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덕스토리, 6자회담보다 10배의 효과
지난 10여년간 집단최면에 걸려 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매진 또 매진!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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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덕스토리, 6자회담보다 10배의 효과
 
   [요덕스토리]의 파장이 심상찮다. 한국을 넘어 세계로 너울져가고 있다. 금방이라도 죽을 것 같던 하얀 나비 한 마리의 가녀린 날갯짓이 태평양을 건너고 알프스를 넘어 허리케인으로 변하고 눈사태로 커져서 아메리카와 유럽을 동시에 강타하기 직전이다.
   이것이 바로 진실의 힘이다.
  
   수위를 낮춰라, 죽이겠다, 김일성 사진이 보안법에 저촉될 소지가 있다(젊고 멋있는 김일성이 거인처럼 성큼성큼 앞서 걸어가고 늙고 꾀죄죄한 김구가 그 그림자라도 밟을세라 멀찍이 뒤따라가는 사진이라면 몰라도), 더 이상 돈을 대지 못하겠습니다(이유는 묻지 마세요), 공연장소를 취소합니다(이유는 묻지 마세요), 등등 뮤지컬 [요덕스토리]는 난산에 난산을 거듭하면서, 일부 정통우익 신문의 고발에 희망을 얻고 독재자를 혐오하고 마른하늘에 날벼락 치듯 아무 죄 없이 강제수용소에 갇힌 동족을 부모형제처럼 사랑하는 애국 시민들의 성금에 생기를 되찾아, 학예회나 공연할 초라한 무대에서 마침내 탄생하는 순간, 지난 10여년간 집단최면에 걸려 있던 사람들이 여기저기서 깨어나기 시작했다. 매진 또 매진!
  
  “서울에 더 이상 공연할 장소가 없다면, 지역균형발전을 위해서 지방으로 오세요!”
  “미국으로 오세요! 유럽으로 오세요! 지금은 세계화 시대! 영화로도 만듭시다!”
  
   잔인한 4월을 맞이하여 동경에서 미국의 한 대학이 주최하는 회의에 6자 회담의 당사자들이 비공식적인 모임을 갖고 있다. 미국의 대표는 말한다.
   “말은 (질릴 만큼) 많이 했소. 우린 행동을 보고 싶을 따름이오.”
   금방이라도 태풍이 불고 해일이 밀어닥칠 것 같았지만, 수백만 명을 일시에 날려버릴지 모르는 시한폭탄에 혼비백산한 세계최강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이 철석같은 약속과 산더미 같은 돈의 힘으로 그것을 당장이라도 제거할 것 같았지만, 12년이 지나도록 약속은 그 때마다 휴지조각이 되고 돈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더 큰 시한폭탄을 설치했다, 시계는 점점 빨리 돌아가고 있다, 선제공격은 너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라며 이젠 간이 부을 대로 부은 인질범이 막가는 협박을 해도 다들 모기 한 마리가 앵하는 소리를 들은 것보다 시원찮은 반응을 보인다.
  이것이 거짓의 말로다.
  
   [요덕스토리]는 예술 작품으로선 엉성하기 짝이 없다. 70년대의 반공영화 정도의 완성도도 없다. 줄거리도 주제도 구성도 가사도 음악도 흠집투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응은 폭발적이다. 왜? 거기 진실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의 완성도에 공을 들일 시간도 인재도 돈도 대한민국에는 없다. 사선을 넘고 또 넘은 탈북자가 아니면 누구도 할 수 없다. 6백만 학살을 직접 겪은 유태인이 2차대전의 와중에 뒷골목에 숨어서 간신히 눈물과 피의 뮤지컬을 만들었다면, 이보다 더 잘 만들 수 있었을까? 자유세계에서 60년 동안 가장 재능 있는 유태인이, 가장 돈이 많은 유태인이 쉼 없이 만들어내는 예술 작품과 [요덕스토리]를 단순 비교할 수 있을까. 모차르트의 [마술피리]도 [요덕스토리]처럼 밤마다 베갯잇을 적실 수는 없다. 왜? 전자는 아름다운 예술 작품일 따름이지만 후자는 절절한 진실이기 때문이다.
  
   80년대에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을 보고 눈물을 흘렸던 사람들은 이제 정성산의 [요덕스토리]를 보고 피눈물을 흘려야 한다. 시(詩)라기보다 짤막짤막한 넋두리 같은 [노동의 새벽]을 보고 하염없이 흘린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 아님을 보여 주어야 한다. 요덕수용소에 비하면 천국의 천국인 한국의 노장 현장을 투박한 시로 고발한 [노동의 새벽]을 읽고 흘린 눈물이 악어의 눈물이 아님을 보여 주어야 한다. [요덕스토리]를 협박하고 방해하고 폄하하고 무시할 게 아니라!
  
   6자회담은 아무리 열려도 ‘고추 먹고 맴맴 달래 먹고 맴맴’이다. 여섯 나라의 두뇌가 총동원되어도 말만 오갈 뿐 행동은 오가지 않는다. 왜? 거기에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요덕스토리]의 진실을 김정일이 절대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성산 감독 단 한 사람이 불과 18일 만에 6개국의 국가원수와 정치인과 외교가와 학자가 무려 12 곱하기 365일 동안 허공에 쌓아올린 탑보다 훨씬 높고 튼튼한 탑을 2만2천여명의 가슴에 쌓아올렸다.
  이것이 진실의 붓이다.
  이것이 용기의 칼이다.
  
   5천만이 단 한 명 독재자의 눈치를 슬슬 보면서 남북화해를 합창하고 단 한 명의 부자가 5천만이 사이좋게 나눠 쓰라며 8천억 원을 쾌척하기도 하지만, 누구도 이렇게 과감히 산 하나 넘고 강 하나 건너면 닿을 수 있는 땅에서 홍수처럼 흘리는 눈물과 피를 뮤지컬로, 어린애도 보고 들으면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노래와 춤으로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한 해에 800조 원을 버는 나라지만, 8천억 원의 8천분의 1을 쾌척할 부자가 없었다. 정성산 감독, 그는 진실을 말했고 진실을 말할 용기가 있었다. 그것이 집단최면에 걸려 있던 한국인을 일깨웠고, 그것이 아무 것도 모르던 외국인을 경악시켰던 것이다. 한국의 애국 시민들, 세계의 인권 운동가들, 그들은 만 원, 2만 원, 10만 원을 다투어 보내어 7억 원 중에서 ‘빵구난’ 3억 원을 채워주었다. 그렇게 해서, 여기가 북한인 듯 갖은 방해공작이 난무함에도 불구하고 [요덕스토리]가 빛을 보게 되었던 것이다.
  
   무력적화통일밖에 모르는 자를 상대로 6자회담을 한다? 제 민족을 3백만이나 굶겨 죽인 자와 그 이성과 식견을 믿고 대화를 한다? 20만을 강제수용소에 가두어 최후의 한 방울까지 그 노동력을 착취하고 여차하면 굶겨 죽이고 심심하면 때려 죽이는 것을 헌법보다 강력한 통치수단으로 삼는 자와 진실 게임을 한다? 그렇게 속고 또 속으면 결국 전쟁으로 결말날 수밖에 없다. 어리석은 유럽이 교활한 히틀러에게 당하고, 배부른 송(宋)이 배고픈 요와 금과 원에 당하던 것처럼! 구중궁궐에서 자란 선조가 전쟁터에서 자란 풍신수길한테 당하던 것처럼!
  
   평화, 평화, 평화! 평화는 결코 거짓으로 쌓는 바벨탑이 아니다. 평화는 진실의 모래와 돌멩이 그리고 신뢰의 시멘트로 쌓는 평범한 서민 주택이다. 사랑하는 갑돌이와 갑순이가 주위 사람들의 축복을 받으며 결혼해서 아들딸 낳고 비둘기 집에서 알콩달콩 사는 것이 평화다. 허공에 3천 궁녀를 거느리고 살 아방궁을 짓는 게 평화가 아니다.
   (2005. 4. 11.)
  
[ 2006-04-12, 09:36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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