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의 망상 또는 화려한 착각
DJ! 이제 제발 80평생의 18번을 그만 부르십시오. 그 노래는 수령님 찬가나 장군님 찬가처럼 지겹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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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대중 전 대통령(이하 DJ)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빨갱이! 그에게 평생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말이다. 그 때마다 그는 극구 부인했고 틈만 나면 용공조작이요 중상모략이라며 역정을 내고 되받아 쳤다. 그러면 패가 쫙 갈라지면서 반(反) DJ패와 친(親) DJ패가 서로를 노려봤다. 이윽고 그들 사이의 골짜기는 태백산맥으로도 메울 수 없을 만큼 커졌다. 이에 친 DJ편은 DJ팬(fan)으로 뭉치고 DJ신도(信徒)로 결집되었다.
  
   그림자처럼 끈질기게 붙어 다니던 꼬리표를 떼고, DJ가 민주 지도자로, 민족 영웅으로 만인의 추앙을 받는 계기가 마침내 찾아왔다. 1997년의 대통령 선거와 2000년의 남북정상회담이 바로 그것이다. 대통령에 당선됨으로써 DJ를 빨갱이라고 욕하는 사람은 최소한 공공장소에서는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중상모략의 혹독한 추위를 이기고 풋풋하게 살아난 인동초로서 DJ는 능력을 마음껏 펼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평화통일의 초석을 놓을 준비된 지도자로 떠올랐던 것이다. 2000년 6월 한국의 국가원수로서는 최초로 그는 평양 땅을 밟았고 햇빛을 두려워하는 북한 지도자로부터 뜨거운 포옹을 받았다. 역사적인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DJ를 빨갱이라고 단정하거나 빨갱이일 거라고 의심하던 이른바 보수언론도 어용 방송 이상으로 호들갑을 떨었다. 대역전극! 세계도 깜짝 놀라 DJ에게 노벨평화상을 수여했다.
  
   바로 여기에서 한국의 정통언론은 이성을 잃었다. 단단히 헛짚었다. 통째로 올가미에 걸려 들었다. 핵무기도 미사일도 장사정포도 생화학무기도 인권도 마약도 위폐도 싹 덮고 그 비닐 지뢰밭 위에 영변의 약산 진달래를 아름 따다 뿌리고 DJ가 계룡산 도사처럼 지팡이를 앞세워 사뿐사뿐 즈려밟고 가는 것을 보고, 귀신에 홀린 듯이 조중동은 1면 전체에 남북 두 정상의 장밋빛 포옹 사진을 싣는 것으로 시작하여 내일이라도 당장 민족자주평화통일이 올 것처럼, 마치 이전에 당국의 수사 발표를 인용하여 DJ에게 빨갱이란 꼬리표를 단 것에 대해 느끼는 원죄 의식을 속죄라도 하는 양 며칠을 두고 특집에 특집으로 도배했다. 악질 친일파가 해방되자마자 태극기를 들고 목이 터져라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날뛰던 것처럼 조중동이 방송이나 자칭 진보언론보다 한 수 더 떴다.
  
   나는 이 때 어쩌면 홀로 이성을 잃지 않고 홍수에 맞서는 지푸라기처럼 2000년의 6․15공동선언은 30년을 거슬러 올라가서 1972년의 남북공동성명을 북한에 유리하게 해석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경고했다. 30년이나 뒷걸음친 것이라고 경고했다. 1972년의 남북공동성명을 한국과 한민족 전체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남북이 함께 서명까지 한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를 폐기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모기소리 만하게 경고했다.
  
   DJ의 실정이 거듭되고, 그 측근의 부정부패에서 이전의 정부들이 무색하게 구린 냄새가 진동하고, 북핵과 북한인권은 제자리에서 맴돌고, 천출장군에게 절대복종하는 인민군의 노골적인 침략에 맞서서 DJ가 마련한 괴이한 교전수칙을 지키다가 대한의 꽃다운 장병이 전원 산화하거나 만신창이가 되면서 참수리호가 가라앉고, 마침내 정상회담 구걸용 뇌물 5억 달러의 꼬리표가 들통났다. 이 무렵부터 조중동도 정신을 되찾았다. 그러나 덕담의 축포가 사방에서 울려 퍼지고 축복의 꽃잎이 분분히 날리는 가운데 결혼식보다 화려하게 약혼식은 치러졌고 어리둥절하는 사이에 늙은 예비 신랑신부를 태운 리무진은 떠났다. 조중동이 뒤늦게 국가반역죄를 논하며 분개할 때, 대업이 화동(花童)은 앞서고 설훈이 들러리는 뒤따라가며 하늘 가득 색색의 종이 꽃가루를 뿌리는 가운데 DJ의 양아들이 탄 꽃마차가 도착했다. 덕분에, 비밀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 아랫것과 쥐에게 들키고 새에게 발각된 재벌과 은행의 심부름꾼만을 족치는 것으로 얼렁뚱땅 DJ는 면죄부를 받았다.
  
   아차, 하는 사이에 허를 찔린 조중동은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북핵과 북한인권과 대북뇌물공여에 대해 쓴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러자 수구보수라는 붉은 딱지가 사옥에 가득 붙기 시작했다. 붉은 스프레이로 벽이란 벽, 바닥이란 바닥에 빼곡히 굵고 진하게 씌어지기 시작했다. 아직도 조중동은 금강산관광과 개성공단, 이산가족상봉에 대해서는 새 보도지침을 충실히 지킨다. 남북정상회담과 더불어 문화권력이 2% 부족한 98% 정치권력에 장악되었다는 말이다.
  
   먹구름과 황사로 뒤덮인 한반도에 희망의 빛은 또 다시 태평양 건너 아득히 먼 동쪽에서 비쳐 온다. 1945년 8월 15일의 그 날처럼 1950년 9월 15일의 그 날처럼 희망의 빛은 시속 30만km로 날아와 사랑의 태양으로 중천에 빛날 것이다. 적화야욕의 먹구름이 소낙비로 쏟아지면 동북공정의 황사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문득 눈을 뜨면 인권과 자유와 진실의 태양이 한라산에서 백두산까지 훤히 비출 것이다. 링컨과 맥아더의 나라뿐만 아니라 뒤낭의 나라, 슈바이처의 나라, 나이팅게일의 나라 등 지구촌의 거의 모든 나라들이 하나같이 38선 이북 수용소군도와 2008올림픽 경기장 뒷골목에서 자행되는 인권유린에 대해 분노를 금치 못하고 있다. 한쪽이 아무리 잡아떼고 또 한쪽이 아무리 뒤돌아서 몸으로 가려 주려고 해도 [수용소의 노래]와 한미양의 뽀뽀를 지켜본 세계의 양심은 더 이상 속지 않는다. 거대한 핵폐기물 언덕과 끝없이 이어지는 떼거지의 행렬을 위성중계로 바로 눈앞에서 보듯 생생히 지켜보고 있다.
  
   한국도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 아무리 발버둥이쳐도 아무리 터뜨려도 여당의 인기는 굼벵이처럼 바닥을 기고 거대 야당의 인기는 독수리처럼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다. 바로 이런 시점에 DJ가 휴전선에서 한국의 탄환열차를 북한의 굼벵이열차로 갈아타고 주석궁으로 가려고 한다. 방송과 인터넷과 어용 신문만이 아니라 정통언론까지 2000년처럼 감격에 겨워 어쩔 줄 몰라 할 줄로 굳게 믿고, 양보에 양보를 거듭하고 제도적으로 물질적으로 통크게 화끈하게 퍼 주기 위해서, 연합제와 낮은 단계의 연방제가 갖고 있는 공통점을 전세계로 타전하기 위해서, DJ가 염라황제를 알현하러 가려고 한다.
  
   “아니랍니다, DJ! 이제 제발 80평생의 18번을 그만 부르십시오. ‘민주, 통일, 평화’ 그 노래는 수령님 찬가나 장군님 찬가처럼 지겹습니다. 음정 박자 제 멋 대로인 카스트라토 돼지 목소리처럼 소름이 끼칩니다. 이제는 아무리 아니라고 우겨도 그 노래가 북의 선율에 남의 가사만 살짝 실은 것임을 하늘이 알고 땅이 압니다. 설령 남북 정상이 얼렁뚱땅 평화협정을 맺고 전격적으로 연방제 통일을 선언해도 나라의 주인인 국민이 열이면 아홉 적어도 여덟이 손가락을 자를지언정 인장을 눌러주지 않을 겁니다. 이제 그만 깨어나십시오. 긴긴 망상의 잠에서 깨어나십시오. 화려한 착각은 거기까지랍니다.”
   ( 2006.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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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 공동선언문과 7․4 공동성명
  
   남북 정상회담의 결산인 6․15 남북공동선언문은 앞으로 남북 관계에서 그 어떤 것보다 큰 영향력을 미칠 것이다. 이보다 더 중요한 글이 통일 전에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어찌 보면 헌법과 같은 효력을 발휘할지도 모른다. 1차 사료로 이것은 1,000년을 두고 길이 인용될 것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말했듯이 '뜨거운 가슴'에 '차가운 머리'를 가져야 한다. 이제 잔치가 끝난 만큼 이 선언문은 '차가운 머리'로 분석해야만 한다.
  
   6․15 남북 공동선언문을 면밀히 살펴보면 남한은 ‘뜨거운 가슴’이었던 반면에 북한은 ‘차가운 머리’였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큰형, 큰집의 너그러움을 막내, 작은집은 온갖 미사여구와 환대로 최대한 이용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4월 10일의 남북 정상회담 합의서는 북한이 작성한 것에 남한은 단지 서명한 것에 지나지 않은 듯한데, 6월 15일의 선언문도 비록 세 시간에 걸쳐 글을 다듬었다고 하지만, 북한에서 사전에 거의 작성해 둔 것에 약간의 수정이 가해진 느낌이 든다. 말미의 북한 정상의 서울 초청에 관한 글과 제2항의 ‘남측의 연합제 안’이라는 말이 추가된 정도에 그친 듯하다.
  
   6․15 남북 공동선언문은 거의 4․10 합의서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것은 더 멀리 1972년의 남북 공동선언문을 북한에 유리하게 해석하여 남북 정상이 서명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1992년의 남북기본합의서가 7․4공동선언문을 남한에 유리하게 해석하여 남북 수뇌가 추인한 것과 대조된다.
  
   7․4공동선언문도 이후락 당시 정보부장이 밀입북하여 청산가리까지 몸에 품고 비장한 마음으로 바싹 ‘얼어서’ 추상적인 말로 북한에 유리하게 작성되었었는데, 이번에는 정반대로 남한이 ‘들떠서’ 북한에 아주 유리하게 작성되었다. 이로써 남한에 유리할 뿐만 아니라 사실 남북한 모두에게 유리한 기본 합의서는 거의 형체만 남게 되었다.
  
   7․4공동선언문의 핵심은 자주, 평화, 민족 대단결이다. 북한은 이것을 각기 자주는 미군철수, 평화는 반공법 폐지, 민족 대단결은 고려연방제와 연결했다. 이런 전제조건이 충족되지 않는 한 남북교류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북한의 시종일관된 입장이었다. 그 모든 책임은 남한에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것이 동구가 무너지고 구소련이 붕괴되면서 남한이 북방정책으로 중국과 구소련과 동구와 재빨리 수교하고 미국과 일본도 한국을 건너뛰어 북한에 접근하지 않음으로써 북한은 완전히 포위되었다. 게다가 동독의 공산주의 정권도 붕괴되어 북한은 입이 바싹바싹 타 들어갔다. 그리하여 북한은 먼저 고위급 회담을 제의하여 총리회담을 8차에 걸쳐 계속하여 1992년 기본합의서란 옥동자를 탄생시켰다.
  
   북한으로서는 이 기본합의서가 늘 불만이었다. 체제 붕괴의 위협을 느끼면서 작성된 합의서이기 때문에 이전의 목소리를 거의 꺼내지 못했던 것이다. 얼마든지 해석을 달리 할 수 있는 추상적인 말은 일체 쓰지 않았던 것이다. 자주, 평화, 민족대단결이라는 말 대신 화해, 상호불가침, 교류와 협력이라는 말을 쓰고 이를 각각 분과별로 나누어 철저히 현실적인 방안을 마련했던 것이다. 북한으로서는 이를 지킬 마음에 애당초 없었다고 본다. 위기 상황을 모면하려는 의도였다고 본다.
  
   기회는 왔다. 김영삼 정부가 들어선 것이다. 이들은 즉시 1992년 12월 21일의 9차 회담을 중지시키고 김영삼 정부를 시험하기 시작했다. 한미 합동군사훈련에 대한 위협에 대한 방어 차원이라는 명분으로 동해안에 무장 잠수정을 투입했던 것이다.
   김영삼 정부는 반공과 민주주의 사이에서 갈팡질팡했다. 덕분에 북한은 기본합의서를 사문화시키는 데 성공했다.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서도 북한의 시험은 계속되었다. 동해안 잠수정 침투뿐만 아니라 서해안에 꽃게잡이 어선 보호라는 명분으로 전투함도 보냈다. 서해교전. 결과는 남한의 압도적인 승리로 끝났다. 그 날짜가 공교롭게 6월 15일이다. 의도성이 상당히 짙다고 본다. 정상회담을 하루 연기한 것도 이와 관계 있을지 모른다.
  
   김대중 정부에 대해서도 북한은 의구심을 떨칠 수 없었다. 그런데, 기본적으로 보수 쪽이었던 김영삼 정부와 달리 김대중 정부는 민주주의 중에서도 진보 쪽이다. 북한으로서는 그게 그것인 셈이지만, 서해교전 중에도 비료를 실어 보내고 금강산 관광단을 보내는 걸 보고, 이들은 깜짝 놀랐다. 김대중 정부와 대화할 수 있다는 확신이 섰다.
  
   자기들에게 불리하다고 생각되는 기본합의서는 얼렁뚱땅해 버리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7․4공동선언문을 재해석할 수 있다는 희망이 생겼다고 본다. 김대중 정부는 기어코 남북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확고한 의지가 있었다. 절호의 기회였다. 결과는 대성공!
  
   남북 사이에 말하기가 아주 민감한 문제가 통일이다. 남한은 당연히 자유민주주의식 평화 통일을 원하고 북한은 당연히 인민민주주의식 평화 통일을 원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분단 55년 동안 남북 공식회담에서 통일 문제는 정식으로 꺼낼 수 없었다. 지향하는 목표로 의례적으로 썼을 뿐이다.
  
   그런데 이번에 이 통일이란 단어를 무려 다섯 번 썼다. 통일 선언문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이다. 처음 시작하는 말이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이다. 서로의 입장을 고려하여 <평화통일, 나라의 통일>이란 말로 명기했다. 이미 언급했듯이 평화통일도 그리 쉽게 합의할 수 있는 말이 아니다. 피만 흘리지 않으면 평화통일이기 때문에, 남한은 남한 체제로 북한은 북한 체제로 <연합 내지 연방>을 통해 통일하길 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평화통일에 앞서 기본합의서의 <상호 불가침> 선언이 재확인되어야 하는데, 이를 정상회담에서는 분명히 논의가 되었다고 했지만, 공동선언문에는 한 마디도 없다.
  
   이번의 선언문은 얼핏 보면 남북 양쪽의 뜨거운 통일 열정이 느껴진다. 당장 통일될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이다. 만약 이 선언문을 거부하면 민족 반역자, 통일 반대 세력으로 매도될 수 있을 정도이다. 이것은 북한 사람을 만나면 느닷없이 <왜 남조선은 통일을 하지 않으려 합네까>라면서 질책하는 기분이 들게 한다. <통일>이란 말을 선점함으로써 마치 자기들은 모두 자나깨나 통일을 염원하는 것으로 명분을 축적하는 효과가 있다.
  
   그렇지 않다고 하면 즉시 북한 사람은 인민학교 학생만 되어도 <그러면 왜 미군을 몰아내지 않습네까>라고 한다.
  앞으로 남한에서도 이와 유사한 일이 벌어지리라고 본다. 남북 정상이 공동 서명한 것을 비판하려고 하면 즉시 반통일주의자로 몰리기 십상이다.
  
   통일의 또 다른 성격은 <자주 통일>이다. 제1항에 들어 있다.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 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라는 말과 <자주적으로>이란 말을 거듭 씀으로써 7․4공동성명의 첫째 조건 <자주>를 너무도 선명하게 <통일>과 연관시킨 것이다. <자주>라는 말은 원래 북한이 제의하여 1972년의 성명문에 쓰이게 되었다.
  
   북한은 말 한 마디 잘못하면 생명이 왔다 갔다하기 때문에 어휘 선택이 보통 신중한 게 아니다. 처음부터 이들은 이것을 미군 철수를 염두에 두고 제의했음에 틀림없다. 말을 마구잡이로 쓰는 남한과는 전혀 다르다는 걸 알아야 한다.
  
   미군은 분명히 철수했다가 6․25 때문에 다시 들어왔지만, 북한은 시종일관 북침설을 내세워 그것은 미국의 교활한 속임수라고 우긴다. 여기에 동조하는 사람은 의외로 남한에도 많다. 남한의 많은 지식인은 북한이 선점한 <자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미군의 존재에 대해 원죄와 같은 죄의식을 느끼고 있다. 북한의 치밀한 계산은 이것도 다 꿰고 있다.
  
   참 좋은 <자주>라는 말을 남한에서 쓰는 것하고 북한에서 쓰는 것하고 전혀 다른 의미를 갖는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 정상회담 한 번 했다고 어휘 선택에 목숨을 거는 그들이 <자주>를 남한과 같은 의미로 쓰기 시작했다고 보는 것은 너무 착해서 그렇다고나 할까.
  
   7․4공동성명문의 나머지 한 개념은 <민족 대단결>인데, 이것은 늘 북한의 고려연방제와 연결되어 문제를 꼬이게 만들었다. 그런데 이번 선언문에서는 아예 이를 제2항에 명문화했다. 굳이 애매한 <민족 대단결>을 쓸 필요가 없었다.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란 말로 고려연방제를 명시한 것이다. 이것이 어쩌면 이번 선언문의 최대 효과일지도 모른다.
  
   남측의 <연합제 안>과 북측의 <연방제 안>은 공통성이 상당히 많다. 그런데 이 남측의 안이라는 것은 김대중 정부 들어 갑자기 가시화된 것이다. 과연 국민들의 지지를 얼마나 받는지 조사된 바가 없는 줄 안다. 한나라당이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걸 갖고 발목잡기로 몰아칠 수만은 없다고 본다.
  
   <연합제 안>과 <연방제 안>의 가장 큰 차이점은 북한이 국방, 외교, 사법권을 갖는 중앙 정부를 구성하자는 것에 반해 남한은 통일 정부의 전단계로 남북 두 지역정부를 구성하자는 것이다. 김 대통령이 설득하여, 북측도 이 안을 받아들이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여 <낮은 단계의 연방제 안>이란 말이 나오게 되었다고 한다. 당국자 회담 등을 통해서 후속조치를 빨리 마련하여 의구심을 없애야 할 것이다.
  
   제3항 <흩어진 가족의 상봉과 비전향 장기수 문제> 해결은 누가 보아도 북한이 일방적으로 유리한 조항이다. 8․15를 즈음하여 일회적 사건으로 규정한데다 5만 명으로 추정되는 국군 포로와 비전향 장기수보다 결코 적지 않은 납북 어부와 북측이 선수를 쳐서 남측이 얼떨결에 아무 말도 못하게 한 탈북자 문제는 전혀 거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산가족만이 아니라 일반 서민들이 마음대로 서로 오갈 수 있으면, 이게 실질적인 통일이다. 그런데 통일, 통일을 그렇게 거창하게 외치는 공동선언에서 이산가족 상봉의 상설화란 말도 없이 일회적 사건으로 규정한 데다가 인도적 문제의 핵심이랄 수 있는 국군 포로, 납북 어부, 탈북자, 강제수용소 문제가 언급조차 없다는 것은 일방적인 북한의 주장에 끌려갔다고 할 수밖에 없다. 통일이란 말을 공허하게 만드는 조항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애당초 이산가족 상봉은 아예 꺼내지도 않다가 김대통령이 강력히 제기한 덕분에 그나마 명문화했다고 하는데, 이건 북한의 치밀한 계산이었다고 본다.
   아무 것도 안 해 줄 듯이 버팀으로써 오히려 그저 한 번의 행사로도 감사하게 만들고 그 대가로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단번에 해결했을 뿐만 아니라, 남한 국민들의 초미의 관심사인 다른 인도적인 문제는 싹 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인권 대통령이란 말을 어떤 호칭보다 듣기 좋아하는 김대중 대통령의 <뜨거운 가슴>이 독재자 이미지가 선명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차가운 머리>에 꼼짝없이 당한 경우이다.
  
   제4항는 기본합의서의 정신을 가장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교류와 협력, 이것이 실질적으로 제일 중요하다. 이를 이번 공동선언에 포함한 것은 남북의 이해 관계가 일치한 부분이고 어쩌면 이것이 북한이 가장 목말라 하는 부분일 가능성이 높다. 경제, 사회, 문화뿐만 아니라 체육, 보건, 환경까지 명문화한 것은 대단한 발전이다. 김대중 대통령도 이 조항과 서울 정상회담의 확약으로 체면을 살리게 되었다.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란 부분이다. 이번 선언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국제 컨소시엄이 꼭 필요한데, 가능한 한 외국 자본과 기술을 배제하겠다는 속셈이 들어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점을 십분 감안하여 <민족경제>가 이제는 민족 스스로는 절대 발전할 수 없다는 점을 잘 설득하여 꼭 국제공조를 이루어 북한이 싫어도 국제 사회로 나오게 해야 할 것이다. 또한 어느 날 갑자기 체제의 불안을 느끼고 외세 의존의 경제를 비난하면서, 종속론을 핑계로 문을 닫는 일이 없도록 해야겠다.
  
   두 선언문과 기본합의서의 성격을 규정하면 1972년의 7․4공동성명은 명분, 1992년의 기본합의서는 실질, 2000년의 6․15공동선언문은 명분과 실질을 합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다.
  
   북한을 국제 사회로 끌어내어 개방시켜야 한다. 그래야 북한의 온갖 문제가 풀리는 실마리가 제공되고 남북의 냉전 상태가 종식되면서 평화가 성큼 다가서게 된다.
   역사적인 남북 첫 정상회담에서 이 정도의 성과를 거둔 것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아홉 차례 더 남북 정상이 만나면 그 성과는 더욱 커질 것이다. 그러면 이번 공동선언보다 훨씬 세련되고 서로에게 득이 되는 또 다른 공동선언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거듭 만나면서 신뢰가 쌓이면, 상시적인 남북 이산 가족 상봉도 가능해질 것이고 국군 포로 문제, 납북 어부, 탈북자, 강제수용소 문제 등도 점차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음부터는 <뜨거운 가슴>에 꼭 <차가운 머리>를 가져가기 바란다. 앞으로 있을 당국자 회담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대남 비방 방송을 중단한 것을 높이 평가해 주어 그들의 마음을 흡족하게 해 주는 것도 좋은 방책이 될 것이다.
  
   (2000.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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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15 남북공동선언문 전문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숭고한 뜻에 따라 대한민국 김대중 대통령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6월13일부터 6월15월까지 평양에서 역사적 상봉을 하였으며 정상회담을 가졌다.
  
  남북정상들은 분단 역사상 처음으로 열린 이번 상봉과 회담이 서로 이해를 증진시키고 남북관계를 발전시키며 평화통일을 실현하는데 중대한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고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1.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문제를 그 주인인 우리 민족끼리 서로 힘을 합쳐 자주적으로 해결해 나가기로 하였다.
  
  2. 남과 북은 나라의 통일을 위한 남측의 연합 제안과 북측의 낮은 단계의 연방 제안이 서로 공통성이 있다고 인정하고 앞으로 이 방향에서 통일을 지향시켜 나가기로 하였다.
  
  3. 남과 북은 올해 8.15에 즈음하여 흩어진 가족, 친척 방문단을 교환하며 비전향 장기수 문제를 해결하는 등 인도적 문제를 조속히 풀어 나가기로 하였다.
  
  4. 남과 북은 경제협력을 통하여 민족경제를 균형적으로 발전시키고 사회, 문화, 체육, 보건, 환경 등 제반분야의 협력과 교류를 활성화하여 서로의 신뢰를 다져 나가기로 하였다.
  
  5. 남과 북은 이상과 같은 합의사항을 조속히 실천에 옮기기 위하여 빠른 시일 안에 당국사이의 대화를 개최하기로 하였다.
  
  
  김대중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도록 정중히 초청하였으며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앞으로 적절한 시기에 서울을 방문하기로 하였다.
  
  
  2000년6월15일
  
  대한민국 대통령 김대중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장 김정일
  
  
  남북 정상회담 합의서 전문 (2000.04.10)
  
  『남과 북은 역사적인 7.4 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 교류와 협력, 평화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하여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초청에 따라 김대중 대통령이 금년 2000년 6월 12일부터 14일까지 평양을 방문한다.
  
  평양 방문에서는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이에 역사적인 상봉이 있게 되며 남북 정상회담이 개최된다.
  
  쌍방은 가까운 4월 중에 절차문제 협의를 위한 준비접촉을 갖기로 하였다.
  
  상부의 뜻을 받들어 남측 문화관광부 장관 박지원 상부의 뜻을 받들어 북측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위원장 송호경 2000년 4월 8일』
  
[ 2006-05-23, 07:19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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