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보다 더 좌파적인 노무현 정부
한국에서는 좌파가 스스로를 미화하기 위해 50년 치밀한 공작으로 은근슬쩍 독점한 용어가 바로 진보이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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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동안 참여정부의 정책이 분배위주라는 여러 가지 주장들이 있었고, 심지어 ‘좌파정부’라는 말까지 나왔습니다. (…) 앞의 나라들이 중앙정부 재정의 절반이상을 복지에 쓰고 있는데, 우리는 1/4밖에 되지 않습니다. 정부정책에 의한 소득격차 개선효과도 아주 낮습니다. 어떤 기준으로 보더라도 좌파정부 논란은 결코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입니다. (2006. 1. 18. 노무현)
  
   6공화국 3기와 4기 정부는 좌파정부라는 말을 들으면, 성난 개가 허연 이빨을 드러내듯이 분노의 이빨을 있는 대로 드러낸다. 붉은 잇몸까지 다 드러난다. 대신에 진보정부란 말을 들으면, 배부른 호랑이가 입을 헤 벌리듯이 우호의 손을 쑥 내밀어 막무가내로 손을 꽉 잡고 흔들어댄다. 어찌나 세게 잡고 흔들어대는지 얼떨결에 잡힌 손이 얼얼하다.
  
   실은 그게 그거다. 진보는 곧 좌파다. 한국에서는 좌파가 스스로를 미화하기 위해 50년 치밀한 공작으로 은근슬쩍 독점한 용어가 바로 진보이다. 원래 진보와 좌파는 무관한 말인데, 다시 말해서 좌파가 진보도 될 수 있고 보수도 될 수 있는데, 어린 백성들을 현혹시키기 위해 2%의 소수가 볼셰비키(다수당)를 사칭하여 절대다수인 멘셰비키(소수당)를 단어 하나로 물 먹인 후 폭력의 총칼과 거짓의 사탕발림으로 나중에는 진짜 다수당이 되었듯이, 한국에서는 진보는 좌파의 붉은 알몸을 가린 하얀 무명 두루마기로 바뀌었다.
  
   1300년 만에 빠진 동족상잔의 피바다에서 간신히 몸을 빼낸 한국은 '현실 공산주의'를 피로써 경험했기 때문에, 정권에 관계없이 거의 100% 좌파를 아예 북한공산당과 동일시할 수밖에 없었다. 한줌밖에 안 되는 좌파는 지하로 숨어들었다. 그들은 처음에는 민주의 가면을 쓰고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성취는 사사건건 부정하고 북한의 괴뢰성과 독재는 한없이 넓은 마음으로 얼렁뚱땅 넘어갔다. 그들이 밀실에서 광장으로 나왔을 때는 진보의 깃발을 내걸었다. 바로 김씨왕조와 어깨동무할 수는 없으니까, 민주와 진보 사이에 민족이란 징검다리를 놓아 '천출장군'을 포옹하며 눈물을 흘린다. 그 사이에 99.99% 자유민주주의를 자명한 진리로 받아들이던 사람들이 스스로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고 급격히 '민주와 진보와 민족'을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쓰는 좌파 진영으로 휘파람을 불면서 넘어갔다.
  
   정치는 현실이다. 정치의 현실은 정책이요 법이다. 독재를 내거는 독재자가 없고 극좌나 극우를 내세우는 독재자도 없다. 지옥을 건설하겠다며 악마를 자처하는 독재자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한 명도 없었다. 내세우는 말이 아니라, 실지로 어떤 정책을 쓰며 어떤 법을 만들고 기존의 법을 어떻게 해석하느냐, 하는 것이 바로 집권세력을 판단하는 기준이 되어야 한다.
  
   정부가 한 푼도 출연하지 않은 전국의 사립학교를 정부가 100% 출연한 공립이나 국립과 똑같이 다룬다면, 그 정부는 좌파적이다. 박정희 정부가 1974년부터 대도시를 중심으로 평준화 정책을 공립만이 아니라 사립학교까지 획일적으로 적용했을 때, 그것은 좌파 정책이었지 우파 정책이 아니었다. 만약 노무현 정부가 좌파정부가 아니라면, 박정희의 그 좌파 정책을 폐지해야 한다. 오히려 훨씬 심화시켰다. 마침내 사학법을 개정하여 개방이사제도를 도입하여 중등학교만이 아니라 대학마저 겨우 명맥만 남은 자율권마저 대폭 축소하려고 한다. 이건 좌파정부보다 더 좌파적인 정책이요 법률이다.
  
   노조가 폭력과 억지로 정부의 공권력을 능가하는 현실을 방치하여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는 데 이용하는 것, 공기업의 비율이 어떤 나라보다 높은 것, 정부가 공익의 명목으로 은행을 여전히 틀어쥐고 있는 것, 자유무역으로 어떤 나라보다 혜택을 많이 보면서 자유무역협정(FTA)를 겨우 2개밖에 체결하지 못한 것--이것도 좌파정부보다 더 좌파적이다.
  
   북한의 현실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반공으로 자유민주주의를 공고하게 지킨 6공화국 1기까지는 좌파와 선명히 구별되었다. 그 때는 여러 좌파적인 정책을 썼더라도 하나같이 우파정부였다. 그러나 머리 나쁜 김영삼 정부는 스스로 무슨 말인지도 모르고 민주와 독재, 군부와 문민, 이념과 민족 등의 말을 선명히 가르면서, 가진 자를 고통스럽게 하는 개혁의 칼을 휘두르고, 하나회를 때려잡고, 386운동권에게 민주화의 월계관을 씌워 주고, 쌀을 올려 보내고, 이인모를 올려 보내고, 남북 정상회담을 확정하고, 북핵문제로 미국에 항의하는 등 좌파적인 정책을 수도 없이 펼쳤다. 이런 좌파의 고속도로가 시원하게 뚫려 있었기 때문에 6공화국 3기와 4기는 그 위에서 신나게 달리기만 하면 되었다. 이따금 과속할 때만 국민들이 볼멘 소리를 했다.
  --너무 빠르다!
  --아니, 너무 늦다!
  
   김정일 독재에 대해, 북한인권에 대해 한 마디도 못하고 인권유린으로 악명 높은 북한과 중국에서나 통하는 궁색한 변명을 일삼는 것도 좌파적이다. 이건 좌파의 좌파정책이다. 자유민주주의를 뿌리째 흔드는 정책이다.
  
   차라리 좌파를 표방한 브라질의 룰라와 칠레의 연이은 사회주의 정부가 정책적으로 훨씬 한국의 6공화국 2기에서 4기에 이르는 세 정부보다 우파적이다. 그들은 흔들림 없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앞세움으로써 분배정의도 함께 도모하는 정부다.
  
   이라크, 이란, 북한, 중국과 손을 잡고 다극화를 추구하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나 자유무역을 거부하고 '米제국주의'에 맞서 국내산업을 보호하다가 세계적인 부국에서 축구와 탱고가 유일한 희망인 빈국으로 추락하게 만든 페론이 노무현 대통령과 흡사하다. 좌충우돌하다가 끝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하고 물러난 독일의 슈뢰더 전 수상도 노무현 대통령과 닮은 바가 많은 듯하다. 다만, 차베스와 페론과 슈뢰더는 스스로 좌파정부라고 떳떳이 밝혔지만, 노무현 대령은 참여정부라는 말 자체가 시민단체나 노조 등 민중이 두루 참여하는 진보정부 곧 좌파정부라는 뜻인데도, 한사코 좌파정부가 아니라고 부인하는 것이 다르다.
  
   (2005. 1. 21.)
  
[ 2006-01-21, 12:5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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