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배의 부인이 있다. 명문여고와 대학을 나온 총명한 여성으로 완벽주의자같아 보였다. 그런데 특이한 면이 있다. 얼마 전 그 부인이 나를 만났을 때 이런 말을 했다.

“제가 찾아가는 유명한 역술가가 있어요. 그분이 하는 말이 우리집에 금년에 망신살이 있다는 거예요. 그런데 그런 사건이 터졌어요.”

족집게 점쟁이라는 뜻이었다. 우리에게는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무속적인 유전자가 있는 것 같다. 아내 집안도 외팔이라는 점쟁이를 신봉했다. 장모는 그 점쟁이의 말이라면 절대적이었다. 그 해에 결혼을 시키지 않으면 안 된다는 점쟁이의 말에 간접적으로 나의 인생이 흐트러지기도 했었다.

점을 좋아하면 그들의 정신이 주술에 묶여 있게 되는 것 같다. 그보다 더 심한 경우를 봤다. 변호사를 하면서 종교컬트집단의 교주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적이 있었다. 교주에게 강간을 당한 여성을 몇 명 만났었다. 그들은 정상적인 판단력이 없었다. 그 컬트집단을 나오면 저주가 있을 것이라며 두려워하고 있었다. 한 여성은 나오자마자 교통사고를 당한 걸 그렇게 해석했다. 다른 여성들도 임신이 불능하게 된 걸 교주의 저주라고 했다. 그들은 교주의 주술에 영혼이 묶여 있었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교주를 취재한 엘리트 기자나 수사검사도 찜찜해하는 게 분명했다. 교주를 취재했던 유명 신문사의 기자가 나를 찾아와 이런 얘기를 했다.

“수십만 명의 신도가 교주를 메시아로 숭배하고 있어요. 세계 각국에서 신도들이 교주를 보기 위해 순례여행을 오고 있어요. 교주가 기를 불어넣은 물이나 붓글씨 그리고 도예품이 수백만원에 팔리고 있어요. 교주가 축복을 하면 당장 행운이 오고 저주를 하면 바로 불행하게 된 답니다. 그 교주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게 분명해요. 저는 겁이 나서 더 이상의 취재를 그만두기로 했습니다.”

기자는 정말 겁을 먹고 있었다. 담당 검사 역시 교주의 소환을 미루고 있었다. 이 세상에는 다른 사람들의 영혼을 지배하는 그런 존재들이 있는 것 같았다. 어느날 그 종교컬트집단의 내막을 잘 아는 대학원생이 나에게 제보했다.

“그 단체의 광신도가 변호사님을 테러하기 위해 간다고 그래요. 그리고 그 교주가 부하들을 데리고 엄 변호사님을 저주하는 기도를 했어요.”

그 말을 듣는 순간 마음 속에 스산한 바람이 부는 것 같았다. 내게 연락을 준 대학원생은 지하주차장에서 그들에게 심한 테러를 당해 중환자실로 간 적도 있었다.

다음날 오후 두 시경이었다. 사무실의 책상 앞에 앉아있는데 갑자기 창자가 뒤틀리고 끊어지는 것 같은 고통이 왔다. 진땀을 흘리면서 사무실 바닥을 손톱으로 긁으면서 몸부림쳤다. 앰뷸런스로 응급실로 실려 갔다. 진통제 주사를 여러 대 맞았지만 날카로운 고통은 여전했다. 먹은 걸 다 토했다. 다섯 시간 정도 흐르자 갑자기 멀쩡해졌다. 의사는 작은 결석이 요로를 막았다가 흘러가 버린 것 같다고 진단했다. 살아오면서 전에 그런 적이 없었다. 순간 교주의 저주가 떠올랐다.

그 얼마 후 교주에 대한 재판이 열리기 며칠 전이었다. 다시 그런 폭력적인 고통이 다가와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속으로 겁이 났다. 교주의 저주가 꺼림칙했다. 나는 곰곰 생각에 잠겼다. 인간의 영혼은 무엇엔가 묶여 있기 마련인가 보다. 주술에 묶여있을 수도 있고 욕망이나 죽음의 포로가 되어 있을 수도 있었다.

나에 대해 다시 생각해 봤다. 왜 그 일을 하나 고민해 보았다. 내가 맡고 싶은 사건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내게 맡긴 사건이었다. 나는 그 분의 도구였다. 내 마음대로 한 게 아니었다. 나는 그렇게 묶이고 제재를 받는 게 슬펐다. 그러나 하는 수 없었다. 나는 하나님의 포로고 종이었다. 나의 역할은 일선에 나가 싸우다가 죽는 일개 병사에 불과했다. 그러나 성스러운 전쟁의 화살박이 역할은 맞는 것 같았다. 마음대로 하는 게 자유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다. 마귀의 저주에 잡혀 속박이 되는 것보다는 하나님의 명령에 따르는 게 자유인 것 같기도 했다. 자유란 하나님을 따르는 자유인지도 모른다. 나는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이렇게 말했다.

“교주가 저주를 하는 바람에 고통을 받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살 만큼 살았습니다. 교주가 진짜 메시아라면 남을 저주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그 메시아라는 교주를 증인으로 신청하겠습니다. 직접 얼굴을 맞대고 따져봐야 하겠습니다.”

“그렇게 하시죠. 재판장인 저도 그 메시아를 보고 싶습니다.”

그 며칠 후 교주가 해외로 도망갔다는 소식을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