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대 중반 법무장교로 임관됐을 때였다. 장교가 변사체로 발견됐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시체 부검을 하는데 직접 가보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나이 지긋한 군의관과 죽은 장교가 소속했던 부대로 갔다. 연병장 구석에 시신이 천으로 덮여 있었다. 나는 시신을 대하기가 섬��했다. 부검이 시작되자 나는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초짜인 나를 보고 군의관의 묘한 장난기가 동한 것 같았다.

“군대 검사면 부검을 지휘해야지 다른 데를 보면 안되지?”
그는 나보다 열다섯 살은 많은 형 같은 사람이었다.

“이거 한번 냄새 맡아 봐.”
그가 작은 자루같은 것을 시신에서 꺼내 보였다. 코를 찌르는 폭력적인 냄새가 났다. 그가 싱글싱글 웃으며 사람의 위라고 알려주었다. 이어서 그는 시신을 해부하면서 내게 여러 가지 의학적 지식을 가르쳐 주었다. 그가 말을 할 때 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다른 곳을 보았다. 피가 싫었다. 그때였다. 나의 사타구니 사이로 시체의 손이 쑥 들어왔다. 나는 펄쩍 뛰었다. 돌아보니 고참 군의관이 장난을 쳤다. 그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웃고 있었다.

“야 이 나쁜 놈아.”
나는 울상이 되어 화를 냈다. 자칫하면 “엄마” 하고 소리칠 뻔했다. 나는 용기가 없고 겁쟁이고 남자답지 못했다. 그 뒤로 몇 달 동안 고기를 먹지 못했다. 밤이면 부검을 했던 그 남자가 창자를 드러낸 채 내게 걸어오는 것 같았다.

변호사를 하면서도 잔인한 살인범을 대하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그의 눈에서 기분 나쁜 푸른 화염 같은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어떤 도끼 살인범의 누런 눈동자의 홍체 안에서는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것 같기도 했다. 전국적으로 이름난 조폭 두목들도 만났다. 그들에게서는 뱀 같은 독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먹고는 살아야겠는데 변호사라는 직업을 잘못 잡은 것 같다는 후회를 하기도 했다. 특히 감옥에서 나는 기름기 섞인 쿰쿰한 냄새가 싫었다. 늘어 붙은 것 같은 접착력이 강한 냄새였다.

나는 용기를 얻기 위해 성경 속의 인물들을 살펴보기도 했다. 그 속의 인물들도 대충 겁쟁이들이었다. 아브라함은 죽을까 봐 아내를 여동생이라고 속였다. 이삭은 다른 사람이 자기 우물을 메우고 심술을 부리면 저항하지 않고 피했다. 내성적인 야곱은 사기꾼 기질이 있고 겁쟁이고 비겁했다. 요셉은 평화 시대의 왕의 집사같은 사람이었다. 모세도 평생 도망을 다닌 셈이다. 삼손은 장사라고 하지만 사랑에 빠져 포로가 되고 눈이 뽑혔다. 예수도 용감한 생애는 아닌 것 같았다. 죽기 전날 겟세마네 동산에서 울었다. 용기로 말하면 돌에 맞아 죽은 스데반이나 바울이 더 나은 임종 같았다. 삼국지에 나오는 조자룡이나 여포 같은 영웅은 없었다. 그렇다고 내가 그렇게 될 가능성은 전혀 없었다.

어떻게 겁쟁이가 덜 되고 비겁하게 살지 않을까 고민해 보았다. 어느 날 책을 보다가 우연히 ‘맞아죽을 용기’라는 말이 가슴에 와서 박혔다. 진짜 용기는 자신을 이길 수 있는 힘이라는 것이다. 그 힘은 스스로 연마하는 게 아니라 그 분이 주시면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무렵 나는 조폭두목을 변호하고 있었다. 대한민국 모든 건달을 장악한 신화적인 인물이었다. 그를 찾아가 물어보았다.

“당신은 변호사인 나를 나약한 먹물 출신이라고 나약하게 생각하죠? 그런데 내가 만약 당신과 같이 죽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맞짱을 뜨자고 하면 어떨 것 같아요? 내가 맞아 죽을 각오를 하고 말이죠.”

뜬금없는 질문에 그가 당황한 표정이었다. 그가 잠시 생각하더니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내가 지죠. 나도 주먹으로 조직을 다스리는 건 아니니까.”

그 분이 힘을 주면 나약한 비겁자도 세상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다시 실험을 해 보았다. 잔인한 살인범을 만날 때였다. 나는 그를 보자마자 눈을 감고 잠시 기도했다. 무서워하지 않을 용기를 달라고. 그리고 눈을 뜨고 지그시 그를 바라보았다. 순간 그가 움찔하면서 기가 죽은 표정이었다. 무서움과 맞설 힘의 비결을 내 나름대로 그렇게 체험했다고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