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병장의 김일성 장군論
패 죽이다 못해 굶겨 죽이기를 다반사로 했으니까 그는 군말이 필요 없는 졸장(拙將)이 가장 잘 어울리는 분류(分類)가 아닙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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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군병장이 육군중장 님께 드리는 공개장(제16신)
  육군병장이 육군중장 님께 드리는 공개장(제16신)
  
   천용택 장군님! 지난번 제1신(2006년2월14일자 55394번, 17일자 55580번)에 이어 제2신(2006년2월18일자 55642번)과 제3신(2006년2월21일자 55784번), 제4신(2006년3월8일자 56516번), 제5신(2006년3월13일자 56729번), 제6신(2006년3월16일자 56883번), 제7신(2006년3월17일자 56955번), 제8신(2006년3월18일자 56994번), 제9신(2006년3월21일자 57141번), 제10신(2006년3월24일자 57345번), 제11신(2006년3월27일자 57441번), 제12신(2006년3월30일자 57649번), 제13신(2006년4월2일자 57813번), 제14신(2006년4월일3자 57853번), 제15신(2006년4월4일자 57928번)까지 공개장을 드렸는데, 오늘은 모처럼 한담(閑談)이나 한번 나누어 보기로 하겠습니다. 말이 될지는 모르지만 「장군론(將軍論)」을 나누어 봅시다.
  
   예로부터 장수(將帥)를 용장(勇將, 용맹스러운 장수)·지장(智將, 지혜로운 장수)·덕장(德將, 덕이 높은 장수)으로 평가하였지요? 또 예외적으로 복장(福將, 용맹성과 지혜는 부족해도 전쟁에서는 늘 이기는 복이 있는 장수)라고 평가한 경우도 있었지요? 죄송스러운 말씀이지만 천용택 장군님은 스스로 평가할 때에 이들 중에서 어떤 유형의 장군이라고 생각하나요?
  
   그리고 “지장(智將)이 복장(福將)이다”라고 하는 말은 일상생활에서 “그게 그것이다”는 뜻으로 흔히 쓰이는 속담이므로 천용택 장군님께서도 많이 들어보셔서 귀에 익으셨을 것입니다. 이 말은 북송 후기 사람인 위태(魏泰)가 저술한 󰡔동헌필록(東軒筆錄)󰡕에 나오는 “智將不如福將(지장불여복장. 지혜로운 장수는 복이 있는 장수만 못하다)”이란 구절을 뒤집은 것이었습니다. 위 인용문에 나오는 복장(福將)이라는 말은 󰡔삼국지연의󰡕 제23회에서 다음과 같은 조조(曹操)의 말에서 비롯되었지요.
  
   “張遼·許褚·李典·樂進勇不可當, 雖岑彭·馬武不及也. 呂虔·滿寵爲從事, 于禁·徐晃爲先鋒, 夏侯惇天下奇才, 曹子孝世間福將《장요·허저·이전·악진(이상 모두 조조의 휘하 장수들) 등은 아무도 그들의 용맹을 당할 사람이 없는 장수로 잠팽〈岑彭, 후한 창시자 광무제(光武帝) 유수(劉秀)의 장수〉과 마무(馬武, 역시 광무제의 장수)일지라도 미치지 못할 것이고, 여건과 만총(이상은 조조의 참모)은 종사(종사관)이며, 우금과 서황(역시 조조 휘하의 장수들)은 대단한 선봉장이고, 하후돈(조조 휘하의 맹장)은 천하의 기재(奇才, 아주 뛰어난 재주를 지닌 사람)이며 조자효〈曹子孝, 子孝는 조조의 사촌동생인 조인(曹仁, 168~223)의 자(字)〉는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는 복장〈福將, 지혜는 부족해도 전쟁에서는 늘 이기는 복(福)이 있는 장수〉이다.》”
  
   그러므로 복장(福將)이란 운(運)이 좋은 장수라는 말과 통(通)하겠지요? 하지만 역사상 조인(曹仁)처럼 운(運)이 좋아 싸우는 족족 승리한 장수가 몇이나 몇 이나 되겠습니까? 용장(勇將) 중에 용장(勇將)이었던 항우(項羽)는 물론 항우를 꺾고 한(漢)나라를 세운 유방(劉邦)도 여러 차례 패배한 적이 있고, 만고의 영걸(英傑) 당태종(唐太宗)도 패배한 적이 있지 않습니까? 결국 복장(福將)이란 특별한 경우이므로 “용장(勇將)은 지장(智將)만 못하고 지장은 덕장(德將)만 못하다(勇將不如智將, 智將不如德將용장불여지장, 지장불여덕장).”고 하는 게 아니겠습니까? 덕장(德將)이 가장 훌륭한 장수라는 말이지요.
  
   우리 역사상 덕장(德將)이라면 가장 먼저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가 해전(海戰)에서 한번도 패배하지 않은 것은 복장(福將)이어서가 아니라 사전에 충분히 준비함으로써 유비무환(有備無患)이라는 격언을 몸소 실천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휘하 장수들을 잘 포용(包容)하고 둔전(屯田)을 효과적으로 경작하여 군량미(軍糧米)를 자급자족(自給自足)하고 군부대주변의 굶주린 백성들을 구휼하는 등 그는 덕장(德將) 중에서 덕장(德將)이었으니까요.
  
   그리고 조수(潮水) 간만(干滿)의 차(差)와 지형지물(地形地物)을 잘 활용하여 적은 병력으로 숫자적으로 훨씬 우세한 왜군을 싸우는 족족 대파(大破)하였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舜臣) 장군이야말로 “지장(智將)이자 덕장(德將)이었다”라는 찬사를 바쳐야할 장군(將軍)이었지 않습니까?
  
   소수 병력으로 대규모 일본정규군을 상대로 치열한 전투를 벌여 대승(大勝)을 거둔 백야(白冶) 김좌진(金佐鎭) 장군과 홍범도(洪範圖) 장군 같은 분들도 역시 “지장(智將)이자 덕장(德將)이었다”라는 찬사를 바쳐야할 장군(將軍)이었지 않았습니까? 그러나 김일성(金日成)은 어떻습니까? 중국연변조선족자치주에서 펴낸 󰡔연변문화유물략편󰡕(1989년 초판)에는 일본군 10,000명과 김좌진 장군이 우리 독립군 1,000명을 이끌고 대혈전을 벌여 대승을 거두었던 「청산리(靑山里)전투」(199쪽~200쪽에 걸쳐 200자 원고지 6장 분량)와 일본군 120여명을 사살한 「봉오동(鳳梧洞)전투」(198쪽~199쪽에 200자 원고지 9장 분량)에 관한 기록이 나오긴 하지만 이 전투를 지휘한 두 분 장군에 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도 없더군요.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자칭 “위대한 항일빨치산 김일성”에 관한 기록은 더욱 빈약하더군요. 김일성(金日成) 추종자〈여기엔 친북좌파(親北左派)들도 포함되어야 하겠죠?〉들이 신(神)처럼 떠받들며 주장하는 것과 너무 동떨어지므로 관련부분 전문(全文)을 자구 수정 없이 그대로 옮겨보기로 하겠습니다.〈원문은 순 한글이고 북한식 표기법. 괄호 안의 한자는 이해를 돕기 위해 필자가 쓴 것임)
  
   “1936년 2월에 쏘련(蘇聯)에서 귀국한 중국동만특위서기(中國東滿特委書記) 위증민(魏拯民)은 흑룡강성 녕안현(寧安縣) 남호두(南湖頭)에서 東滿特別委員會와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 제5군 주요지도자들의 련석회의(連席會議)를 소집하였다. 회의에서는 전 민족의 항일통일전선을 가일층 발전시키며 항일유격전쟁을 확대할데 관한 과업을 토의하였다.
  
   회의에서는 또 2군과 5군이 협동작전을 하며 2군주력이 남만(南滿)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유격구(遊擊區)를 개척하기로 결의하였다. 회의 후 위증민이 북만(北滿)원정한 2군의 일부를 거느리고 안도현(安圖縣, 吉林省)의 미혼진(迷魂陣)으로 갔다. 그 해 3월 23일과 24일, 위증민은 제1퇀(團)의 주둔지에서 중공동만특위와 2군지도간부 련석회의를 소집하였다.
  
   회의에서는 「동북항일련군(東北抗日聯軍)의 군대편제를 통일할데 관한 선언」의 요구에 따라 동북인민혁명군 제2군을 동북항일련군 제2군으로 편성하였는데, 왕덕태(王德泰)를 제2군 군장(軍長)으로, 위증민을 정치위원으로, 리학충을 정치부주임으로, 류한흥을 참모장으로 각각 임명하였다. 그리고 원 구국군 사충항(史忠恒)부대와 일부 반일산림대를 받아들여 3개 사(師)로 확대편성하였다.
  
   제1사(師)는 원래의 제1퇀(團)과 일부의 반일산림대가 합병되여 구성되였는데 안봉학이 사장(師長)으로, 주수동이 정치위원으로, 려백기가 정치부주임으로, 박득범이 참모장으로 임명되였다. 제1사 산하에 두개 퇀(團)을 두었다.
  
   제2사(師)는 원래의 제3퇀(團), 제4퇀(團)과 원 항일구국군 사충항부대가 합병되여 구성되였는데 사충항이 사장으로, 왕윤성이 정치위원으로, 진한장이 참모장으로 각각 임명되였다. 제3사(師)는 원래의 제2퇀(團)과 항일의용군으로 구성되였는데 김××가 사장(師長)으로, 조아범이 정치위원으로 각각 임명되였다.
  
   제3사(師)산하에 2개 퇀(團)을 두었다. 총인수는 대략 2,000명이었다. 회의에서는 또 「2군은 남만 1군 및 길동 1군 및 길동 5군과 밀접히 배합하고 협동 작전하여 더욱 광범한 유격구를 개척한다」는 전략방침과 각 부대의 활동범위를 확정하였다.”
  
   굵은 글씨로 표시한 부분이 김일성과 관련된 구절인 듯합니다. 온갖 미사여구(美辭麗句)로 수식하는 김일성에 대한 본바닥 사람들의 기록은 겨우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홍범도 장군이나 김좌진 장군의 전투는 비교적 상세히 기록했으나 김일성 관련기록은 62자에 불과합니다. 전투성과가 아주 미미(微微)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우방(友邦)인 조선민주주주의 인민공화국의 수령을 이렇게 홀대할 수 있겠습니까?
  
   󰡔중조관계사(中朝關係史)󰡕(1992년 심양 요령인민출판사) 388쪽에는 “1933年 3月, 汪淸遊擊隊擴編汪淸遊擊大隊, 金日成任大隊政委, 余明均爲大隊長, 隊員有90餘人《1933년 3월에 왕청현(汪淸縣) 유격대를 왕청현 유격대대로 확대개편하고 김일성을 정치위원으로 여명균을 대대장으로 임명했는데, 대원은 90여명이었다.》”와 “1934年 6月, 金日成率東北人民革命軍三團, 四團各一部向汪淸大甸子(羅子溝)進發. 24日, 金日成所部與北滿派遣隊, 救國軍史忠恒部隊聯合攻打大甸子《1934년 6월에 김일성 소속부대와 북만주파견대가 구국군 사충항부대와 연합하여 대전자를 공격하였다.》”는 기록도 있더군요.
  
   북한에서 대단한 업적으로 내세우는 함경북도 혜산군(惠山郡) 보천면(普川面)〈북한행정구역으로는 량강도 보천군 보천읍〉일제(日帝) 지서(支署)를 습격한 사건(이 사건을 기념한다고 「보천보 악단」까지 조직하여 쿵더쿵 쿵더쿵거리는)이 가장 큰 투쟁성과였지 않았을까요? 「항일유격대원들의 삶과 투쟁」이라며 펴낸 󰡔회상기󰡕라는 책자에 보면 거창하게 “조선인민혁명군 사령부”네 “련대”네 “중대”네 하는 부대가 그럴듯하게 나오는데, 중국공산당의 동북항일련군(東北抗日聯軍)을 차용(借用)하여 뻥튀기 한 게 분명하지 않습니까? 그들의 항일(抗日)투쟁을 부인할 수는 없겠지만 한없이 부풀린 것만은 틀림없지요? 위 기록 등으로 보아 김일성을 천용택 장군과 같은 장군이라고 할 수는 없지요? 광복 후 소련군을 뒤따라 처음 귀국했을 때에 그는 김성주〈金成柱. 그의 아우는 김영주(金英柱)〉 소좌(소련군 소령)가 아니었습니까?
  
   사실이 이러하므로 김일성을 장군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들이 그렇게 부르니까(하긴 요즈음 한국에는 가짜 박사들이 그렇게 많다지요?) 일단 그렇다 치고, 그는 어떤 유형(類型)의 장군일까요? 수많은 무고(無辜)한 사람들을 패 죽인 인간백정이었으니까 덕장(德將) 축에 끼워 넣을 생각일랑 아예 마시고 말씀해보세요. 자기 딴에는 명장(名將)소리를 듣고 싶겠지만 어림없는 소리지요. 스탈린의 명을 받고 온 소련군 치스차코프 대장 덕택에 죽을 때까지 “위대한 수령”으로 군림(君臨)할 수 있었으니까 복장(福將)이 어울릴 듯하지만 6·25사변을 일으켰다가 일패도지(一敗塗地)했으니까 그것은 전혀 어울리지 않겠지요?
  
   우선 저보고 먼저 평가한다면 그는 졸장(拙將)이었습니다. 공산종주국 소련의 사주를 받고 벌인 6·25동란에서 대패(大敗)한 것도 그렇고, 그 후에 수많은 국민(그들 식으로라면 인민)을 패 죽이다 못해 굶겨 죽이기를 다반사(茶飯事)로 했으니까 그는 군말이 필요 없는 졸장(拙將)이 가장 잘 어울리는 분류(分類)가 아닙니까?
  
   이제 마지막으로 천용택 장군님께서는 어떤 유형(類型)의 장군이신가 본격적으로 논(論)해 보십시다. 폭력과 파괴와 혼란을 주특기(主特技)로 하는 좌파(左派)로 변질(變質)하셨으니, 덕장(德將)은 물론 지장(智將)이라고 분류할 수는 없지요? 그렇다면 남은 하나는 용장(勇將)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참! 맹장(猛將, 용맹한 장수 또는 날래고 사나운 장수)이란 말도 있지요. 그러나 정도(正道)를 걷지 못한 맹장(猛將)은 도척(盜跖)이나 󰡔삼국지󰡕에 나오는 여포(呂布)와 같은 흉악한 무리이므로 차마 장군님을 여기에 분류시킬 수는 없지요.
  
   천용택 장군께서는 분명히 용장(勇將)입니다. 현역시절에는 어떤 유형의 장군이셨는지 모르지만 예편(豫編)이후 좌파(左派)정권에 가담하여 무소불위(無所不爲)로 자행하신 “세풍(稅風)”·“병풍(兵風)”·“도청(盜聽)” 따위 만행(蠻行)에 직(直)·간접적(間接的)으로 관여하신 것을 보면 장군님께서는 만용(蠻勇)을 부린 확실한 용장(勇將)이 아닙니까?
  
   좌파(左派)정부에 가담하여 “세풍(稅風)”·“병풍(兵風)” 따위로 남을 모함하고 저주하여 상대의 인간성(人間性) 황폐화에 앞장서신 것은 총·칼·대포·미사일 등으로 상대를 죽이는 행위보다 훨씬 더 야비(野卑)한 짓이었습니다. 마타도어〈흑색선전(黑色宣傳)〉라는 게 병법〈兵法. 전략(戰略)〉에는 분명히 있습니다. 「삼십육계(三十六計)」 가운데 제1계인 瞞天過海(만천과해)도 기만(欺瞞)전술이고, 제6계인 聲東擊西(성동격서)·제7계인 無中生有(무중생유)·제24계 假道伐"402;(가도벌괵)·제26계 指桑罵槐(지상매괴)·제27계 假癡不癲(가치부전)·제30계 客反爲主(객반위주)·제32계 空城計(공성계)·제33계 反間計(반간계)·제34계 苦肉計(고육계) 따위가 다 그런 거지요. 하긴 병법〈兵法. 전략(戰略)〉중에 속임수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지요.
  
   이런 전략전술(戰略戰術)에 관해서는 젊어서부터 많이 배우셨을 터이니까 저보다는 훨씬 더 잘 아실 줄 압니다. 그러나 일상생활(정치도 마찬가지)에서 병법(兵法, 기만전술)을 일삼게 되면 오래가지 못하지요. 국민지지율이 바닥을 모르게 추락하고 있는 것이 그걸 증명하지요. 좌파(左派)정부는 이제 올 데까지 오고 말았습니다. 절대왕권(絶對王權)이 통치하던 시절에도 백성들의 신뢰가 떨어지면 그 왕조(王朝)는 끝장이 났잖아요?
  
   공산주의 사상으로 무장하여 대성공을 거두고 역사상 가장 많은 “인민(人民)”을 통치했던 중화인민공화국의 모택동(毛澤東)도 “인민(人民)은 물이고 자신들은 물고기”라고 했지요? 이제 물이 싫어하므로 물고기는 떠나지 않을 수 없는 겁니다. 이 마당에 천용택 장군님께서 선택(選擇)하셔야 할 계책은 「삼십육계(三十六計)」 가운데 마지막 계책인 “走爲上計(주위상계)”뿐입니다. “달아나는 것이 으뜸계책”이라는 뜻이지만 흔히 말하는 “삼십육계 줄행랑”이라는 바로 그 계책이지요.
  
   좌파(左派)정부의 첨병(尖兵)이 되어 무지막지(無知莫知)하게 상대방을 공격하여 자신의 부귀영화(富貴榮華)가 영원(永遠)하실 줄 아셨지요? 호사(豪奢)스럽게 사시기는 할지 몰라도 자칭 “오대장성(五大將星) 중 하나”라며 공박(攻駁)하고 덤벼드는 “새까만 졸병(卒兵)”의 만리장성(萬里長城) 같은 글을 대할 때마다 처량(凄凉)하다는 느낌이 드시지요?
  
   “국가(대한민국)와 민족을 수호하겠다”는 결심을 하고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에 입교하셨던 게 아닙니까? 그렇다면 초지일관(初志一貫)하셨어야 옳지 않나요? 어떻게 생각하실 지 모르겠습니다만 인간성의 변질은 바로 변절(變節)입니다. 그러므로 천용택 장군님께서는 변절(變節)하신 겁니다. 변절자에 대해서는 다음 번에 올릴 제17신 「변절자론(變節者論)」에서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走爲上計(주위상계)”(“달아나는 것이 으뜸계책”)를 결행하시려면 카운트다운을 하실 준비를 철저히 하세요. 올바른 길로 가시는 것이지만 당분간 충격파(衝擊波)가 몹시 크실 것이니까요. 그러나 일단 결행하시고 나면 한없는 마음의 평화를 얻으실 것입니다.
   내내 건강하시길 기원(祈願)합니다.
  
   2006년 04월 06일 도이칠란트 본에서
   대한민국 예비역 육군병장 金學培 드림
   E-mail∶hong-sek@hanmail.net
  
  
  
  
[ 2006-04-06, 16:04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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