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화와 민주화의 절반은 私學 덕분
1960년대 초만 해도 3배나 잘 사는 필리핀을 밤하늘의 별처럼 우러러보던 한국이 이제는 동남아시아 전체가 창출하는 부와 맞먹는 富를 창출한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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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하던 나라보다 못 살던 한국이 오늘날 미국과 중국과 캐나다를 합친 것만큼 넓은 아프리카 대륙이 생산하는 것 못지않게 생산한다. 1960년대 초만 해도 3배나 잘 사는 필리핀을 밤하늘의 별처럼 우러러보던 한국이 이제는 동남아시아 전체가 창출하는 부와 맞먹는 부를 창출한다.
  
   여러 요인이 있지만, 그 핵심은 사람이고 사람은 교육이다. 1945년 해방을 맞이했지만, 자본도 천연자원도 없는 나라에서 믿을 건 인적 자원밖에 없었지만, 전문대 포함해서 대학생은 겨우 7800명! 오늘날의 초등학교에도 적령인구의 3분의 1만이 어깨를 으쓱거리며 교문을 들락거렸을 뿐이다. 문맹률은 무려 78%!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도 한국인은 조금도 굴하지 않고 전 국민이 교육만이 살 길임을 깨닫고 1년 농사보다 10년 나무심기보다 100년 후세교육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그 결과 전쟁의 상흔이 가시지 않은 1958년에 문맹률을 4%로 낮추는 기적을 낳았다. 미국의 잉여농산물로 주린 배를 채우면서도 1965년에는 무려 98%의 아동들이 마른버짐 핀 얼굴로 연필에 침을 발라가며 누리끼리한 종이에 찬란한 꿈을 또박또박 아로새겼다.
  
   일제시대를 통해 한국인은 누구나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의 중요성! 단, 그 교육은 조선시대의 유교 교육이 아니라 산업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교육 곧 수학과 과학기술을 기본으로 하는 서구식 근대 교육이었다. 개인적으로 보면 결코 한국인보다 머리 좋은 것 같지 않았지만, 일본인은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에서 한국인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기회를 갖게 되면서, 과히 한국인이 보기에는 마술사와 같은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래서 일본인한테 이기려면, 근대화하려면, 미국만큼 잘 살려면, 서당에서 사서오경만 읽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전 국민이 체험적으로 절절히 깨닫고, 나라를 되찾아 누구든 차별 없이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제공되자 나라의 권유와 부모의 닦달로 수백만의 어린이들이 하루 두 끼 죽으로 때우고도 신나게 동요를 부르면서 고무신을 신고 줄줄이 배움터로 향했던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교육은 나라도 잘했고 사회도 잘했고 개인도 잘했다. 나라는 육영사업에 헌신하고자 하는 지주의 토지는 농지개혁에서 제외해 주었다. 나라살림을 거의 대부분 미국의 원조로 꾸려 가는 입장에서 불타는 학구열을 충족시킬 학교를 세우고 교사들 월급 줄 돈이 제대로 나올 리가 없었다. 육영사업에 뛰어든 지주들이 이 때 혁혁한 공을 세웠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토지는 아주 공평하게 분배되었다. 1960년 기준으로 토지지니계수가 0.19로 대만의 0.45보다 2배 이상 공평했고 심지어 전 농토를 협동농장으로 바꾼 중공의 0.21보다 앞섰다.
  
  (농촌인구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현재는 토지지니계수가 0.34로 대폭 올라갔지만, 미국의 0.73보다는 월등히 낮고 일본의 0.43보다도 훨씬 낮다. 우리나라 농업도 이제 기업농에 사활이 달려 있기 때문에 더 이상 농업시대의 패러다임인 공평한 토지분배에 바탕한 자작농 육성에 연연하지 말고 토지지니계수를 적어도 0.50까지 끌어올려야 할 것이다.)
  
   당시 국가 재정으로 감당할 수 있는 교육은 간신히 까막눈을 면하게 해 주는 국민학교 교육이었다. 머잖아 도래할 산업사회에 걸맞는 인재를 키울 중고등학교와 대학교는 엄두도 낼 수 없었다. 인구가 바글바글하는 서울에서조차 고작 5대 공립이니, 8대 공립이니, 하여 고등학교는 공립학교가 5개, 8개밖에 없었다. 하물며 전문대와 대학교는 말할 것도 없었다.
  
   사학재단의 공은 이루 말로 다할 수 없다. 30년간 세계제일의 경제성장과, 2차 대전 후의 신생독립국 중에서 50년 내내 가장 모범적이었던 민주정치를 자랑한 대한민국의 뒤에는 어김없이 교육이 있었고 그 교육의 절반 이상은 사학이 담당했다. 사학이 없었더라면, 기술자와 기능공과 사무원이 없어서 경제개발5개년계획은 판판이 실패했을 것이다. 자본과 자원이 없는 나라에서 인재가 없었더라면, 공립과 국립에서 산업인력의 10% 정도나 간신히 배출했다면, 그들만이 귀족으로 올라서고 나머지는 전부 하층민으로 단순 노무자로 전락했을 것이다. 그랬다면 아프리카나 중남미, 아시아의 후진국보다 나아진 게 없었을 것이다. 어쩌면 연례행사처럼 군사 쿠데타가 일어나 현재 전 세계에서 제일 못 사는 북한보다 나을 게 없을지 모른다. 알고 보면, 사학은 산업화와 민주화의 가장 큰 숨은 공로자이다.
  
   이런 사학이 현재 생사의 기로에 서 있다. 후안무치한 여당과 여당보다 더 여당 같은 소수 야당이 어깨를 맞대어 거대 야당을 사람의 벽으로 막고 야바위 놀이하듯이 일방적으로 통과시킨 개정 사학법에 전국의 사학이 일제히 반발하고 나섰다. 사학은 한 목소리로 아예 교문을 닫겠다고 절규하고, 거대 야당은 뒤늦게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리고 30년 만의 동장군을 아랑곳하지 않고 길거리로 나섰다. 그러자 교육부는 독재정권이 아니면 휘두를 수 없는 채찍을 꺼내어 시속 500km 이상으로 공중에 휘둘러 제주도에서도 금방 들을 수 있는 요란한 파공음을 내고 있다. ‘차창! 파팡!’ 대한민국 그 어떤 사학에서도 (공립과 국립도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 않겠지만) 비리의 파리와 모기를 찾아낼 수 있는 그 채찍에 한 방만 맞으면, 파리와 모기는 말할 것도 없고 제주도 조랑말은 그 자리에서 즉사할 듯하다. 전국 사학의 소와 말도 예외일 리 없다. 임시이사 파견이라는 단 한 번의 채찍 휘두름이면, 그 날로 사학의 말과 소는 사학의 파리와 모기를 잡는 채찍에 맞아 즉사한다. 국유재산으로 편입된다. 내막을 잘 들여다보면, 상지대나 경인여대처럼 일단의 교육 정치꾼에게 접수된다.
  
   세상에! 이런 억울한 일이 어디 있단 말인가. 배은망덕도 유분수지, 민주의 화관(花冠)을 머리에 쓰고서, 정부와 여당과 전교조가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밀어준 사학의 허연 머리와 수염을 마구 잡아당기다니! 다양성이 절실한 지식정보시대에 농업봉건시대의 획일성을 강요하다니!
  
   한국교육의 위기를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그 원인을 제대로 진단하는 사람은 정부와 전교조와 3류 정치인 중에는 단 한 명 보이지 않는다. 없을 리야 없겠지만, 꽁꽁 숨어서 머리카락 한 올 보이지 않는다.
  
   산업시대에는 정부가 주도하는 교육이 그런 대로 수요를 충족했다. 그러나 80년대 이후에는 이미 평준화로 대표되는 정부 주도의 교육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졌다. 창의력이 고갈될 수밖에 없는 붕어빵 교육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졸업장만 남발할 뿐, 능력 있는 인재는 거의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학점만 화려할 뿐이다. 해마다 50만 명 이상 쏟아지는 2년제 또는 4년제 졸업하는 젊은이들 중 국제경쟁력이 있는 인재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그들 자신이 누구보다 이를 잘 안다. 학원서, 회사서, 외국에서 새로 배울 수밖에 없다. 늦어도 90년대에는 최소한 사학만이라도 평준화에서 제외시켰어야만 했다. 중등교육이든 고등교육이든 자율권 곧 학생 선발권과 등록금 책정권, 교육과정 편성권을 돌려 주어야 했다. 20년 전에 단행했어야 할 일을 아직도 안 할 뿐 아니라, 가만 두면 그래도 좀 나을 것을, 드디어 알쏭달쏭한 참교육과 수상스러운 통일교육을 위해 사학을 명실상부한 공립학교로 만드는 법을 날치기 통과하여 그 법을 근거로 공갈과 협박을 일삼고 있다.
  
   사학의 비리란 말은 속이 빤히 들여다보이는 핑계에 불과하다. 해방 60년 동안 기여한 사학의 공이 얼마나 큰가. 설령 일부 비리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정부가 조장한 것이다. 평준화의 덫 때문이다. 평준화 이후 정부에서 학생을 무조건 배정해 주고 교사 월급 다 주는데, 입시 성적만 좀 좋으면 학부모들이 엄청 좋아하는데, 학교가 망할 이유가 없는데, 무슨 반짝반짝하는 인재를 키우는 데 신경을 쓸까. 옛날의 명문일수록 몰락한 귀족처럼 초라해지고 최소한의 교육철학도 없는 신흥 사학이 졸부처럼 활개를 칠 수밖에 없다. 그런 일부 학교가 교육장사에 눈을 돌린다. 그렇더라도 굳이 책임을 따지자면, 이런 제도를 만들고 강요한 교육부의 책임이 더 크다. 이렇게 악화가 양화를 구축하는 것은 권력의 칼자루를 쥔 정부일수록 썩기 쉽고 독과점의 노른자위를 차지한 공기업일수록 썩어 문드러지기 쉬운 것과 마찬가지이다.
  
   대학도 본고사가 폐지된 후, 사립대학도 건학 이념에 맞는 학생을 뽑을 수가 없었다. 전국의 모든 대학은 입시학원서 만든 배치표에 일희일비한다. 그에 의해서 대부분의 학생들이 본인의 의사와는 실상 별 관계없이 피라미드처럼 차례차례 배치되기 때문이다. 세계제일의 교육열 때문에 만성적인 공급 부족 사태가 지속되는 동안, 엉터리 대학일수록 살 판 났다. 문만 열어 놓으면 학생들이 기둥뿌리 뽑아들고 땅문서 집문서 들고 줄줄이 밀려왔으니까.
  
   청와대에서, 교육부에서, 여당에서, 전교조에서 교육의 ‘교’자, 민주주의의 ‘민’자, 다양성의 ‘다’자라도 아는 사람이 단 한 명이라도 나오기 바란다. 해방 이후 60년 동안 사학이 대한민국에게 바친 백두산보다 높고 동해보다 깊은 공헌에 옷깃을 여미고, 정부가 지난 30년 동안 평준화란 미명으로 그들을 괴롭힌 죄에 대해서 무릎 꿇고 용서를 빌고 지난 25년 동안 사교육비 절감이란 미명으로 사립대학의 학생 선발권을 박탈한 죄에 대해 머리를 땅에 조아리고 사죄하는 사람이 권력의 칼자루를 쥔 양반 중에서 단 한 명이라도 나오기 바란다. 그러면 지금이라도 한국의 교육은 희망의 촛불을 키게 될 것이다.
  
   (2005. 1. 9.)
  
  
[ 2006-01-09, 07:45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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