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조와 최병렬, 이인제,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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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조와 최병렬, 이인제, 노무현
 
   *현재 한국에서는 정부와 여당보다 강력한 집단이 한총련과 노조와 시민단체일 것입니다. 이들의 합작품이 6공 3기와 4기니까요. 이들은 다시 6공 5기 또는 아예 헌법을 개정하여 7공화국을 개창(開倉)하려고 합니다. 그 길만이 이들이 '형님, 아우님' 하면서 앞에서 끌고 뒤에서 밀며 곧 죽어도 약자와 소외계층을 가장한 채, 정의를 독점하여 길이길이 잘먹고 잘사는 길이니까요.
  
   국운도 흐름이 있습니다. 김영삼 정부의 출범과 더불어 이 흐름이 거꾸로 흐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랜 갈등 끝에 순리로 흐르기 시작한 국운의 물꼬를 틀어막은 핵심세력이 권력의 무릎을 꿇린 노조였습니다. 그 결과 노사협조의 가느다란 물결이 노사(勞使)갈등과 노노(勞勞)갈등과 노민(勞民)갈등의 거센 탁류로, 역류로 뒤바뀌었습니다.
  
   목소리 큰 자들이 장땡인 집단이기주의에 전체와 부분의 조화를 사모하는 애국심이 멱살 잡히고, 시대착오적인 이념으로 중무장한 독선(獨善)에 남녀노소 누구나 고개를 끄덕이는 건전한 상식이 저당 잡힌 지 어언 15년이 다 되었지만, 아무리 둘러봐도 제2의 레이건이나 제2의 대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 사이 산업화가 한국에 17년 뒤떨어졌던 중국이 3년 또는 4년 차이로 턱밑까지 쫓아와 전혀 지친 기색이 없이 거센 숨을 몰아쉽니다. 다시 5년을 더 채워 20년을 까먹으면, 한국은 설령 자유통일의 기적을 이룬다고 하더라도 아시아의 맹주로 등극하는 것을 단지 시간의 문제로 여기는 중국의 일개 경제식민지로 전락할지 모릅니다. 그러면 한국에는 을씨년스러운 제2의 의왕시가 달나라의 분화구처럼 곳곳에 생겨나 너도나도 태양처럼 빛나는 대국(大國)의 저임 노동자로 또는 돈 많은 왕 서방의 가정부로 취직하는 것이 가문의 영광이 될지 모릅니다.
   (2005. 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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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조와 최병렬, 이인제, 노무현
  
   노동조합은 제6공화국 출범을 예고한 1987년의 6·29 선언 이후, 제2공화국 이래로 유보되었던 노동삼권 곧 단결권, 단체교섭권, 단체행동권을 모두 되찾아 신명난 파업으로 온 나라를 들뜨게 만들었다. 그 동안 억눌렸던 임금이 천장부지로 뛰어올랐다. 연평균 무려 15% 이상씩 올랐다. 좀더 정확히 말하면, 87년부터 95년까지 연평균 임금상승률은 16.1%에 달했으나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11.1%에 그쳐 임금상승률이 5.0%포인트 높았다. (지난 91년부터 95년까지를 살펴보면, 5년간의 평균 임금상승률은 13.7%, 노동 생산성 증가율은 10.6%로 역시 임금상승률이 3.1%포인트 앞섰다.) 그 결과 불과 몇 년 사이에 임금이 두 배 세 배로 뛰었다.
  
   처음에는 다들 노조에 박수를 보냈지만, 누가 보아도 집단의 힘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는 그들에게 차츰 고개를 외로 꼬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임금상승률이 노동생산성을 크게 웃돌게 되었던 것이다. 1989년에는 임금상승률이 무려 25.1%, 그러나 노동생산성은 고작 7.2%였다. 누가 보아도 이젠 노조가 정도를 넘어섰다는 것이 분명해졌다.
  
   바로 이 시점에서 노태우 전대통령이 1990년 12월에 기용한 인재가 87년 대선에서 대통령 만들기 1등 공신이었던 기획의 귀재 최병렬 노동부장관이었다. '최틀러'는 역시 아이디어와 추진력을 함께 갖춘 사람이었다.
  그가 전가의 보도로 꺼낸 말이 바로 저 유명한
  '무노동 무임금'
  건전한 상식에 기초한 확실한 원칙이었다. 이 원칙 하나로 그는 '부화뇌동하는' 파업을 거의 잠재웠다.
  '파업을 하려면 해라, 단 그 파업 기간에는 임금이 없다. 왜? 일을 안 했으니까.'
  파업이 급격히 줄었다. 노동생산성도 가파르게 올라갔다. 1991년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무려 14%로 이 기록은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환란의 위기 속에 전국민이 허리를 졸라맸던 1998년에도 이에 1% 못 미치는 13%였었다. 최병렬 장관은 1992년 6월까지 암스트롱의 발자국처럼 지워지지 않아야 할 '발자국'을 남기고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문민' 정부가 들어서면서 노조는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김영삼 대통령은 공무원의 임금을 동결시키는 등 아주 강하게 나갔다. 노조는 더욱 술렁대었다. 파업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이 때 등용된 인재가 이인제 장관이었다. 1993년 '문민' 정부의
  초대 노동부장관으로 그는 그 해 12월에 물러날 때까지 노조에게 제법 인기 좋았다. 서울 지하철 노조 파업에 대하여, 그는 정치적으로 타협을 했던 것이다. 이 때 그가 만든 신조어가 바로 저 유명한
  '무노동 부분 임금'
  파업 기간 중의 임금을 섭섭지 않게 인정한다는 게 그 골자였다.
  
   이 때 이미 1997년의 외환 위기는 준비되었던 셈이다. 그는 시대를 역행한 자였다. 민주주의(democracy)를 사랑하는 척하고는 대중주의(populism)와 동거한 동무였다. 그리하여 그는 시대의 흐름을 10년 되돌려놓았다.
  
   마침내 운명의 날이 왔다. 1997년 1월 노조가 전국적으로 들고일어났다. 각종 보고와 고급 정보를 접한 김영삼 대통령은 뒤늦게나마 제대로 한 '감(感)'을 잡았다. 노동 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지 않고는 OECD 부자들이 신입회원 대한민국이랑 사교 클럽에서 아무도 놀아주지 않으리라는 것을! 한국은 더 이상 돈 못 벌 촌뜨기 신세였던 것이다.
  
   그러나 너무 늦었다. 기차가 플랫폼을 떠난 지 오래였다. 느닷없이 온몸을 던져 급브레이크를 걸었지만, 브레이크만 파열되고 기차는 더욱 속도를 내어 마구 질주했던 것이다. 역이고 뭐고 없었다. 마냥 달렸다. 기차에 탄 사람들은 오싹오싹하면서도 짜릿짜릿했다. 그것은 졸지에 청룡열차로 둔갑한 것이었다. 그 브레이크란 바로 김영삼 전대통령이 구국의 일념으로 1996년 크리스마스가 끝난 바로 다음 날 새벽에 여당 단독으로 새 노동법을 날치기로 통과시켜 버린 사건을 말한다.
  --시상에 어느 작자가 권력누수라는 말을 쓰더노, 잉?
  
   대북 정책처럼 원칙이 없이 그 때 그 때마다 즉흥적으로 일을 처리하는 대통령을 겨냥하여 노조원 200만 명은 날이면 날마다 이마에 질끈 붉은 띠를 동여매고 힘차게 두 팔을 치켜들어 하늘을 푹푹 찔렀다.
  --정리해고 결사 반대!
  --전임 노조원도 노동자다! 계속 회사서 임금을 지불하라!
  이미 나라에는 대통령이 없었다. 퇴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무려 일 년이나 살았다.
  
   비둘기를 날리며 1998년 '국민'의 정부가 들어섰다. IMF 신탁통치도 시작되었다. '국민'의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정리해고를 받아들이는 노동법을 제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임 노조 지도자에게도 몇 년의 유예를 거쳐 그 임금은 노조 조합비로 지불하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전에 그토록 '반대하던' 것을 거의 그대로 실행했다.
  
   이 해 중반 느닷없이 인기 스타 노무현 의원이 울산 현대자동차 공장에 나타났다. 결사적으로 파업하는 노조와 완강히 '법대로'를 주장하는 사측 사이에서, 그는 정리해고는 하되 유명무실하게 식당 아줌마나 일용직 아저씨나 좀 내보내고 명예퇴직금을 섭섭지 않게 주도록 하는 데에 혁혁한 공을 세우고 당당히 개선장군으로 돌아왔다.
  
   '국민'의 정부는 형식적으로는 노동법을 개정했으나 내용상으로는 달라진 게 거의 아무 것도 없었다. 정리해고에는 명예퇴직금이 없어야 한다. 그러나 정부와 공기업, 은행, 대기업은 앞장서서 두둑하니 떠나는 사람들에게 '전별금'을 '억, 억' 단위로 챙겨 주었다. 돈이야 얼마든지 있었다. 공적자금, 공적자금.
  
   1997년 IMF 체제 직전 부즈-알렌(Booze & Allen) 보고서에서 한국의 잠재 실업은 11.3%라고 했다. 회사가 잉여 노동력을 무려 9%나 떠 안고 있다고 주장한 것이다. 노동비용이 이젠 기업과 나라의 사활을 좌우하게 되었다는 무시무시한 경고였다. 그 보고서가 나오고 불과 2개월도 안 되어 한국은 IMF에게 구제금융을 요청하게 되었다.
  
   노동 생산성이 1980년을 100으로 했을 때, 1996년 말 246으로 한국은 OECD 전체 중 그 상승률이 당당히 1위를 기록했지만, 1987년 이래로 임금이 그보다 더 가파르게 올랐기 때문에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하는 것이 '금융 개혁'과 '정부 규제 완화'와 더불어 우리 경제에 사활이 걸린 문제가 되었다.
  
   1,200만 노동자 중에 공기업과 대기업, 금융업에 종사하는 고임금 노동자 200만 명이 노조라는 조직을 결성하여, 1,000만 중소기업의 저임금 노동자들의 무조직을 비웃으며, 노동생산성을 월등히 앞서는 임금을 받아가서 실지로 중소기업 사장보다 윤택하게 살게 되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임금격차는 1986년 100:80에서 1997년 100:50으로 벌어졌던 것이다. 환란 전 한국 대기업과 공기업 및 또 다른 공기업 금융기관의 1인당 연평균 노동비용은 무려 4만5천 달러. 일인당 국민 소득이 한국의 두 배인 영국보다 높았다. 이를 조사한 외국의 컨설팅 회사는 한 마디로 잘라 말했다.
  --이런 나라는 반드시 망한다.
  
   이를 최병렬 전장관이 제대로 그 가닥을 잡아, 강 양쪽에 '무노동 무임금'이라는 둑을 튼튼히 쌓아 그 가운데서 물이 힘차게 흘러가게 했건만, '문민' 정부의 이인제 전장관, '국민'의 정부 노무현 의원이 군데군데 강둑을 헐어 버렸다. 좌안(左岸)은 '무노동 부분임금'이라는 큰 구멍, 우안(右岸)은 '말만의 정리해고'라는 작지만 많은 구멍, 구멍.
  
   정치인들은 너도나도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표' 계산하기에만 급급했던 것이다. 힘있는 노동자 200만 명은 바로 눈앞에 있었지만, 오합지졸 1,000만 노동자는 눈밖에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젠 그 200만 노조마저 일제히 정부에게 등을 돌리고 있다.
  
   뒤늦게 '국민'의 정부는 공기업 구조조정, 은행 2차 구조조정을 한다고 양손에 시퍼런 쌍칼을 빼들고 도끼눈을 부릅뜨지만, 이미 정부의 멱살을 잡고 있는 노조에겐 공갈로밖에 안 들린다.
  --흐흐, 칼을 내려놓으시지요.
  --멱살부터 놓아라.
  --좋소. 동시에 놓읍시다.
  --오냐.
  
  잠시 후
  --아니, 비겁하게 맨손으로 하자고 했는데, 샅바를 먼저 그렇게 확 다잡는 게 어디 있어? 네, 이놈! 비겁하도다! 놔라, 놔! 고연지고! 여봐라! 이놈을 당장, 하옥하라!
  --흐흐, 지면 우린 그 날로 길거리에 나앉는다는 말씀. 내동댕이치기 전에 빨리 기권하시오. 날씨가 몹시 춥소. 우리도 동투(冬鬪)는 싫소.
  
   (2000. 1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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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병렬 전노동부 장관 재임 중의 통계 몇 개 보탭니다.
   1987년 파업 건수는 무려 3749건, 1988년에는 많이 줄었지만 그래도 1873건, 1989년도 1616건, 그러다가 1990년도에 322건, 1991년도에 234건, 1992년 235건으로 대폭 줄었습니다. 최병렬 전장관은 1990년 12월에 부임했습니다. 이미 파업이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최병렬 전장관 덕이라고만 할 수는 없습니다. 확고하게 물꼬를 틀었다고 해야겠지요.
  
   1991년에는 노동생산성 증가율 14%에 임금상승률 10.5%가 더 돋보였습니다.
  
   또한 불법 노사분규가 거의 없어졌습니다.
   불법 노사분규가 1987년에는 무려 94.1%였습니다. 1988년에는 79.6%, 1989년에는 68.5%. 1990년만 해도 56.8%로 수그러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최 전장관이 '무노동 무임금' 강행 조치와 '불법파업' 엄단으로 1991년 39.7%, 1992년 36.1%로 대폭 줄었습니다.
  
   '무노동 무임금' 실시 업체도 1989년만 해도 34.2%밖에 안 되었지만, 1990년 84.2%, 1991년 87.2%, 1992년 93.2%로 대부분의 파업업체가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지켰습니다.
  
   편법으로 수당을 올려 임금을 올리지 못하도록 '총액임금제'도 강력히 실시했습니다. 자연히 노조로선 최장 관이라면 이를 갈았습니다. 그러나 선량한 일반 노동자들은 오히려 속으로 이를 반겼습니다. 무엇보다 노조가 없는 80% 이상의 중소기업 노동자가 이를 대단히 반겼습니다.
  
   노조는 곧 노동자 전체와 국민을 대표한다는 공식은 하루빨리 버려야 할 줄 압니다. 노조 가입률은 현재 불과 13%밖에 안 됩니다.
  어떻게 13%가 전체를 대표합니까?
  대기업의 노동자들이 노동생산성을 훨씬 상회하는 임금을 받아 가면, 국제경쟁력에서 떨어지는 대기업은 어쩔 수 없이 애꿎은 하청업체를 후려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중소기업의 노동자들은 더욱 주린 배를 움켜잡아야 합니다.
   (2000. 12. 21.)
  
  
[ 2006-02-03, 16:2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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