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6운동권 출신 권력자들의 하수인, 이정우
모택동이 인간에서 神으로 등극하려 3천만을 굶겨죽일 때, 박정희는 헤진 허리끈을 동여메고 보릿고개를 없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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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86운동권 출신 권력자들의 하수인, 이정우
 
   나는 이정우가 뭘 하던 자인지 잘 모른다. 경북대 교수 신분으로 대통령 인수위에서 경제부문에서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에 관한 밑그림을 그리다가, 장관급인 대통령비서실 정책실장으로 입각하고 대통령자문 정책기획위원회 위원장도 역임하고, 대통령정책특보에 이어 다시 경북대 교수로 복직한 모양이다. 서울대 경제학과 졸업 후 하버드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듯하다. 그만하면 공부도 제법 한 모양이고 머리도 괜찮은 듯하다. 1950년생이니까, 지천명(知天命)할 연세도 넘었다.
  
   그런데 분배니, 박정희 독재니, 부동산 정책이니, 하면서 곡학아세(曲學阿世)하여 혹세무민(惑世誣民)하는 걸 보니, 사다리가 치워진 지붕에서 제 세상인 줄 알고 희희낙락하는 386운동권 출신 권력자들의 하수인임을 알 수 있다. 아마 그는 386운동권이 80년대의 캠퍼스 코민(campus commune)에서 줄기장창 써 붙이던 붉은 대자보에 크게 감명 받고 스스로 머리를 세척한 모양이다. UN에 가입한 다른 모든 나라에서는 이미 불쏘시개로도 쓰지 않을 만큼 허접스러운 책들을 이정우는 아직도 서울대와 하버드에서 배운 모든 책 위에 두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990년 이후의 세계 역사가 그 유치함을 백일하에 입증한 백낙청, 이영희, 강만길 등의 책을 아직도 이슬람교도가 코란을 숭배하듯이 숭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박정희는 5천년 역사상 처음으로 단군의 자손이 신농(神農)의 자손보다 무려 10배나 잘 살게 한 위인이다. 모택동이 인간에서 신으로 등극하려고 3천만을 굶겨 죽일 때, 박정희는 헤진 허리끈으로 미인처럼 가는 허리를 동여매고 점심마다 국수를 먹으면서 선풍기 없는 청와대 안방에서 국민을 후려치는 채찍 대신 파리를 잡는 파리채를 휘두르며 국민들과 동고동락한 결과, 집권한 지 5년도 안 되어 보릿고개를 완전히 없앴다. 그러나 이정우가 절대 비판하지 않는 김일성과 김정일은 골고루 잘 사는 지상낙원을 건설했다고 떠벌리다가 3백만을 굶겨 죽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 농사 짓다가 아버지가 소 판 돈을 훔쳐 평양이 아닌 서울에 온 한 젊은이가 매년 북한 전체의 부보다 많은 부를 창출할 수 있도록 시장을 조성한 초인이 박정희다. 땅 한 뙈기 없이 맨몸으로 무작정 상경하여 구로공단에 취직한 초등학교 출신의 무수한 공순이 공돌이가 500년 동안 조상이 사 모은 논밭보다 10배 많은 논밭을 불과 10년 만에 사려고 마음만 먹으면 능히 살 수 있을 만큼 떼돈을 벌 수 있도록 자본과 기술과 자원이 하나도 없는 나라에서 전국에 골고루 공단을 조성한 국가 지도자가 박정희다. 그 덕분에 이제 대한민국 사람 중에 제일 못 사는 사람도 북한의 고급당원보다 잘 산다. 성장의 과실이 전국민에게 골고루 분배되었다는 말이다. 한국의 지니계수는 늘 선진국 못지않게 낮았다. 성장과 분배를 함께 달성했다는 말이다. 일인당 국민소득 대비 노동자 임금이 1.7배나 되는 나라가 있는가. 소득분배가 그렇게 잘 되었다는 일본도 겨우 1.2이다. 노동착취는 한국에서는 거의 없었다는 말이다. 경제성장의 과실은 노동자가 제일 많이 가져갔던 것이다. 덕분에 한국은 맞벌이 않고도 전 가족이 잘 살 수 있었던 것이다.
  
   박정희는 또한 나무 한 그루 없던 산에 나무와 풀이 한 치의 틈도 없이 들어서게 만들어 100년을 써도 남을 장작을 마련한 환경보호 일등공신이다. 그는 아무리 사방을 둘러보아도 장작 한 개는커녕 불쏘시개로 쓸 검불 한 줌 없는 나라에서 이런 불가사의한 기적을 불과 18년 만에 낳았다.
  
   박정희는 일본도 두려워 하고 중국이 부러워 하고 대만이 배 아파하는 국제경쟁력이 만만찮은 대기업을 앞세워 중소기업이 기러기처럼 그 뒤를 따라가게 하여 결과적으로 함께 잘 먹고 잘 사는 나라를 만들었다. 대기업은 어느 정도 크면 그 주식을 상장하게 하여 전국민이 그 주식을 골고루 나누게 만들었다. 대기업의 주인이 사실상 국민이 되게 유도한 것이다. 그렇게 법과 국제기준에 맞추어 대기업을 분배했던 것이다. 또한 공공의 이익을 중시하여 30대 기업보다 훨씬 큰 공기업을 대거 육성했다. 그가 간 지 10년 후에 한국전력이 상장했을 때, 그 시장가치는 나머지 상위 20개 기업을 합친 것보다 컸다. 포항제철은 또 얼마나 큰가. 그것도 공기업으로 만들었다. 제조업 전체와 맞먹는 은행도 사실상 공영화했다. 대기업은 절대 은행에 얼씬도 못하게 했다. 박정희 18년 통치에서 가장 혜택을 많이 본 것은 대기업이 아니었다. 그것은 30대 기업을 다 합친 것보다 훨씬 컸던 공기업과 은행이었다.
  
   전국을 가장 균형 있게 개발한 지도자가 박정희다. 인천, 부산, 구미, 대구, 대전, 울산, 마산, 창원, 포항, 마산 등 허허벌판 또는 아무 희망이 없던 한적한 어촌에 3면이 바다인 한국의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살려 곳곳에 수출기지를 만들었다. 농어촌의 잉여인구에게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또 만들어 주었다. 지리적 여건이 좋은 여수와 여천에도 공단을 세웠다. 노무현은 어떤가. 새로 만드는 장작은 전혀 없이 박정희가 만들어 놓은 백두산보다 거대한 장작더미인 공기업과 중앙정부를 여기저기 한 개씩 나눠 준다고 하여 생산 없이 오로지 땅값만 올리고 있다. 작은 공단 하나라도 세우는 대신 反기업정서를 부추겨 있던 기업도 해외로 도망가게 만들 뿐이다. 정의와 개혁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도록 19세기의 이론을 21세기 이론인 양 제공한 자들 중 한 명이 이정우인 모양이다.
  
   제조업이 커지면 생산이 늘어나고 생산이 늘어나면 승수효과가 발생하여 3차 산업이 그 이상으로 발전한다. 그 중에 금융업과 부동산이 제일 많이 커진다. 대체로 제조업에서 1억 달러를 생산하면 금융업도 1억 달러, 부동산도 1억 달러 커진다. 부가 이내 3배로 늘어난다. 경제활동이 왕성한 도시는 부동산 시장도 자연히 왕성해진다.
  
   박정희는 그린벨트를 조성한다, 건축 허가를 잘 내주지 않는다, 세금을 많이 매긴다, 아파트 분양가를 고정한다, 등의 방식으로 부동산 시장을 가능한 한 억제했다. 그 결과 오히려 부동산의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해 부동산이 경제 성장 이상으로 커졌다. 그 혜택으로 무수한 졸부가 생겼다. 사실상 경제성장의 혜택은 이들에게 제일 많이 돌아갔다. 눈이 밝아서 부동산 투자로 대기업 이상으로 돈을 많이 번 사람도 있지만, 농지개혁으로 한국의 농지는 전 농민에게 거의 똑같이 분배되었기 때문에, 과실도 대체로 골고루 돌아갔다. 그래서 친척이나 친구 중에 부동산으로 졸지에 부자가 된 사람이 없는 사람이 없다.
  
   기본적으로 박정희 시대에 부동산이 뛴 것은 경제성장 덕분이다. 언제 모택동 시대에 부동산 폭등했다는 말 들어 봤으며, 김성일 생전에 부동산 투기가 만연했다는 말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마르코스 집권 중에 마닐라가 광란의 부동산 폭등으로 나라가 뒤숭숭해졌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는가. 박정희만이 아니다. 등소평, 이광요, 장개석 등이 고도 경제성장을 주도하면서 그 나라에서도 한결같이 부동산이 폭등했다. 일본과 홍콩도 마찬가지이다.
  
   박정희의 부동산 정책에서 배울 것은 부동산시장도 규제와 세금이 아닌 수요와 공급에 의해 좌우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부동산을 옭아매면 옭아맬수록 부동산 가격은 더 올라가고 그 정보를 몰래 빼낸 사람들에게 혜택이 집중된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과 정직한 사람은 더욱 가난해지고 잘사는 사람과 약삭빠른 자들이 더욱 잘살게 된다는 것이다.
  
   노태우는 이를 비교적 잘 알았다. 그의 신도시 개발은 공급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었다. 그 결과 한 10년 부동산은 잠잠해졌고 많은 사람들이 늘어난 살림만큼 아파트 평수도 넓힐 수 있었다. 내 집 마련의 계획을 세우기가 한결 쉬워졌다.
  
   김영삼 이후는 부동산 정책이 규제 위주였다. 그러다가 경기를 살리기 위해 한 번 풀면 걷잡을 수 없이 부동산이 폭등했다. 그 때가 바로 김대중 정부 말기다. 무역흑자가 늘어나고 이자가 내려가면서 부동산에 대한 실수요와 가수요가 함께 점점 커지는데, 노무현 정부는 전체적으로는 공급 억제 정책에 매달렸다. 공급이 딸리니까, 자연히 거래는 없이 부동산 호가가 날로 치솟을 수밖에 없다. 이율배반적으로 노무현 정부는 표밭에 눈이 어두워 충청도 땅값은 하늘높이 띄웠다. 1979년 현재 전국의 땅값이 329조원인데, 노무현 정부는 단 3년만에 1540조원에서 2000조원으로 무려 500조원이나 더 끌어올렸다. 이러고도 박정희의 부동산정책을 물고 늘어진다.
  
   박정희는 나라 전체의 신용으로도 단돈 1억 달러를 못 빌려 대졸 출신의 광부와 간호사를 이역만리에 보내 그들의 임금을 담보로 몇 푼 빌리면서 대한의 아들딸들을 끌어안고 통곡했는데, 지금 시중에는 430조원(약 4천억 달러)의 부동자금이 갈 데를 몰라 방황하고 있다고 한다. 그런 돈이 있었으면, 박정희는 30년 전에 한국을 오늘날 중국 못지않은 세계의 공장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2006. 1. 18.)
  
  
[ 2006-01-18, 15: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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