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 창문으로 싱그러운 해풍과 함께 새벽닭의 치솟는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바닷가 마을에서 인생 황혼의 여유를 즐긴다. 장난감 같이 작은 소형 중고차를 구입해서 포구나 갯마을의 좁은 길을 다니며 구경하고 있다.

어제 봄의 연두색이 풀어지는 산과 들을 음미하면서 이웃 마을인 약전골을 지날 때였다. 산자락의 외진 길의 언저리에 ‘다향’이라는 찻집이 눈에 들어왔다. 도대체 손님이 들어갈 곳이 아닌 것 같았다. 적막감이 드는 찻집이었다. 마당에 묶인 개가 졸리운 듯 머리를 바닥에 처박고 엎드려 있었다. 차를 세우고 호기심에 안으로 들어갔다. 두꺼운 나무판의 다탁 몇 개가 놓여있고 칠십 가까워 보이는 머리가 하얀 노인이 서 있었다. 찻집 주인인 것 같았다. 구석의 창가에 나이 팔십쯤의 손님이 한 사람 보였다. 그는 앞에 노트북을 펼쳐놓고 뭔가 작업을 하고 있었다. 쌍화차를 한 잔 시키고 나서 잠시후 차를 가져온 찻집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어떻게 이런 외진 곳에 찻집을 하게 되셨죠?”
머리가 하얀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이 내 말을 받았다.

“저는 여기서 차로 십분쯤 거리에 있는 천곡항에 사는데 평생 다니던 직장에서 퇴직을 하고 이것저것 해보다가 이 찻집을 냈죠. 뒤늦게 다도(茶道)를 한 아내가 그러자고 했어요. 연금으로 살 수 있으니까 돈 하고는 무관하죠. 오히려 제가 혼자 차를 끓여내야 하니까 손님이 많으면 귀찮아요. 그냥 드문드문 이렇게 오는 손님들과 얘기를 나누고 싶어 찻집을 하는 거죠.”
사람들과 사귀는 고상한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가 말을 계속했다.

“제가 살아온 천곡항 근처의 아파트는 자식들이 커서 다 도시로 가고 노인들만 남았어요. 그래도 이런 시골마을은 닭우는 소리도 있고 농기계 소리도 나고 그래요. 그런데 노인들만 사는 아파트는 진공 속 같은 적막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찻집을 내고 일부러 출퇴근을 하죠.”
노년의 고독과 무료함과 맞서기 위한 그의 방법인 것 같았다.

“그래도 머리가 하얀 노인이 직접 차를 끓이는 걸 보면 안쓰러운 느낌이 드는데요?”
내가 말했다. 그는 이미 노동을 할 나이가 아닌 것 같았다.

“제가 금붕어 이야기 하나 할까요. 얼마 전 제가 금붕어 열 마리를 사서 어항에서 키워봤어요. 이 금붕어란 놈이 거의 이십사 시간 쉬지 않고 몸을 움직이더라구요. 한밤중이 되면 조금 천천히 움직일 뿐이죠. 금붕어를 보면서 인간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여야 건강하게 오래 살수 있구나 생각했죠. 그래서 저도 그렇게 살기로 했습니다. 새벽이면 제가 출근해서 여기로 옵니다. 마당에 있는 개를 데리고 해변까지 갔다가 굴다리를 지나 다시 이 찻집으로 오죠. 여기서 내가 정한 퇴근 시간까지 하루종일 마당에 꽃도 키우고 청소하고 차를 끓이고 밤에야 집에 가서 잡니다. 그렇게 움직이니까 군살도 없고 배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기운도 펄펄하구요.”

그가 잠시 말을 멈추고 찻집 구석에 있는 노인을 눈짓으로 가리켰다. 그 노인은 눈을 부릅뜨고 노트북 모니터를 보면서 키보드를 치고 있었다.

“저 노인은 오후 두시만 되면 이 찻집으로 출근해서 노트북을 펴시고 열심히 작업을 하세요. 삼십 분쯤 작업을 하다가 밖으로 나가서 한 바퀴 돌고 오세요. 젊어서부터 야생화를 무척 좋아했는데 이 근처에 야생화가 많아서 여기 온다고 해요. 젊어서 사업으로 돈을 많이 벌었는데 도중에 간암에 걸렸답니다. 간을 거의 다 잘라내고부터는 절에서 혼자 살다가 몇 년전 이 근처의 실버타운에 와서 묵는다고 해요. 뭐를 하시나 보니까 맨날 열심히 공부해요. 중국어도 하고 영어도 하고 젊어서 인도네시아에서 일했다고 하죠.”

“돌보는 가족이 없나요?”
내가 물었다.

“아니에요. 돈도 많고 가족도 있는데 저렇게 혼자 지내요. 그게 편하다고 하네요. 참 손님 제가 경험한 한 가지 제안을 해드려도 될까요? 나이가 드셨으면 부인과 떨어져 살면서 이따금씩 만나는 게 더 반가울 수도 있어요. 저도 요즈음 아내는 이 찻집에서 살고 저는 떨어진 아파트에서 사는데 아내의 복잡한 율법에서 해방되니까 얼마나 편한지 몰라요.”

시골마을 찻집에서 배웠다. 삶이란 끊임없이 움직이며 소통하는 것이다. 일하는 것이다. 배우는 것이다. 그리고 정신적으로 묶였던 모든 것에서 자유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