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형무소도 평양의 아파트보다 낫다
노숙자처럼 전국을 돌아다닐 자유만 없을 뿐 대전교도소의 김일성 교도는 평양의 상류층만큼 잘 먹고 잘 지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 스크랩하기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대전형무소도 평양의 아파트보다 낫다
 
   남북의 저울이 북으로 결정적으로 기울게 된 해는 1993년이다. 그 해 김영삼 정부는 지리산 빨치산 이인모를 인도적 차원에서 아무 조건 없이 북으로 돌려보냈다. 간첩죄로 34년간 복역한 후 그는 북한 공산주의에 대한 일편단심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1988년에 풀려났었다. 그는 북으로 가자마자 1953년 이후 최대의 영웅이 되었다. 이인모 한 사람의 몸무게가 더해짐으로써 결정적으로 북으로 기운 추에는 그 다음해에 바로 한미 동맹군의 재래식 무기를 모두 합친 것보다 무거운 핵무기가 얹어졌다. 그 후 지금까지 13년간 남북관계는 김정일의 마음먹기였다. 1994년 하늘이 무너진 듯하던 김일성의 사망과 1995년에서 1997년까지 땅이 꺼진 듯하던 300만 아사(餓死) 등도 한 번 북으로 기울어진 남북의 저울을 되돌리지 못했다.
  
   팽팽하던 남북의 저울에서 핵무기라는 눈에 보이는 거대한 추에, 정통성과 자주라는 눈에 보이지 않는 블랙홀의 중력이 북한 쪽에 더해졌기 때문에, 북한 '최고'의 영화 [민족과 운명] 속편 12부에서 14부의 주인공이 34년간 '지옥 생활'의 시련에도 임 향한 붉은 가슴을 애오라지 간직한 채 7천만의 박수를 받으며 '개선'하면서 정통성과 자주라는 중력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 더해졌기 때문에, 한국만이 아니라 미국과 일본마저, 심지어 중국과 러시아마저 북한을 가운데 두고 빙빙 돌게 되었다. 북한 주민 전체와 맞먹는 무게를 지녔던 김일성과 이인모보다 300만 배 무거운 몸무게가 빠졌지만, 남북의 저울은 요지부동 북으로 기울었다.
  
   제네바에서 로버트 갈루치가 강석주를 만나고, 서울에서 황장엽이 김영삼을 만나고, 평양에서 김대중이 김정일을 만나고, 워싱턴에서 노무현이 조지 부시를 만나고, 북경에서 크리스토퍼 힐이 김계관을 만나는 등 아무리 분주하게 회의를 춤추게 하고 아무리 아름답게 합의서를 작성해도, 아무리 김정일을 압박해도, 북핵이라는 추와 민족주의라는 중력이 각각 영변 약산과 백두산 밀영에 숨겨 있는 한, 한 번 북으로 기울여진 남북의 저울을 제자리로 돌릴 수가 없다.
  
   휴전선 이남에 북핵의 10배를 넘는 전술 핵무기를 재배치하거나 90년대 이전의 한미동맹으로 되돌아가야 북핵을 자폭용 수류탄으로 만들 수 있고, 이인모가 주장하는 지옥생활이 실은 북한주민 입장에서 보면 천국생활이었음을 한민족 전체가, 최소한 4800만이 알아야 백두산 밀영에 있다는 블랙홀이 어린애들이 갖고 노는 공깃돌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 백일하에 드러난다. 그러면 적화통일 일보 직전에 자유통일의 막판 뒤집기를 성공시킬 수 있다.
  
   이인모의 수기를 보면, 1961년 8월 전국에 흩어져 있던 780여명의 비전향 좌익수가 대전형무소(1962년에 대전교도소로 이름이 바뀜)로 모두 이감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물 속같이 조용히' 있었다. 저마다 책을 들고 앉아 누가 들여다보는지 쳐다보지도 않고 독서에 열중했다. 한학, 역사, 어학, 수학 등을 파고들었다. 전향서는 안 쓰면 그만이었다. 기껏해야 그 당시 다른 죄수들도 다 겪던 가혹행위에 가족 면회 금지에 가족의 달콤한 전향 권유가 더해질 따름이었다. 780여명 빨갱이들이 할 수 있는 최고의 투쟁은 단식투쟁이었다. 하루 세 끼 밥이 꼬박꼬박 제공되었다는 말이다. 이것이 탄압 받았다는 감옥생활이었다.
  
   평양은 북한의 디즈니랜드다. 꿈의 도시다. 핵심 계층의 소도(蘇塗)다. 배급도 최우선이다. 그래 봐야 하루 세 끼 중 두 끼는 라면으로 때우고 한 끼는 쌀밥으로 배를 채울 수 있는 서울역의 노숙자보다 못하다. 노숙자처럼 전국을 돌아다닐 자유만 없었을 뿐 대전교도소의 김일성 교도는 평양의 상류층만큼 잘 먹었다. 북한주민은 그 누구도 중앙의 허가가 없이는 평양에 거주하지 못한다. 경유하는 기차에서도 내릴 수 없다. 이런 평양에 수돗물이 하루 두세 시간밖에 안 나온다. 먹는 물 이상으로 평양의 미인도 그 몸에서 꼬박꼬박 배출되는 오물을 처리할 물이 귀하다. 전기는 더 부족하다. 21세기 동아시아 전체에서 북한의 밤만 18세기의 밤이다. 김일성 동상 외에는 그 누구도 밤새도록 불을 켤 수가 없다. 난방도 한국의 달동네보다 못하다. 농사철이 되면 모내기 전투다, 김매기 전투다, 가을걷이 전투다, 하여 농촌으로 도시락 싸들고 애국운동하러 가야 한다.
  
   평양시민은 몸만 괴로운 게 아니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좋다라는 말은, 한국의 집집마다 자가용과 전화와 색떼레비가 있다는 말은 그 누구도 공개적으로 할 수 없다. 그 순간 그는 바로 말 그대로 지옥으로 굴러 떨어진다. 책? 김일성 김정일을 찬양하거나 지상낙원에 감격하는 내용을 담은 것이 아닌 책은 아예 읽을 수가 없다. 노래도 '씩씩한 노래'만 불러야 한다. 남들이 듣는 데서는, 길거리를 지나가거나 일을 하거나 공부하면서 한국의 노래를 흥얼거릴 수조차 없다. 신문에 인쇄된 김일성과 김정일의 사진을 구긴 자는 그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는 민족 반역자다. 불이 나면 김일성 부자의 초상화를 부모 자식보다 우선해서 구해야 한다. 34년간 비전향한다? 북한에선 단 34초도 비전향할 수 없다.
  
   이인모는 출옥 전부터 한국에서 이미 명사가 되어 있었다. '인권'을 소중히 여기는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칙사 대우했다. 출옥 후에는 그를 아버지보다 형님보다 극진히 모시는 사람도 있었다. 그의 수기는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것은 [태백산맥]의 원전으로 떠받들렸다. 마르크스의 [자본론]이나 황장엽의 [주체사상], 이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를 능가하는 영향력을 발휘한 [태백산맥]의 원전으로 떠받들렸다.
  
   김씨 공산왕조에 침을 뱉는 탈북자나 김씨 공산왕조가 관리하면서 해마다 2만씩 죽이는 20만 정치범이나 김씨 공산왕조만 바라보다가 굶어 죽은 300만이나 국경만 열리면 사흘 안에 다 도망갈 2000만의 인권은 피카소의 그림처럼 추상적인 것이지만, 김씨 공산왕조에 대한 붉은 마음을 간직한 비전향 장기수나 1980년대 이후의 비전향 단기수(短期囚)의 인권은 안중권의 손바닥 인장처럼 구체적이다. 그것이 등 따습고 배부른 한국의 엄연한 정치 현실이다. 21세기의 비극이다.
  
   이인모를 보내면서 김영삼 정부는 숨만 깔딱거리는 늙은 토끼에게 배부른 인왕산 호랑이의 관용을 보여 준다고 생각했지만, 김씨 공산왕조와 한국의 친북좌파는 잘 길들여진 과천 코끼리의 어리석음을 간파하고 키득키득 웃으며 그 날로 북한의 인기가요 [휘파람]을 부르며 대한민국의 역사책 개정에 착수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노골적으로 부추긴 외환위기를 빌미로 머리 나쁜 김영삼도 낭떠러지 밑으로 뻥 차버렸다.
   (2005. 1. 26.)
  
[ 2006-01-26, 16:48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 기사목록
  • 이메일보내기
  • 프린트하기
  •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맨위로

댓글 글쓰기 주의사항


맨위로월간조선  |  조선일보  |  통일일보  |  미래한국  |  올인코리아  |  뉴데일리  |  리버티헤럴드  |  뉴스파인더  |  이승만TV  |  장군의 소리  |  천영우TV
  개인정보취급방침
이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