서 5.18 북한특수군 작전은 국정원, 기무사, 검찰이 인정한 것이라고 공개적인 사이버 상에서 말한다. 이것이 맞느냐 틀리나 1억 원 내기까지 걸자고 한다. 5.18을 국가기념일로 정한 것이 벌써 30년 가까이 되었는데도 이런 주장과 당당함에 어안이 벙벙하다. 분명한 것은 근거를 가지고 나와 언론과 공인중개사 입회하에 논하자고 하면 딴소리하는 것이다. 그리고는 오히려 상대가 안 나왔다고 큰 소리 친다. 대화가 안 되는 것이 특징이다.

한편 남한의 군사평론 박사 지만원도 5.18은 <600명 북한 특수군 작전>으로 확신, 이에 국회의원들까지 호응할 정도이다. 그의 주장은 또 유명한 탈북인사 거의가 <광수>라고 한다. 그 중에 나도 속해있다. 버선목이라고 뒤집어 보일 수 없다고 하나 나의 경우는 그렇게 할 수 있다. 5.18 때 북한에서 쓴 생활총화기록장을 가지고 있는 유일한 탈북자이기 때문이다(1980년 5월21일 쓴 기록장).

또한 중앙당 국제비서였던 황장엽의 망명 전 쪽지 글을 보면 5.18은 <북한 공명주의자들의 망동>이라고 했다. 이 쪽지를 맨 처음 입수한 전 월간조선 편집장 김용삼 기자는 엄청난 기사감이지만 공개하지 않고 황장엽이 남한에 온 지 1년 후 이 구절을 진지하게 물었다. 이때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했고 함께 온 김덕홍이 부연하자 자제하라 충고하기도 한다.

황장엽은 대남전문기관에 있지 않아 그마저 소문을 들었고 실제로 남한에 와서 근거적으로 들어보니 아니라고 판단한 것 같다. 당시 김덕홍은 굽히지 않았다. 그의 주장은 5.18 후 대남부서 친구들이 일제히 훈장을 받았다는 것이다. 훈장 받았다는 것은 사실이라고 필자도 믿는다. 수령님의 현명한 영도 하에 남조선 혁명도 혁혁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기분 좋은 분위기 속에서 얼마든지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김덕홍도 남에게 들었다는 선이다. 유고 작으로 썼다는 자서전에도 5.18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없다.(참 웃지 못할 희극은 황장엽, 김덕홍도 5.18 <광수>라는 것이다.)

북한의 중앙당 비서와 그 일행도 이렇게 혼란스러운 것이 5.18이다. 그러면 작은아버지의 5.18에 관한 말은 무엇일까. 작은아버지는 최초의 대남공작원 대학인 송도정치대학 1기생이다. 직접 남조선에 침투했던 대남 공작원이었다. 그 업적으로 대남공작의 본산인 중앙당 3호청사 과 비서였다. 은퇴 후에도 대남공작원 훈련교관이었다. 그 맏아들은 대남침투부대인 인민무력부 정찰국 군관이었다. 아마도 5.18 관련하여 이런 전문부서 요원은 없으리라 본다.

과묵하기 이를 데 없고 또 비밀부서에 있는 처지이지만 결혼식하는 조카에게 찾아왔고 그 결혼식의 주인공이 진지하게 묻는 말에 피할 수 없어서인지 묵묵히 한참 있다가 입을 떼신다. 직설적인 표현은 하지 않았으며 단 알아들을 수 있게 에둘러 표현하신다.

나의 질문 - <인민군 특수부대가 5.18 광주사건을 일으켰다고 소문이 자자한데 사실인가요?>
작은아버지 -<(5.18에서) 전두환이 가장 좋아할 일이 뭐겠냐?(북한이 개입되었으면 가장 좋아할 것이란 암시를 이렇게 표현) 우리가(대남공작부서) 그 전두환을 도와줄 머저리들이 아니다. 영웅적 인민군이 맞다. 하지만 소련군보다 더 세다고 할 수 있냐? 그 소련군도 미국이라면 쩔쩔 맨다.(당시는 1987년으로서 미국이 지원하는 아프카니스탄 탈레반에 고전하는 소련군을 염두에 둔 것 같음). 그 미국의 항공모함 전단이 남조선에 이미 전개되어 있다. 그 먼 광주를 먹는다? 설사 먹었다고 해도(점령을 이렇게 표현) 통일이 될까? 왜 광주냐? 먹는다면 차라리 가깝고 머리인 서울을 먹고 말지.>

5.18에 대해 작은 아버지 말은 이게 다이지만 느낌은 평범한 우리들이 있을 수 없는 저 높은 곳에서 다 내려다보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 다음 간간히 말씀하는 것들은 남조선 발전상이다. 물론 발전했다는 표현은 쓰지 않으셨다.

<남조선이 자동차를 30만 대나 팔아먹고 있어(외국수출)>

이 말씀을 하시는 안면은 고향사람들에게 대한 긍지인지 자랑인지 아무튼 흐뭇한 상이다. 적대적인 감정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쟈들은 고속도로가 많아.> 그리고 한참 있다가 <전쟁나면 우리는 고속도로 타고 빨리 가고 적들은 공화국으로 오기 힘들어지고> 그리고 빙그레 웃으신다. 여기서도 적어도 적대감은 없으셔보였다. 그리고 김대중, 김영삼을 마치 우리 편처럼 말하는 것이 기억에 또렷하다.

나의 결혼식 장소는 평남도 순천시 은산노동자구(현 은산군)였다. 여기까지 작은아버지는 평양에서 기차타고 오셨다. 왜 승용차를 두고 오셨는지 짐작이 충분히 갔다. 바로 얼마 전에 큰아들 결혼식 때 큰 경을 치르셨기 때문이다(맏아들 결혼식 사진에 있는 어두운 얼굴 들).

지방에 있는 색시가족이 평양으로 오자니 통행증이 없어 결혼식 날을 어길 것 같다. 하여 작은아버지가 친히 승용차로 데려오는 과정 동북리 초소(평양북쪽)에서 걸린 것이다. 아무리 사정해도 통과시키지 않는다. 와이로를 쓸 줄 모르는 작은아버지이다. 결혼식 날이 낼인데 할 수없이 <중앙당간부 권한>으로 색시 가족을 데려왔다.

이것이 직보되어 결혼식 끝나고 <혁명화>로 1년 동안 지방공장에서 고생을 했다. 당시 작은어머니는 속상해서 앓아누울 정도였다. 그러지 않아도 색시가 못 생기고 맘에 안 들었는데 남편을 잡았으니 그럴 만도 하였다. 보다 심히 우려되는 것은 지방으로 추방당할까 봐서이다. 추방시키지 못해 트집을 못 잡아 난리인 판에 <혁명화>에 걸렸으니 그럴 만도 했다. 하지만 워낙 신망이 있고 중요부서 요원이기에 재기되었다.

나의 결혼식 끝난 후 은산역에서 객차에 오르시는 작은아버지! 옥수수를 한 배낭 드렸는데 군말 없이 받아 등짐 지시고 오른다. 개성 출신의 작은어머니의 잔소리가 들린다.

<야! 야! 작은아버지가 중앙당 간부지 우리식구는 아니다. 강냉이 국수라도 많아야 손님 오면 치루지(접대)>

작은 엄마의 말은 북한의 일류과학자 이승기 박사의 부인 말과 겹친다(1982년 과학원 함흥분원에 갔을 때 들은 말).

<아이고! 전국에서 손님이 오는데 (대접할)강냉이 국수라도 많았으면 좋겠어요.>

북한은 식량배급제이기에 간부라도 자기 먹을 것 외에 더 주는 것이 없기 때문이다. 아무튼 객차에 오르시는 잘 생기고 허우대 크신 작은아버지가 마지막 모습이 되었다. 차후 폐암으로 돌아가셨다고 한다. 고향은 전라북도 익산군 함열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