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석보다 북한을 모르는 사람도 있나?
탈북자들은 이종석보다 열 배는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자의 진실 증언은 방송과 신문에서 거의 사라졌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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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어코 이종석이 통일부 장관이 되었습니다. 2005년 4월에 올렸던 글입니다.
  
  
  
   2005년 4월 26일자 조선일보에 신효섭 논설위원이 매우 조심스럽게 '헌법과 법률 위에 있는 NSC'라는 칼럼을 올렸다. 국가안전보장회의의 이종석 사무차장이 국방부, 외교통상부, 통일부의 세 장관을 상대로 수렴청정하는 월권행위를 ‘헌법과 법률에 위배되는 측면이 적지 않다’며 최대한 붓끝을 구부려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한나라당의 김문수 의원은 “의병이 죽창을 드는 심경으로“라는 글을 통해 ‘무식한 자가 가장 용감하다’며 ‘대통령도 외교안보의 비전문가인 상황에서 역시 외교안보의 문외한인 통일부 장관이 NSC에서 상임위원장의 자리를 차지하고서 전문가의 언로를 가로막고 있는 것도 문제인데, 그보다 한참 아래 서열의 일개 사무차장이 외교;안보;국방을 사실상 주도하게 되어 있다’는 취지로 개탄했다.
  
   이종석은 지금 미국에 가 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그가 미국에 가는 것은 동북아 균형자론이 나오기 전에 확정되었다며 ‘미국의 NSC 관계자와 상견례차 이뤄지는 것으로 미국측의 요청으로 추진되었다’고 한다. ‘해명’하러 가는 것이 아니란다. 그런데 그가 가자마자 6월에 미국(희망사항은 크로포드 목장)에서 한미 정상회담이 있을 것이라는 보도가 나왔다.
  
   3월 30일자로 청와대에서는 3월 22일 노무현 대통령이 육군3사관학교 졸업식 연설에서 '이제 우리는 한반도뿐만 아니라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균형자 역할을 해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며, 대통령이 선보인 연설의 뼈에 아름다운 의미의 살을 NSC 사무처의 이름으로 감쪽같이 붙였다.
  
   2003년 이라크파병으로 대통령과 여당이 역할을 분담하여 대통령은 파병하겠다고 언명했고 여당은 이에 격렬히 반대했다. 그러다가 파병은 기정사실이 되었는데, 과연 몇 명을 파병하느냐, 하는 것이 또 다시 큰 문제로 대두되었다. 마침내 보다 못한 대통령이 엄명을 내렸다. 그 규모에 대해 더 이상 왈가왈부하지 말라고. 그런데, 바로 그 날 대낮에 이종석 사무차장이 파병규모는 3,500명 선이 될 거라고 했다. 후에 일개 과장이 한 말이 빌미가 되어 대통령과 임기를 같이 할 것 같았던 외교부 장관이 경질된 걸 미루어 보면, 그는 바로 파면되었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한 마디도 않고 그가 발표한 말대로 실행했다.
  
   이종석이란 존재가 4천8백만의 뇌리에 깊숙이 자리 잡는 순간이었다.
  
   그는 후에 대한민국의 별들을 우르르 대강당에 모아놓고 ‘냉전의 시대를 지나 평화번영의 시대를 맞이하여 북한을 이해하고 포용하라’고 정훈 교육을 실시하기도 했다.
  
   이런 막강한 권력은 고려말 무신정권의 정방이나 도방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국방;외교;통일 세 장관을 얼굴 마담을 내세우고 대통령의 말씀도 소신 있게 거스르는 이종석! 그는 도대체 누구일까.
  
   1995년 이종석은 [현대북한의 이해: 사상;체제;지도자]로 일약 최고의 북한 전문가로 떠올랐다. 북한과 쿠바 외에는 전 세계의 공산권이 깡그리 무너진 벼랑 끝 상황에서, 그것은 조악한 평양 말투를 앵무새처럼 흉내 내는 운동권에게 한 줄기 광명이었다. 그것은 그저 가벼운 평론을 모아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단숨에 뛰어넘는 역작이었다. 흥분하지 않고 서울 말씨로 북한에 대해 자근자근 인용할 수 있는 자료가 잘 정리되어 있었던 것이다. 1997년 북한의 최고 이론가 황장엽이 망명함으로써 이종석은 보름달 아래 반딧불 꼴이었지만, 외환위기 이후 잇달아 ‘민족’정부가 들어서면서 도리어 황장엽의 입에는 재갈이 물리고 이종석의 입에는 고성능 마이크가 달렸다. 방송에 고정 출연하는 등 그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것이다. 그는 2000년에 [현대북한의 이해]를 새로 썼다.
  
   이종석은 그러면 북한 대가(大家)인가. 분명 그는 북한에 대해 많이 안다. [현대북한의 이해]에서 그는 나름대로 상당히 객관적인 입장을 취하고 국내외의 북한 비판도 두루 실었다. 전문가는 전문가이다. 그러나 그는 大家엔 어림도 없다. 북한의 전술전략을 속속들이 아는 이동복, 정형근, 홍관희 등에 비하면 그는 책상물림에 지나지 않는다. 황장엽에 비하면 숫제 강가에 노는 어린애 수준이다.
  
   북한에 대해 안다고 자부하려면, 북한의 독재와 북핵과 북한인권에 대해 아리송한 침묵이 아닌 섬뜩한 비판을, 안개 같은 희망이 아닌 섬광 같은 예측을, 소극적인 외면이 아닌 적극적인 개입을 우선시킬 줄 알아야 한다. 언제 어느 때든 사서삼경을 달달 욀 수 있다고 해서 유학을 잘 아는 게 아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성리학이 기득권의 방패막이로 전락하여 고려말의 불교와 똑같이 백성을 억압하는 족쇄와 육모방망이와 칼과 창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런 사실을 직시하고 그 거대한 철옹성을 부수는 일에 앞장서는 것이 바로 유학을 진정으로 이해하고 비판하고 응용하고 실천하는 것이었다.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정보와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소용없다. 2300만 중에 300만이 굶어 죽었다. 2000만 중에 1200만이 영양실조이다. 이를 ‘무조건 돕자’식으로 교묘하게 외면하는 것은 조선시대에 양반들이 백성을 착취하는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사사오경을 달달 외면서 열심히 당쟁이나 일삼던 위선이나 마찬가지이다.
  
   한국과 미국과 일본과 중국이 지난 10여년 간 갖다 바친 달러와 식량과 기름과 비료와 의료품이 얼마였던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핵을 개발하던 연구원도 굶주리던 북한이 이제 당당히 핵무기가 있다고 밝히고 유엔이 3년 연속 대북한 인권결의안을 냈지만 UN 특별보고관은커녕 북한이 그렇게 대견스러워 하는 KBS나 한겨레의 기자도 한 명 받아들이지 않는다. 전국 어디나 돌아다니며 취재할 수 있도록 허용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국의 초등학생도 보여 주면 하품할 가짜 전시물을 무슨 대단한 자랑이라고 안내원 동무가 ‘구연동화’를 들려 주면서 보여 주는 것밖에 없다. 만약 북한 사람들이 한국 사람들처럼 자유롭고 풍요롭게 산다면, 전 세계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 안달이 날 것이다. 그게 내심으로는 남의 평판을 엄청나게 의식하면서도 겉으로는 ‘우리끼리’를 외치는 한민족의 독특한 특성이니까.
  
   5,000명 탈북자 중에 그 어떤 사람도 이종석보다는 북한에 대해 잘 안다. 독사가 허물을 벗으면 더 큰 독사가 되듯이, 김정일은 남북정상회담으로 세계의 이목을 속이고 재래무기보다 천만 배 무서운 핵무기를 갖게 됨으로써 ▲군사를 경제에 앞세우는 先軍정치를 더욱 강화하고 ▲‘식민지 해방’을 공언하고 ▲그를 빌미로 공포와 기아를 영구화시키고 ▲독재 권력을 더욱 강화하고 ▲한국의 권력과 방송이 침묵하는 것을 방패막이로 인권탄압을 한층 더 자행할 것이라는 것을! 탈북자들은 이종석보다 열 배는 잘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북자의 진실 증언은 방송과 신문에서 거의 사라졌다.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길면 70년 짧으면 50년, 마르크스-레닌의 대가로 서방세계의 아인슈타인 이상으로 밤하늘의 별처럼 빛나던 학자들이 하나같이 노숙자 신세로 전락한 것처럼, 김정일이 끝내 개혁개방을 거부하고 핵무기 보유와 인권탄압에 목숨을 건다면 비참하게 몰락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그와 더불어 이종석도 파리 한 마리 쫓을 힘도 갖지 못하게 될 것이다.
  
   (2005. 4. 29.)
  
  
  
[ 2006-01-03, 20:1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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