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좋은 사람들은 왜 마르크스에 속나
노태우 시절의 남북합의서대로 북한이 개혁개방했다면 굶어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쯤 베트남 정도로 잘살 것.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논리의 구슬을 엮는 두 실, 귀납과 연역]
  
   논리에는 귀납적인 방법과 연역적인 방법이 있다. 전자는 분석을 통해 이론이나 진리를 찾는 방법이고 후자는 검증을 통해 이론이나 진리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날씨가 변화무쌍하고 끊임없이 정권이 교체된 영국은 귀납적인 경험론을, 날씨가 비교적 일정하고 왕권이 일찌감치 확립되어 상대적으로 정치가 안정되었던 프랑스는 연역적인 합리론을 따른다.
  
   어느 것이 맞을까? 정답이 없다. 가설이란 실을 먼저 마련하고 이에 사실이란 구슬을 꿰든, 사실이란 구슬을 잔뜩 모은 다음에 이들을 한꺼번에 꿰는 실을 나중에 마련하든, 전체가 아름다운 목걸이가 되면 된다. 흘린 구슬이 더 많다거나 진주 목걸이에 돌멩이가 더 많다거나 하면,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지적하여 자신이 새 목걸이를 만들면 된다. 목걸이에 대한 판단은 구경하는 사람들의 몫이다.
  
   수학은 연역을 사랑하고 과학은 귀납을 사랑하는 듯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무수한 과학적 발견 가운데는 의외로 연역적인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과학자는 영감이란 것이 떠오르면 그것을 실험과 관찰로써 증명하기 위해서 외롭게 연구에 몰두한다. 현재 과학계의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통일장 이론을 증명하기 위해 수십 년 간 무수한 과학자들이 머리를 싸매고 있다.
  
   자연계에 비해 월등히 복잡한 인간 사회에 이르면, 설익은 가설이 기막힌 이론으로 둔갑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여기서는 온갖 변수를 한꺼번에 꿸 이론의 실을 발견하기가 참으로 힘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곳에서는 주관성이 그만큼 강하여 객관적으로 누구나 납득할 만한 대통일 이론을 만들기가 아주아주 어려워, 오히려 괴상망측한 이론을 갖고 스스로 인간과 우주를 한꺼번에 꿰뚫는 진리를 발견했다고 장엄한 목소리로 어린 백성에게 외롭게 외치는 분이 항용 있게 마련이다. 계룡산에 가면 이런 사람이 자갈밭의 돌만큼 많다.
  
   아무리 증거를 많이 확보하고 철저한 검증과 분석으로 이를 뒷받침해도 그에서 벗어나는 증거 한둘 정도는 언제든지 들이댈 수 있기 때문에, 이해 관계가 다르거나 확고한 신념이 있는 사람끼리는 추호도 양보 않고 죽을 때까지, 죽은 후에는 대를 이어 치열하게 싸울 수 있다. 자연과학과는 달리 이 곳에서는 그래서 사이비 가설이 버젓이 최고의 이론으로 통하기 쉽다. 불행한 일은 누구든지 그 엉터리 이론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놀랍게도 인문·사회과학에서 대통일 이론을 만든 사람이 있다. 그가 바로 마르크스이다. 아직 아무도 그를 능가하지 못한다. 흔히 공산주의의 몰락으로 마르크스는 끝이 났다고 하는 것은 너무도 순진한 생각이다. 이를 압도하는 이론이 나오기 전에는 그 매력은 더하면 더했지 마르크스의 대통일 이론은 바래지 않을 것이다.
  
   [한국인은 연역적 사고를 사모하는 편]
  
   대체로 한국은 연역적 합리론을 따른다. 이웃 일본이 귀납적 경험론을 따르는 것과 정반대이다. 중국은 이 두 논리 체계를 다 받아들여서 겉으로는 연역적 합리론을 따르지만 속으로는 대체로 귀납적 경험론을 따른다.
  
   관념론의 나라인 대륙의 독일에서 나서 자란 마르크스는 대표적인 연역적 사고방식의 소유자였다. 그를 흠모하는 이들도 거의 대부분 그러하다. 인류 역사 전체를 계급 투쟁으로 가정하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다른 말로 하면 거기에 꿰어 맞추기 위해) 온갖 유리한 사실을 다 끌어들여 과학의 이름으로 아름답고 장엄한 논리의 빌딩을 짓는다.
  
   그 후예들에게는 과학기술의 발달로 노사 관계가 19세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것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월급쟁이가 중산층으로 우후죽순처럼 올라섰고 웬만한 자본가보다 이들이 훨씬 부유하여 누구 눈치도 보지 않고 자기 소신껏 살 뿐 아니라 능력이 탁월하면 실지로는 누구에게도 소속되지 않아서 언제든지 더 좋은 자리로 옮길 수 있는 사실도 이들은 무시한다. 이유는 마르크스가 말한 계급이 영원 불변하다고 보고 노동자는 항상 피해자로서 소외된다고 보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이란 조직을 만들어 많은 국가에서 이른바 영국병이란 말이 생길 정도로 그 권한이 막강해져서 누구도, 심지어 국가 권력도 그들을 건들지 못할 정도로 또 하나의 권력 집단으로 변한 후에도 노동자의 말이라면 무조건 지지한다. 같은 노동자도 노조에 가입한 자와 그렇지 못한 자 사이에는 노사 이상의 대립과 이해관계가 존재함에도 이런 것은 아예 무시한다. 다행이랄까, 서구에서는 오랜 시행착오 끝에 대체로
  80년대부터 이런 흑백론이 서서히 바뀌기 시작했다.
  
   한국에는 1200만 노동자 중에 불과 200만명이 노조에 가입했을 뿐이지만, 이 200만명의 기득권층이 항상 노동자를 대변하는 척한다. 임금과 신분 안정, 노동의 강도 등에서 이들은 월등하게 유리하다. 대기업 아니면 금융업, 또는 공기업에 소속된 이들 노조 가입 노동자들은 중소기업에 납품을 받거나 대출하면서 갖은 횡포를 다 부린다. 그 결과는 중소기업 노동자의 착취이다. 그 임금 비율이 1987년의 100:80에서 1997년 100:50으로 악화되었다. 지금도 대동소이하다.
  
   공산권은 훨씬 더하다. 5월 1일을 메이데이라고 노동절이라고 요란하게 잔치를 벌이지만, 거기엔 이미 노동자가 없다. 노예가 있을 뿐이다. 노동자 천국이란 아름다운 명분으로 새로운 기득층이 그 위에 기생하며 군림한다. 이런 억압적인 공산권에서 최초로 대대적인 파업을 한 게 바로 저 유명한 폴란드의 자유노조 solidarity였다. 바웬사는 이 파업에 제일 앞장서서 마침내 공산 정권을 거꾸러뜨리고 대통령까지 되었다.
  
  
  [브루스 커밍스의 독보적인 위치]
  
   마르크스의 충실한 제자 브루스 커밍스도 대표적인 꿰어 맞추기 선수이다. 과학적인 분석이란 정교한 방법을 동원하되, 그는 결정적인 것은 하나같이 추측과 음모설에 의존한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남침 유도설이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구소련, 중국, 미국의 일차 자료가 필수적이지만, 그는 어느 것도 속 시원히 제시하지 못했다. 이유는 그가 그토록 사랑한 공산권에서도, 그가 학자로서의 명성이란 최상의 혜택을 누리면서 질타해 마지않은 미국에서도 그에게 일차 자료를 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가 한국전쟁에 대한 이론을 과학의 경지로 끌어 올려 아직까지도 독보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는 이유는 '한국 전쟁의 발발과 기원'에서 박명림이 지적했듯이, 그가 구할 수 있는 모든 자료를 치밀하게 과학적으로 분석하여 이를 이른바 수정론으로 수렴하여 전쟁 소감문 정도의 감정과 거품과 애국심에 넘치는 전통론의 뜨거운 가슴을 차가운 머리로 간단하게 제압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많은 사람이 경험으로 알고 있다고 해도 과학적 분석을 통해 이론으로 정립되지 않는 한 학문 세계에서는 아무 의미가 없다. 이 점에서 한국의 보수파를 자처하는 자유주의 학자들은 크게 반성을 해야 한다.
  
   머리 좋은 사람들이 마르크스와 커밍스에 매혹되는 일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에겐 논리와 과학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은 연역적 사고 방식에 젖어 있으면서 스스로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자기들이야말로 귀납적 사고를 하는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에 자기 이론에 들어오지 않는 현실을 매우 보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독재는 먼지 하나도 다 보이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독재는 대들보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인권 유린은 티끌 하나도 다 보이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인권 유린은 태산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빈부격차는 십 원짜리 한 개 차이도 다 보이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불평등은 만 원짜리를 51층으로 쌓은 것도 보이지 않는다.
  대한민국의 장기수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영웅으로 우러러 보이지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굶주린 탈북자는 눈엣가시로 보인다.
  
   자기 이론과 반대되는 사람의 말은 아무리 과학적으로, 논리적으로, 귀납적으로 제시해도 하나같이 말장난이요, 꿰어 맞추기요, 아전인수가 된다.
  자신의 말에 아무 말 없으면
  자신의 논리에 압도당하여 침묵을 지키는 것이라 확신하고
  스스로의 무수한 논리적 허점을 맞상대하여 지적하지 않으면,
  자신의 논리를 완벽한 것으로 맹신한다.
  '내가 하면 과학적 분석이요, 남이 하면 주먹구구식 꿰어 맞추기이다.'
  
  [천재일우의 기회를 놓친 북한]
  
   한국 역대 대통령 재임 중에 북한이 언론에 보도될 정도의 도발을 단 한 건도 하지 않았던 적이 딱 한 시기가 있었다. 그 유일한 예외 시기의 대통령이 바로 국민들이 물태우라고 경멸해 마지않는 노태우 전대통령이다. 왜 그랬을까. 북한은 완전 포위되어 개방개혁 쪽으로 나오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역대 대통령과 다른 점은 그런 상태에서도 노태우 전대통령은 대화의 남대문을 활짝 열어 놓았다는 것이다. 북한의 제의로 1990년 9월에 고위급 회담을 시작하여 마침내 1991년 12월 13일 기본합의서를 채택하고 1992년 2월 18일 이를 발효시켰다. 뒤이어 그 해 9월 17일 제8차 고위급 회담에서 그 '부속합의서'까지 발효시켰다. 그대로 했으면 북한은 기아로 굶어 죽은 사람이 한 명도 없었을 것이고 지금쯤은 베트남 정도로 잘 살 것이다. 한국이란 확실한 '빽(back and bag)'이 있기 때문에 베트남이 '도이모이'를 시작한 것보다 6년이 늦었지만, 이미 그 수준을 따라갔을 것이다.
  
   결국 북한은 기득층들이 개혁하고 개방하면 그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위치가 흔들리는 것이 두려워 '오락가락' 하는 김영삼 정권 들어서면서, 그만 인민들에게 쇠고기에 이팝을 먹여 주고 기와집에서 살게 할 절호의 기회를 스스로 무산시켜 버렸다고 할 수밖에 없다. 인민의 삶에는 애시당초 관심이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북한 당국은 천재일우의 기회를 잃었다고 생각한다.
  
   원조에 의한 국가 경제는 그 뿌리가 허약하기 이를 데 없음을 동구와 구소련이 무너짐과 동시에 처절히 배웠을 것이지만, 아직도 그들은 자존심만 내세워 자립경제를 외치면서 한국과 미국과 중국과 일본의 원조에 기대고 있다.
   (2001. 6. 2.)
  
  
  
[ 2006-01-16, 13:11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