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개혁에 관한, 한 작은 목소리(5)
교육개혁이라는 말이 전국민의 입에 오르내린 지 20년 만에 대학정원 늘어난 것 외엔 가시적으로 바뀐 게 아무것도 없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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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년간의 교육 개혁이 남긴 것은?]
  
   교육 개혁이란 말이 전 국민의 입에 오르내린 지 20년이다. 무려 20년 동안 교육 개혁을 모든 국민이 입에 달고 다녔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교육 선진국이 되었는가? 아니, 교육이 조금이라도 좋아졌는가?
  
   1980년 쿠데타로 홀연히 정치 무대에서 등장한 전두환 정권은 주연과 감독, 시나리오 작가까지 겸하면서 정치에 대한 국민의 폭발적인 관심을 돌려놓기에 적절한 이슈를 찾았다. 마침내 기가 막힌 걸 찾아냈다.
  
   그것은 바로 교육이었다.
  광주 사태에 쏠린 국민의 관심을 돌려놓는 데 이보다 좋은 것은 없었다.
  
   한국인의 최대 관심사인 교육과 정치 중에 전국민은 이 당시 교육마저 잠시 잊고 온통 정치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대학생들은 책을 가방 채 다락에 처넣고 다락에서 화염병을 만들어 이를 두 손에 불끈 쥐고 거리로 뛰쳐나왔다. 국민들은 일제히 박수를 쳤다. 이런 와중에 광주에서 유혈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설마, 저렇게까지!
  
  두려운 중에도 국민은 오로지 정치만 생각했다.
  쿠데타 세력은 광주 민주화 운동을 유혈 진압함으로써 화산이 폭발하듯 분출하던 정치 열기에 찬물을 끼얹었지만, 언제 다시 불씨가 살아날지 몰랐다. 그 때는 면역이 생겨 광주보다 더 큰 유혈 사태가 생겨도 정치 열기를 식히기는커녕 오히려 불을 지르는 결과가 되어 내란이 일어날지도 몰랐다.
  
   이 때 틈을 주지 않고 전광석화같이 전두환 정권은 일거에 대학생이나 정치인을 제외한 대다수 일반 국민의 정치에 대한 관심을 딴 쪽으로 돌려놓는 데 성공한다. 정치를 순식간에 대신할 게 한국인에게는 교육밖에 없다.
   경제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들은 절대 무식한 군인 집단이 아니었다. 정치인을 능가하는 전략가였다. 정규 육사 출신들의 엘리트 의식은 허풍이 아니었다. 그들은 힘과 지략을 모두 갖추었다.
  
   물리력이 없던 국민은 속수무책이었다. 다음을 노리는 수밖에 없었다. 다음은 미래고 미래는 교육이 결정한다. 서로의 이익이 합치되는 순간이었다. 국민들은 속는 척하고 정치에 관심이 없는 척하고 교육에 온 신경을 곤두세웠다.
  열렬히 환영했다.
  대학 문이 활짝 열렸던 것이다. 공부 못하는 자녀를 둔 절대 다수의 가난한 국민들은 진심으로 박수를 쳤다.
  
   (이후 전두환 정권의 빛나는 전략은 숨쉴 틈도 없이 계속된다. 경제 안정이 바로 그것이다. 만성적인 인플레가 대한민국 사상 처음으로 고개를 숙인다. 참여 속의 개혁을 마음 깊이 간직한 고 김재익 경제 수석과 오명 체신부 차관은 전두환 정권을 살린 일등 공신이다. 전두환 전대통령의 훌륭한 점은 세계 어디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이들 두 뛰어난 인재에게 거의 전권을 맡겼다는 것이다.
  삼저 호황이 겹치면서 전두환 정권은 만성적인 무역적자도 흑자로 돌려놓는다.
  
   경제 다음은 스포츠이다. 86 아시안 게임과 88 올림픽 게임이 바로 그것이다. 국민들의 자존심이 한껏 높아진다. 세계가 칭찬하기 바빴다. 스포츠뿐만 아니라 경제도 한국이 거의 선진국 문턱에 다다랐다는 것을 직접 와서 확인해 보고 세계가 깜짝 놀랐다.
   전두환 정권을 캄보디아의 폴 포트 정권 정도로 안 수많은 지구촌 사람들이 놀란 건 당연했다. 그만큼 한국은 오로지 나쁜 점만 세계에 널리 알려졌던 것이다.
  
   마침내 전두환 정권은 잘한 일과 잘못한 일을 저울에 달면 어느 것이 일방적으로 기울지 않을 지경에 이른다. 그러나 집권 말기의 절룸발이 오리(lame duck) 현상을 이용하여 일시 유보했던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갈망이 폭발하게 된다.)
  
   졸지에 온 국민이 무엇에 홀린 듯이 달콤한 꿈(80년의 봄)에서 가위눌리는 꿈(광주사태)으로 바뀐 정치의 질곡에서 벗어나, 현재가 아닌 미래로 눈을 돌려 잠시 잊었던 첫사랑, 교육을 살짝 빛이 바랜 사진첩에서 꺼내어 미친 듯이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이 때 전두환 정부가 야심차 게 내놓은 정책이 우리 나라 교육의 모습을 확 바꾼
  '7·30 교육 개혁 조치'였다.
  --과외 전면 금지
  --대학 예비고사 폐지(예비고사 합격자만 4년제 지원 가능)
  --대학 학력고사 도입(고졸 인정자는 바보라도 4년제 지원 가능)
  --대학 졸업 정원제 실시(대학생 정원 30% 한꺼번에 늘이기)
  
   그 후 대학생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졸업 정원제는 끝내 폐지되면서 대학 정원만 늘어났다. 등록금만 내면 대학에 일단 들어간 사람은 누구나 졸업하게 되었다. 현재 4년제만 해도 인문계와 실업계 합한 고교 졸업생의 50%가 들어갈 수 있다. 2년제도 4년제 못지 않을 정도로 정원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재수생 때문에 수험생이 대학 정원을 넘어서는 것 같지만, 사실은 2000학년도 현재 2년제, 4년제 다 합하면 사실상 고교 졸업생과 대학 정원이 거의 1대 1이 되었다(67만: 75만). 유급제가 없는 우리 나라 현실을 고려하면, 이렇게 비정상적인 대학 정원은 심지어 초등학교 학력의 학생도 버젓이 대학갈 수 있다는 걸 짐작할 수 있다.
  실지로 일부 지방 대학에는 4년제 대학교에 수능 400점 만점에 100점도 안 되는 사람이 합격을 하기도 한다.
  
   이젠 실업계 나와도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2년제든 4년제든 대학을 갈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2002학년도에는 대학 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자의 수를 능가하게 된다.
  
   결국 교육 개혁이라는 말이 전국민의 입에 오르내린 지 20년 만에 대학 정원 늘어난 것밖에 가시적으로 바뀐 게 아무 것도 없다. 눈에 잘 안 보이지만, 또 하나 큰 변화가 있다. 그것은 바로 교육부의 권한 강화이다. 무려 천만 명을 한 손아귀에 쥐고 있다.
   --계속--
  
  (2000. 3. 25.)
  
  
  
[ 2006-01-09, 19:4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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