늑대와 소년, 그 후편
산신령이 되었다는 소문을 추적한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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늑대와 소년, 그 후편
  재미로, 외로워서 '늑대다!' 외쳐서 사람들을 놀리고 사람들 구경하다가, 마침내 머피의 법칙에 따라 혼이 난 소년은 더욱 외롭게 되었답니다. 아무도 놀아 주지 않고 아무도 얘기도 걸어 주지 않았습니다. 눈길에 저마다 날카로운 화살을 담아 여지없이 소년의 눈을 쏘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때부터 이 소년을 거지때라 불렀습니다. '거짓으로 늑대'라고 외쳤다는 뜻이었지요. 사람들로부터 철저히 따돌림받아, 왕따 당한 '거지인 그에게 덕지덕지 붙은 때'와 마찬가지라는 뜻도 있었고요.
  
   거지때는 할 수 없이 고향을 떠나기로 했습니다. 부모도 없는 고향에서 언제까지나 천대받으며 살 수는 없었지요. 그렇다고 대처에 나가 거지 생활을 할 수는 없었고, 아직 어려서 일품 팔 처지도 못되었습니다. 그래서 염치 불구하고 주인에게 통사정을 했습니다.
  
   '나으리, 제가 그 동안 일한 새경 삼아 양 세 마리만 주세요. 3년간 일했으니까, 1년에 한 마리는 받을 수 있겠지요. 비록 지난번에 늑대 파동으로 한 마리를 죽이긴 했지만요.'
   몇 달 지난 일이기도 하고 한 편으로 측은한 생각도 들어서 한 마리를 깎아서 두 마리만 주기로 했습니다.
  
   거지때는 고마운 마음으로 암수 두 마리 양을 몰고 멀리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막대에 개나리 봇짐을 하나 꿰어 어깨에 둘러매고 깊은 산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늑대가 자주 나타나는 곳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무 데도 양을 먹일 곳이 없었으니까요.
  
   너무 깊숙한 곳으로는 아무래도 겁이 나서 못 들어가고 작은 산 봉우리 하나만 넘으면 자기가 3년간 양을 치던 곳이 빤히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휘휘 둘러봤더니 다행히 양 두 마리와 함께 살 만한 굴이 하나 눈에 띄었습니다. 양지바른 산기슭에 있었지요.
  
   늘 쓰던 작은 칼로 나무를 잘라 우선 문부터 만들었습니다. 생각만큼 쉽지 않았지만, 제법 튼튼한 문을 만들었습니다. 늑대가 감히 쳐들어오지 못하게 했습니다. 벌써 냄새를 맡고 늑대가 멀리서 가까이서 울어댔지만, 끝을 날카롭게 깎은 막대로 한숨도 안 자고 양을 지켰습니다.
  
   그렇게 5년이 지났습니다. 그는 인간 없이도 자연을 친구 삼아 양과 한 가족이 되어 살아갔습니다. 외로움과 벗하는 것도 배웠습니다. 인간은 궁극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는 존재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어떤 생물이든지 늘 생명의 위협을 받으면서도 살아 있는 동안에는 다들 행복하게 살아간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자연에서는 죽음도 삶만큼 지극히 자연스러운 한 과정이라는 것도 배웠습니다. 무엇보다 자연이 아름답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는 늘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술과 음악을 보고 들었습니다. 자연은 거짓을 전혀 모른다는 것도 배웠습니다. 이런 자연 속에서 양을 치면서도 자연에서 정직을 배우지 못한 것이 참 부끄러웠습니다.
  
   비록 자기는 거짓말을 일삼다가 거지때란 이름까지 얻었지만, 자연이 인간에 비해 얼마나 정직한지를, 아니 정직 자체임을 배웠습니다. 늑대와도 조금 친해졌습니다. 비록 양을 몇 마리 잃었지만, 어미 잃은 늑대 새끼를 키워 이를 개로 만들어서 오히려 이 늑대와는 누구보다도 친하게 되었습니다.
  
   양도 많아졌습니다. 5년 사이에 한 50마리로 늘어났습니다. 가을에는 사랑하는 양을 몇 마리 팔아서 겨울에 대비했습니다. 양젖도 받아 먹고 양을 잡아서 더러 그 고기를 먹기도 했습니다. 양털로는 대충 기워 옷을 해 입기도 했고요. 그래서 멀리서 보면 그는 꼭 양과 같았습니다.
  
   거지때는 건장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옷이 남루하여 초라하긴 했지만, 별처럼 빛나고 꽃처럼 부드러운 그의 눈을 보고는 인간 세상에 나가면, 아무도 그를 함부로 대하지 못했습니다. 그를 거지때라 부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오히려 아브라함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5년이 흘렀습니다. 그 사이 거처를 옮겨 훨씬 깊숙한 산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긴 풀도 얼마든지 있었고 늑대도 많았습니다. 토끼도 많았습니다. 딸기도 많았습니다. 머루도 많았습니다. 도라지도 많았습니다. 더덕도 많았습니다. 나무도 물론 많았고 풀도 많았습니다. 양은 어느새 1,000 마리가 넘었습니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모세라 불렀습니다. 석양에 부는 저녁 바람에 긴 수염을 휘날리며 지팡이를 들고 양떼를 모는 그는 비록 나이가 서른도 안됐지만, 감히 맞바라볼 수 없는 위엄과 아름다움이 넘쳤습니다. 그는 이제 자연 뿐만 아니라 인간과도 친해졌습니다. 전혀 외롭지 않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지혜를 구하러 왔습니다.
  모세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그것을 깊이깊이 곱씹어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든 다음, 자연에서 배운 자기 지혜에 비추어 그 책의 때를 벗기고 새로이 머리 속에서 책을 지었습니다.
  
   자연에서 조금씩 배운 그의 지혜는 도시서 배운 인간의 수많은 지혜를 오히려 능가했습니다.
  
   이젠 사람들이 그의 양떼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말을 아꼈습니다. 몇 마디 듣고 나서는 스스로 깨우쳐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자주 나타나지도 않았습니다. 혼자서 멀리 더 깊은 산으로 들어가 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호랑이를 데리고 다닌다는 소문도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는 언제부턴가 인간에게 완전히 모습을 감추었습니다.
  
   사람들은 아무리 기다려도 나타나지 않자, 그가 산신령님이 되었음에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속말: 한두 번 잘못한 과거로 열 번 잘하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로 삼는 사람은 참 지혜로운 사람이다. 한두 번 잘한 과거로 열 번 잘못하는 현재를 가리는 덮개로 삼는 사람은 늑대 소년보다 훨씬 어리석은 사람이다.
  
   (2000. 8. 10.)
  
  
[ 2005-12-31, 17: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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