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이 미군 장교였다면
사상은 유전자와 같다. 유전자는 복제능력이 있어 이전 개체가 생명을 다하더라도 다음 개체에서 거의 똑같은 생명현상을 보인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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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만이 미군장교였다면
  김일성은 소련군 대위였다. 그 이전에는 중국 공산당 소속이었다. 김좌진이나 이승만, 김구, 조만식 같은 독립운동가에 비하면 태양 앞의 반딧불같이 미미한 존재였다. 심지어 같은 공산계열의 박헌영에 비해도 호랑이 앞의 도둑고양이처럼 미미한 존재였다. 과연 그가 독립운동을 했는지조차 심히 의심스럽다. 만주 어디에도 그가 독립운동했음을 증명하는 비목(碑木) 하나 없기 때문이다. 독립운동을 조금이라도 했다면, 혈맹관계인 중공이 예우 차원에서도 직접은 아니더라도 북한이 성황당 비슷한 것을 세우는 것 정도는 눈감아 주었을 것이다. 기껏 내세우는 게 국내 갑산파의 도움으로 두만강 너머의 보천보에서 일본 경찰 몇 명과 민간인을 상대로 분탕질 친 것이다. 그나마 김일성 아닌 김성주 본인이 거기 참여했는지도 확실하지 않다.
  
   김일성이 독립운동을 제대로 했다면 소련군에게 발탁되었을 리가 없다. 우익의 조만식이나 좌익의 박헌영이라면 사상을 떠나 독립운동했다는 증거가 뚜렷하지만, 이들은 스탈린의 속셈을 꿰뚫어보거나 어렴풋이 알고 결사적으로 반대하든지 미적지근하게 나올 것이 명약관화했기 때문에, 소련군은 조만식은 제거하고 박헌영은 적당히 구워삶은 것이다. 독립운동은 흉내만 냈을 뿐이지만 권력욕이 남달랐던 김일성이야말로 구미에 딱 맞았던 것이다.
  
   미군과 소련군은 38선을 경계로 남북으로 나란히 들어왔지만, 그 목적이 전혀 달랐다. 미군은 해방군이었지만, 소련군은 점령군이었다. 따라서 미군은 자본도 자원도 공장도 인재도 그 어느 것 하나 변변한 것이 없는 빈농의 나라 한국의 자주독립을 물심양면으로 도와 주었지만, 소련군은 북한의 자주독립을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적화통일을 적극 사주하여 일제의 산업정책 덕분에 아시아에서는 패전한 일본을 제외하고는 유일하게 농업국에서 공업국으로 눈부시게 도약하던 희망의 땅을 소련의 일개 식민지로, 전세계 적화의 전초기지로 만들었다. 자주독립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만 달성할 수 있었는데, 미군은 그 씨앗을 심어 주고 물을 주고 비료를 주고 일꾼을 길렀다. 반대로 소련군은 쌀을 빼앗아가고 공장을 뜯어갔다. 공산독재와 계획경제로 소련군이 물러난 다음에도 절대 자주독립할 수 없게 만들었다. 단군의 자손을 공산깡패와 인민거지의 두 계층으로 딱 갈라놓았다.
  
   미군은 한국의 전통과 자존심을 존중하여 유능하고 깨끗한 사람들이 국가 지도자로 스스로의 힘으로 올라서도록 도와 주었지만, 소련군은 5천년 역사를 봉건주의라며 깡그리 부정하고 오로지 마르크스-레닌-스탈린만을 찬양하게 만들었다. 얼떨결에 북한의 총독이 된 김일성의 사주를 받아서 공산주의자들이 어수선한 한국에서 끊임없이 폭동을 일으킬 수 있었던 것은 미군이 인내력을 갖고 우익 파시즘을 강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때 정당이 500개를 헤아릴 정도였지만, 미군은 자유민주주의를 존중하여 끝내 쌍권총을 꺼내들지 않았다. 소련군은 어림도 없었다. 발본색원, 공산당에 반대하는 자들은 아예 씨를 말려 버렸다. 신의주 학생의거 정도의 찻잔 속 태풍밖에는 어떤 집회도 원천적으로 허용하지 않았다. 그것은 북한만이 아니라 소련과 소련의 위성국 전체에 강요한 독재체제였다. 공개처형과 강제수용소 앞에서 그 어떤 자도 꼼짝할 수 없게 만든 독재체재였다.
  
   스탈린 체제에 복종하는 자만이 북한에서는 고위직에 오를 수 있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유능한 사람은 고위직에 오를 수가 없었다. 반동분자로 척결되거나 친일파가 일제에 충성하던 것처럼 새로운 독재자에게 충성을 바칠 수밖에 없었다. 스탈린의 뜻을 가장 잘 파악한 새파란 조선계 소련군 대위와 그 휘하의 50여 명이 호가호위(狐假虎威)하여 38선 이북을 소련의 위성국을 만드는 데 개처럼 충성했다. 소련군이 물러간 다음에는 얼씨구나, 하고 공산왕조로 신장개업했다.
  
   한국은 달랐다. 혼란스럽고 더뎠지만, 결국 민족과 국가를 위할 유능한 인재들이 자유경쟁을 통해 민심을 얻어 건국의 위업을 일궈냈다. 대한민국을 자주독립국가로 우뚝 세웠다. 시작은 그렇게 보잘것없었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를 굳건히 다져놓았다. 이 때 가장 큰 일을 한 분이 바로 김일성보다 백 배 천 배 독립운동을 많이 한 이승만 박사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통해 한국과 북한, 서구와 동구의 차이는 백일하에 드러났다. 소련군이 아니었으면, 이미 공업화 단계에 들어섰던 동구는 서구와 어금갈 정도로 발전했을 것이 틀림없고 역시 공업화 단계에 들어섰던 북한은 한국에 버금갈 정도로 발전했을 것이 틀림없다. --이런 가정이 1988년 서울에서 백일하에 드러난 것이다. 알고 보니, 한국은 젖과 꿀이 흐르는 나라였던 것이다. 서구처럼 자유분방하고 일본처럼 풍요로웠던 것이다. 소련군은 점령군이요, 미군은 해방군이었음이 약 반세기 만에 이론이 아닌 현실로 입증된 것이다.
  
   이승만이 미군 장교였으면 어땠을까. 만약 미군이 소련군처럼 일체의 정당 활동을 중지시키고 심지어 친목회와 계도 불법화하고 새파란 한국계 미군 대위를 국가 지도자로 앉히고 철권을 휘둘렀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 한국도 오늘날 북한이나 투르크메니스탄처럼 극악한 인권탄압 국가로 세계의 지탄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300만을 굶겨 죽였을 것이다.
  
   사상은 유전자와 같다. 유전자는 복제능력이 있어서 이전의 개체가 생명을 다하더라도 다음 개체에서 거의 똑같은 생명현상을 보인다. 한번 심어진 사상도 마찬가지다. 사상의 원조가 죽고 그 사상을 유지하던 원래의 체제가 소멸되어도 일단 뿌려지고 유사한 체제가 구축되면, 외부의 힘에 의해서 밀려날 때까지 스스로 약간씩 변형하며 끈질기게 살아남는다.
  
   북한과 한국에서 이런 현상이 되풀이되고 있다. 소련은 해체되고 동구는 해방되고 중국도 베트남도 환골탈태했지만, 스탈린이 뿌린 씨앗이 자라 모양만 약간 달리 한 채 고목을 이루고 있다. 그 고목에서 날아 온 씨앗이 휴전선을 넘어 또 다른 고목으로 자랐다. 환경이 아무리 변해도 사상의 뿌리가 변할 리 없다. 외부의 힘에 의해 뿌리째 뽑혀야만, 또는 접붙이기로 사상의 유전자가 완전히 개량되어야만, 소멸되거나 돌연변이가 일어날 수 있다.
  
   스탈린의 주구(走狗) 소련군 대위는 위대한 독립운동가로 노골적으로 찬양하고, 미군에 당당히 맞서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토대를 닦아 불과 반세기 만에 대한민국을 세계 10위 경제강국에 아시아 2위 민주국가로 도약하는 데 지대한 공을 세운 이승만은 친일파요, 미군 앞잡이요, 사이비 독립운동가요, 분단의 원흉으로 몰아세우는 자들이 바야흐로 나라의 운명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세상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희생을 피할 수는 없겠지만, 정의가 살아있고 진실이 이긴다는 것이 곧 밝혀질 것이다. 1988년 다음해부터 소련과 동구가 무너졌듯이 폭정의 전초기지는 곧 무너지고 기아와 공포에 시달리는 2천만 동포는 해방될 것이다. 정의와 힘을 아울러 갖춘 미국이 이번에도 선한 사마리아인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 날에 은인자중하던 한국의 정통우익도 요원의 불길처럼 일어날 것이다.
   (2006. 5. 2.)
[ 2006-05-02, 07:4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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