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12) --과외는 나쁜가?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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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0년 동안 교육개혁의 성역으로 정상에서 군림한 영역은 단연 과외다. 거의 모든 사람이 속으로는 무슨 생각을 하든 겉으로는 과외가 나쁘다는 데 동의를 했다. 입을 모아 망국병이라고 했다. 이런 국민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정부는 강력하게 과외 불법화를 추진할 수 있었다.
   서슬이 퍼렇던 5공화국 시절보다 강도가 약해지긴 했지만, 대학생과외와 학원 수강 외에는 여전히 지금도 과외는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해찬 전 교육부 장관은 학습지 지도도 과외라고 유권 해석을 내렸다가 국민의 비웃음을 받고 이내 취소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하나같이 전두환 전대통령의 통찰력에 동의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현실은 어떠한가? 과외가 과연 줄어 들었는가? 서슬 퍼렇던 5공 시절에도 위험 수당까지 붙여서 여전히 '몰래바이트'가 횡행했고 시험 문제가 쉬워질 대로 쉬워진 지금도 개인 과외는 줄어든 대신 학원 과외는 그 열기가 조금도 식지 않는다. 오히려 더 늘었다. 학교가 놀이터가 되면서 학원 과외는 더 늘었다.
  
   다만 이전과는 달리 학원이 소수화, 고액화되었다. 학부모 부담이 더 늘었다는 말이고 가난한 사람은 이제 자식 공부 잘하는 기쁨을 맛보기 아주 어렵게 되었다는 말이다.
   아주 저렴한 수강료로 100여명씩 앉혀 놓고 '약'을 파는 단과학원은 퇴조를 하고 20명 이하의 소수 학생을 대상으로 '공부'시키는 학원은 나날이 번창한다. 내신을 대비해 주기도 하고 심지어 수행 평가도 대신해 준다. 수능에 철저히 대비해 주는 건 말할 것도 없다.
  
   일선 학교에서 1학년과 2학년은 보충 수업을 원천적으로 금지했기 때문에 학생들은 수능을 학원을 통해 대비하지 않으면 불안하기 짝이 없다.
   이런 소수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학원은 시대의 요구에 적절히 맞추고 있다. 이제 학생들이 일방적으로 한 반에서 수준이 제각각인
  50명, 60명, 100명이 똑같은 교재로 똑같은 강의를 받기를 거부한다.
   개성이 다들 강해서 강의도 그렇게 일방적인 걸 좋아하지 않는다. 질문을 않을지라도 최소한 교사가 학생 이름을 다 알고서 수시로 눈이라도 자주 마주치면서 공부하길 원한다.
  
   그렇다고 한두 명씩 1주일에 두 번 지도 받고 한 과목에 30만원에서 50만원 주고 별로 잘 가르치지도 않는 대학생에게 배우는 것도 거부한다. 학부모도 이성을 차렸고 학생도 셈이 '빠삭'해졌다. 돈이 아주 많다면야 정말 효과가 확실하게 나타나는 100만원 짜리 과외를 학원 강사한테 받는 수도 있다. 그러나 이 경우도 옛날처럼 봉이 되는 것은 거부한다. 효과가 시원찮으면 과감히 끊어 버린다.
   그러니까 현재의 소수 정예 학원은 단과 학원의 비효율과 개인 과외의 미심쩍음의 중간 형태로 일종의 타협인 셈이다. 돈도 효율도 그 중간인 것이다.
  
   재미있는 현상은 학생들이 이제 담임보다 학원 강사와 인간적으로 더 친밀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학원 강사는 참 성실하게 가르칠 뿐만 아니라 꼭 형처럼, 삼촌처럼 친절하게 대해 주기 때문이다. 가끔 떡볶이도 사 주고 빵도 사 주기 때문이다. 시대에 앞선 학생이라는 소비자가 역시 시대에 앞선 서비스를 아는 교사라는 공급자와 함께 어깨동무를 하고 있는 셈이다.
  
   학교는 여전히 콩나물 교실이다. 요즘의 학생들 20명 지도하기보다 80년대의 학생 60명 지도하기가 더 쉬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40명이 넘는 일은 보통이다. 60명 지도할 때 생각하고 배부른 소리를 하지 말라는 건 참 요즘 학생들을 모르는 소리다. 이제는 아무리 공부 못해도 기죽고 지내지 않는다. 당당히 자기도 전교 1등 하는 학생과 동등한 관심을 받기를 원한다.
  
   공부를 전혀 않아도 무조건 모든 학생이 학교에 나오는 일도 없다. 과감히 안 나가 버린다. 나와도 어느 순간 사라진다. 자리에 앉아 있어도 보란 듯이 코까지 골며 잔다. 깨우면 눈을 요상하게 치켜 뜬다. 이어 교사가 잠시 한눈을 팔면 소곤소곤 떠든다. 지적 당하면 시치미를 뗀다. 참 억울하다는 표정을 짓는다. 화를 벌컥 내면서 교사가 꾸중을 하면, 다른 학생들이 짜증을 낸다. 여기저기 수군거린다. 하품을 한다. 엎드린다. 'A.C.'라는 말을 내뱉는 아이도 있다.
  
   개성이 강한 남자 문과반은 출석부가 없다. 대신 결석부가 있다. 오로지 학생에게 문제가 있는 걸까. 그렇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말썽꾸러기들이 등산반에 들었다 하면, 잔꾀를 부리는 모범생을 모범적으로 이끌어 기어코 정상에 함께 올라가기 때문이다. 당구반에 들어가면 눈이 더없이 초롱초롱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학생이 학교서 하는 특기적성은 우습게 여긴다. 공부는 못해도 잘 가르치고 못 가르치는 건 도사같이 알아내기 때문이다. 입시 공부에 아무 도움도 안 되는 그런 공부를 억지로 가르치게 하는 교육부를 잔뜩 비웃고 싶기 때문이다.
  
   아무리 문제를 쉽게 내도 아무리 입시 제도를 바꾸어도 우리나라가 공산국가가 되어 학생을 그 성분에 따라 일방적으로 이리저리 배정하지 않는 한, 명문대가 존재하는 한 과외는 절대 없어지지 않는다. 없어질 수가 없다. 한국인의 교육열이 살아 있는 한, 과외는 없어질 수 없다.
  
   요즘은 대학생과 대학 졸업자를 대상으로 한 과외가 더 극성이다. 대학 편입 학원은 그 시장이 엄청나게 크다. 학생을 가르칠 교사도 임용고사에 대비해 대학보다 학원을 더 신용한다. 기자 시험도 마찬가지다. 심지어 고시도 마찬가지다. 신림동의 고시학원은 서울대보다 훨씬 권위가 있다. 절에서 혼자서 공부한다는 건 다 까마득한 옛날 이야기다. 회사 들어가기 위해서도, 면접 잘 보기 위해서도 학원에 다닌다. 성형 외과도 변형된 학원으로 보는 게 좋다.
  
   목표를 위해서라면 한국인은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그러니까 이걸 막으려 해서는 안 된다. 목표를 잘 정해 주어야 한다. 목표에 이르는 길을 잘 제시해야 한다.
  
   예를 들어보자.
   과학고의 졸업자와 과학기술대(KAIST)의 입학 정원이 비슷했을 때 과학고 학생들은 대부분 2학년 마치고 바로 과기대로 들어갔다. 공부도 대학 입시와는 전혀 동떨어지게 했다. 지금도 과학고 학생들은 대학 입시 보기에는 엄청 불리한 교과과정을 배우고 있다. 수학과 과학은 대학 교양과정을 넘어 대학 2학년 수준의 공부를 하고 있다. 실험 실습도 엄청 많이 한다. 수능 공부는 거의 혼자 하는 것으로 보아야 한다. 사회 과목은 오히려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
  
   과학고가 좋다고 전국에 여기저기 지방마다 세우고 서울에도 한 학교 더 세우면서 과학고 학생 정원이 과기대 정원보다 두 배가 넘자 난리가 났다. 일제히 서울대를 지원하게 되었다. 졸지에 특수 학교가 변질되어 인문계 고등학교가 되었다.
   이왕 2학년 마치고 대학 갈 수 있게 한 것, 이들에게 일정 수준의 시험을 보게 하고 차라리 2학년 마치고 일반 대학 갈 길을 열어 주든지(법은 평등하니까 일반고 학생들도 똑같은 혜택을 주어야겠지만), 이들을 입시의 중압에서 풀어주고 그 아까운 머리를 계속 갈고 닦게 해야 했다. 한 1조원 투자하여 과기대 정원을 두세 배로 늘리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문제는 이들 학생에게 있지 않고 정부의 잘못된 정책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으로 과학고 학생들을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왜 특수학교의 본래 취지를 살리지 않느냐는 것이다.
  
   과학고 졸업자가 서울대 가서도 문제다. 서울대 시설이 과학고보다 못한 것이다. 교수도 과학고 교사보다 나을 게 없다. 더군다나 서울대 2학년까지는 이들이 이미 다 배운 내용이다. 공부에 무슨 의욕이 있을 리 없다. 2년간 자기들끼리 몰려 다니며 '사회' 공부, '인생' 공부한다.
  
   포철은 양이나 질 양쪽 모두 세계 1위 철강회사이다. 이건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원료, 기술, 경영, 자본 그 어느 것도 없던 나라가 아니었던가. 전세계와 우리 나라 전 학계와 언론이 반대했었지 않나. 어떻게 해서 이런 기적이 일어났을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한 마디로 말해서 '인간'이었다. 확실한 목표를 정한 후 사원을 하나같이 존중해서 때로는 윽박지르고 때로는 달래가면서 한국인의 폭발적인 잠재력을 살렸기 때문이다.
  
   삼성 전자의 반도체도 마찬가지다. 그 직원들은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라는 목표가 확실히 제시되자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했다. 코피 터지고 소변에서 피를 쏟아가면서도 이들은 쉬지 않았다. 토요일도 일요일도 공휴일도 스스로 다 반납했다. 가족도 다 버렸다. 회사에 야전 침대를 갖다 놓고 죽자 사자 고3 때 입시 공부하듯이 연구했다.
  
   한국인이 협동할 줄 모른다는 것도 다 한국인을 모르기 때문에 하는 소리다. 확실한 목표를 구성원이 다 함께 인정하는 순간 한국인만큼 단결이 잘 되고 한국인만큼 건설적인 국민이 없다. 누구도 권위를 내세우지 않는다. 확실한 목표 아래 공동으로 노력하게 되면 정보 공유를 한국인만큼 잘하는 국민도 없다. 싫은 소리를 해도 고깝게 듣지 않는다.
   그 결과 삼성의 메모리 반도체는 20년 뒤떨어진 첨단 기술에서 불과 10여년 만에 세계 1위로 우뚝 서게 되었다. 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인의 잠재력을 120% 끌어올린 분은 역사의 불가사의인 이순신 장군이다. 이순신 장군을 왜군과 함께 모함하여 하옥시킨 원균이 적의 전함을 단 한 척도 깨뜨리지 못하고, 단 하룻밤에 이 당시 세계 최고가 된 조선 수군의 거북선을 포함한 300여척 전함을 깡그리 수장시킨 경우에서도 보듯이 조선은 목표와 그 목표에 이르는 방법을 모르는 장군 아래서는 일본에게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이순신 장군은 도망쳐 온 단 12척으로 총 1,000여척의 일본 수군에 맞서 그들에게 치명적인 중상을 입혀서 사라호 태풍 앞의 등불 같던 나라를 기사회생 시켰다.
  
   원인은 이순신 장군의 탁월한 지도력과 머리 때문이었지만, 이런 기적을 낳은 사람들은 왜선을 보면 도망갈 줄 밖에 몰랐던 조선 수군이었다. 어찌된 셈인지 싸움을 전혀 할 줄 모르던 조선인은 이순신 장군 아래만 가면 갑자기 천하 제일의 군인으로 돌변했다. 어떻게 해서 이런 기적을 낳았던가. 조선인이 아니었으면 이순신 장군은 그런 기적을 낳을 수 없었다고 본다. 그 분은 조선인의 경천동지할 잠재력을 정확히 꿰뚫어 보고 이것을 120% 발휘하게 했다.
  
   정말 놀라운 일은 이순신 장군의 휘하에 들어가면 피해가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7년 동안 적의 전함을 935척이나 깨뜨리는 동안 아군은 딱 한 척 못 쓰게 되었을 뿐이다. 세계 어떤 전쟁사를 보아도 이런 일은 전혀 없다.
   이순신 장군과 한 번만 같이 전투에 참여한 이후에는 조선 수군은 절대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자신감이 철철 넘쳤다. 오로지 이순신 장군의 지시만 잘 따라 평소 준비한 대로만 하면 되었기 때문이다.
  
   이순신 장군이 쓰신 방법도 삼성전자나 포철이 한 것과 동일했다. 첫째가 정확한 목표 설정이었다. 이어 이 목표에 이르는 정확한 방법을 제시하고 물불을 가리지 않고 공통의 목표를 위해서 스스로 노력하게 만들었다. 한국인 특유의 신바람을 일으키게 했던 것이다.
  
   교육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과외는 목표가 잘못 설정되었기 때문에 생긴 부작용에 지나지 않는다. 목표만 정확하고 그 목표에 이르는 방법만 정확히 제시되면 설령 과외를 한다고 해도 전혀 문제 삼을 것 없다.
   예를 들어 창의력을 개발하는 입시 문제가 많이 나온다고 하자. 그러면 학교에서 배우든 과외로 배우든 창의력 있는 학생만 길러내면 된다. 그런 학생이 많이 나올수록 우리 나라는 장래가 밝을 수밖에 없다. 만약 학교에서 제대로 가르쳐 주면, 과외를 하더라도 이내 시들해질 것이다.
   삼성이나 포철을 떠나 딴 회사에서 과외 받았다는 말을 못 들어 보았다. 이순신 장군한테 칭찬 받기 위해 일본까지 유학 가서 전략 전술 배워왔다는 말을 못 들어 보았다.
  
   과외를 막는 것은 열난다고 돌팔이 의사가 무조건 열 내리는 약만 그 때마다 점점 강도를 세게 고단위로 처방하는 것과 동일한 짓이다. 정말 멍청하고 위험한 짓이다. 원인 치료를 해야 한다. 병의 근원을 정확히 알아내어 그에 따라 처방을 해야 한다.
   아무리 고단위 해열제를 써도 여전히 열이 내리지 않는다면, 그건 분명히 진단을 잘못하고 처방을 잘못한 것이다. 빨리 전문의에게 환자를 데려가야 한다.
   --계속-- (2000. 4. 9.)
  
[ 2006-05-20, 21:17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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