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정치권은 여든 야든 모두가 적폐다. 좌익에서 보면 우익이 적폐고 우익에서 보면 좌익이 적폐다. ·
한국의 정통 보수 우익은 전두환의 민정당을 끝으로 세력 보전을 하지 못했다. 노태우가 김영삼을 끌어들였다가 당한 것이다. 김영삼은 박정희 전두환 정권 하에서 反보수 거두였으나 동지였던 김대중과 단일화에 실패하자 '우리가 남이가'라는 지역 정서를 기반으로 노태우와 손을 잡았다. 개살구와 참살구를 접붙인 격이다. 우열의 법칙에 의하면 김영삼의 사이비 보수는 정통 보수 안에서 희석이 되어야 하나 오히려 정통을 몰아내는 기현상을 초래했다. 악화가 양화를 구축한 셈이다.

박정희 키즈였던 전두환 노태우 세력이 김영삼 세력에 의해 무참하게 제거당하자 박정희의 개척 정신도 큰 상처를 입고 말았다. 필자는 '박근혜 탄핵'과 '5·18 특별법'을 사이비 보수 김영삼(계)의 반란이란 측면에서 동일 선상으로 이해하고 있다. 5·18 특별법으로 전두환 노태우가 감옥에 갔고, 박근혜 탄핵으로 박근혜와 이명박이 감옥에 간 것이다. 모두가 박정희에 대한 화풀이의 연장으로 본다. 이명박이 박근혜의 단일화 협조로 정권을 잡았으나 정체성을 얼버무리고 삽질하다 퇴장하고, 박근혜 등장은 정통 보수 우익의 마지막 불꽃이었다. 김영삼계는 드디어 박근혜 탄핵이라는 확인 사살까지 하고 말았다.

한국에서 정통 보수의 역사는 일천하다. 이승만의 건국 이념인 자유 민주주의와 박정희의 근대화(개척) 정신을 정통 보수 정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건국 정신은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끊임없는 도전을 받았고, 개척 정신은 민주화라는 허울을 쓴 역시 공산주의자들에게 시달렸다. 김영삼은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나 어리석게도 공산주의자들의 숙주가 되어 결과적으로 그들의 앞잡이 역할을 하고 말았다. 다시 정리하면 한국에서 정통 보수는 안정된 역사가 아니다. 그나마 안정화 단계였던 박정희 전두환 정권이 지금은 독재시대로 폄훼되고 있다.

원래 경쟁적 동지 관계였던 김영삼계와 김대중계는 앙숙이 아니다. 3선 이상의 노회한 국회의원들은 사석에서 서로 형님 아우님 하면서 인간적 유대가 돈독하다. 그 뒤에 줄 선 이들도 다 같다. 서로 손잡고 권력을 나눠먹기 하려는데 정통 보수라 하기에는 어울리지 않지만 친박을 비롯한 그래도 양심이 남아 엉거주춤한 일부 세력이 개밥의 도토리처럼 불편한 것이다. 이것이 지금 정치 지형이고 국민들도 그 틀 안에서 줄을 서고 있다.

건국이고 근대화고 지금 세대들에게는 별 감회가 없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있었고, 경부고속도로나 포스코도 이들에게는 원래 있던 것이다. 이유야 어쨌든 지금 이 나라 신진 세력인 10대는 물론 20~30대에서는 박정희를 잘 모른다. 40~50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는 것이라고는 '독재를 하고 인권을 짓밟은 나쁜 지도자' 정도다. 이런 상황에서 박정희 정신을 내세워 할 수 있는 정치의 빈자리는 없다. 박정희의 긍정 이미지는 사라졌고, 그런 지도자가 다시 나타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칭 정통 보수라 하는 사람들도 무엇이 보수의 가치고 무엇에 대한 보수인지 불분명하다. 박근혜부터 자기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확고한 정치적 후계자란 개념이 뚜렷하지 않은 것으로 필자는 본다.

'이승만 정신은 자유민주주의 국가 건설'이란 한 마디로 요약할 수 있겠으나 박정희 정신이라 하면 많은 이미지들이 떠오른다. '근대화' '산업화' 새마을 정신' '부국강병' '반공' 등. 필자는 박정희 정신을 '하면 된다'라는 '개척 정신'으로 요약하고자 한다. 오랜 세월 주변국의 억압 속에서 나약하고 굴종적으로 체화(體化)된 민족적 종놈 근성을 깨운 것이다. 한반도에서 박정희가 일군 역사만큼 창대했던 때는 일찍이 없었다. '개척 정신'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현재 정통 보수라 자처하는 정치권 세력에서는 이 정신이 없다. 이들에게 보수는 '개척'이 아니라 '안주'일 뿐이다. 오히려 좌익들이 지금 비록 잘못된 길이지만 '하면 된다'라는 박정희 정신을 확실하게 실천하고 있다. 못할 짓이 없다.

현재 정치권은 여든 야든 모두가 적폐다. 좌익에서 보면 우익이 적폐고 우익에서 보면 좌익이 적폐다. 옆에서 봐도 적폐다. 판갈이를 해야 하긴 하는데 스스로 실행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국내 상황뿐 아니라 국제 정세마저 심상찮으니 아마도 또 한 번 큰 변란을 겪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막연하나마 깊은 우려가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