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배도 정통우익 정부가 우등생
이승만에서 노태우에 이르기까지 한국의 정통우익 정부는 분배도 세계적 우등생이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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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배도 정통우익 정부가 우등생
 
   [한국과 중국, 누가 소득분배의 우등생일까]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과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 중 어느 나라가 소득분배의 우등생일까. 두 나라의 지니계수는 다음과 같다. 아시다시피 0은 완전 평등, 1은 절대 불평등을 가리킨다. 따라서 숫자가 작을수록 분배가 잘된 나라이다.
  
   한국: 2002년 0.312, 2003년 0.306, 2004년 0.310, 2005년 0.310 (1990년 ~1997년 평균 0.286, 1998년 ~ 2003년 평균 0.315 OECD 평균 0.310)
   중국: 2003년 0.454, 2004년 0.465, 2005년 0.470 (국제공인 위험선 0.390)
  
   일반적인 선입견과는 정반대로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의 소득분배 상황이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월등히 좋다. 숫제 상대가 안 된다. 역설적으로 노골적으로 성장보다 분배를 앞세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빈부격차가 제일 심해졌다. 그 이전은 거의 환상적이었다. 서구 복지국가 수준이었다. 영국이 90년대 이후 평균 0.37이니까, 한국은 영국보다 훨씬 낮다. 미국은 중국과 비슷하다. 2003년 이후에는 통계청에서 도시근로자 가구만이 아니라 전국 가구의 지니계수도 발표하는데, 그에 따르면 전국 가구의 지니계수는 2003년 0.341, 2004년 0.344, 2005년 0.348로 계속 악화되고 있다. 그러나 이 수치도 영국보다는 낮다.
  
   한국은 노조가 자유화되기 전인 1986년에도 0.307로 2005년보다 낮았다. 노조가 합법화된 후 더 개선되어 1987년 0.306, 1988년 0.302 이렇게 낮아지다가 김영삼 정부가 출범한 1993년에는 0.281까지 내려간 적이 있다. 외환위기가 닥친 1997년에는 0.283이었지만
  1998년에는 0.316으로 껑충 뛰었다.
  
   생산성을 웃도는 임금 인상으로 무리하게 소득분배를 개선시키면, 그것 자체가 또 다른 분배왜곡이 되기 때문에 시장의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국가경제가 경착륙(hard landing)하는 과정에서 서민을 중심으로 큰 출혈이 따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국의 어떤 정부도 분배를 경시하지 않았다]
  
   친북좌파의 선전선동과는 정반대로, 한국은 역대 어느 정부도 성장을 위해 분배를 희생한 적이 없다. 사실상의 신생독립국으로서, 햇병아리 자본주의 국가로서 한국만큼 노동자농민을 위한 나라도 없다. 평등과 분배를 자유와 성장보다 항상 앞세운 공산국가보다 한결 나았다. 이승만 정부는 북한의 현물세 5년치보다 낮은 가격으로 그 당시 가장 큰 재산이었던 농지를 전 농가에 거의 동일하게 나눠 주었다. 오늘날로 말하면 모든 기업을 상장시켜 그 주식을 전 가구에 똑같이 분배하는 것과 같은 획기적인 정치 결단이었다. 그래서 토지의 지니계수를 획기적으로 낮추었다. 1951년에서 1960년 사이 한국의 평균 토지 지니계수는 불과 0.19로 대만의 0.45, 심지어 중공의 0.21보다 낮았다. 그 당시 중공은 협동농장 체제였으니까 사실상 농민을 영원한 소작농으로 전락시킨 것이지만, 한국은 대부분의 농민을 자작농으로 격상시켰다. 농지개혁 이후 농지세도 미미했다. 그래서 농업국이었던 한국은 세수가 태부족하여 국가예산의 80% 정도를 미국의 원조로 꾸려갔다.
  
   경제개발 이후도 한국은 신화와 전설과는 달리 임금착취가 거의 없었다. 60년대 공단에 취직하려면 15살 정도의 소녀는 취직을 알선해 줄 수 있는 공장의 기껏 반장 정도 되는 사람 집에서 무급으로 1년 정도 식모살이를 해야 했다. 그렇게 해서 취직하면 과거에 급제한 듯 기뻐하며 어금니를 악물고 일해서 월급의 대부분을 시골로 보내 동생들의 학비와 부모님의 영농자금으로 쓰게 했다. 더 알뜰한 부모는 그 돈을 모아 땅을 샀다. 그렇게 사 놓은 땅이 지금은 수십억 원을 호가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 결과 도시만이 아니라 농촌도 살림이 급격히 나아졌다. 중산층이 폭발적으로 증가할 수밖에 없었다.
  
   월급도 공무원이든 회사원이든 연공서열이 원칙이었다. 이것은 일한 만큼 가져가는 자본주의 방식이 아니다. 나이가 들면 가족이 생기고 자녀가 크고 부모도 봉양해야 하는 등 씀씀이가 점점 커진다. 연공서열은 바로 필요한 만큼 가져가는 방식이다. 사회주의 방식인 것이다. 이것도 한국의 분배가 어떤 나라보다 양호했던 큰 이유다.
  
   세금도 처음부터 누진세를 적용하여 많이 번 사람에게는 왕창 걷고 적게 번 사람에게는 살짝 걷었다. 이것도 분배개선에 작지 않게 기여했다.
  
   이런저런 정책이 조화를 잘 이룬 자본주의 국가인 한국이 경제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보다 소득분배가 훨씬 잘되었던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이승만과 박정희가 모택동과 등소평보다 위대한 인물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공산국가나 복지국가와는 달리 한국은 분배에 대해 북 치고 나팔 불지 않았을 뿐 실지로는 어떤 나라보다 실속 있었던 것이다. 국가가 부자로부터 세금을 징수해서는 마치 여당이 주는 것인 양 가난한 사람들에게 돈을 나눠 주는 사회보장제도, 국가가 모든 생산품을 강제징발한 후 큰 은혜를 베풀 듯이 국민에게 물품을 나눠 주는 배급제도 등은 정치권력이 생색내기에는 안성맞춤이다. 겉보기에는 이보다 더 확실한 분배정책이 없다. 그러나 이건 빛 좋은 개살구다.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한국형 국가경영은 생산적 복지]
  
   한국은 경제이론이 정립된 것은 없었지만, 건전한 상식을 바탕으로 오늘날로 말하면 국제화(globalization)와 현지화(localization)를 결합한 한국형 국가경영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루었다. 한국형 경영의 핵심은 성장과 분배를 동시에 추구하되 성장을 분배에 항상 앞세운다는 것이었다. 또한 공짜 심리를 없애고 누구나 노력해서 스스로 벌어먹게 살 수 있게끔 일자리를 끝없이 만들었다는 것이다. 무진장으로 고용을 창출한 것이다. 그래서 1950년대나 1960년대 초에 잠재 실업률이 50%가 넘던 나라에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나라에서, 거의 완전고용을 유지하는 기적을 낳을 수 있었던 것이다. 생산적 복지(productive
  welfare)가 한국에서는 건국 초기부터 하나의 상식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다.
  
  [분배의 수레를 성장의 말 앞에 둔 정부들]
  
   김영삼 정부 때부터 소득분배는 선진국형으로 가야 했다. 노동생산성과 임금인상이 정비례하게 만들고,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확보해야 했다. 또한 서비스업에 대한 규제를 과감히 풀어 새로운 일자리를 대거 만드는 한편 제조업과 농업의 생산성도 한 단계 끌어올려야 했다. 무지하고 무능한 김영삼 정부는 스스로 도취하고 인기에 연연하고 기업에 대한 반감과 몰이해를 정치민주주의와 경제정의로 착각하여 ‘보이지 않는 손’이 시장에 폭탄을 장치하는 것도 모르고 날마다 ‘거꾸로 개혁’을 단행했다. 그 폭탄이 터짐과 동시에 가장 고통을 받은 사람들은 부자가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이었다. 강제로 끌어내렸던 지니계수가 0.283에서 순식간에 0.316까지 치솟았으니까.
  
   갈수록 태산이라더니,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타이탄의 거대한 왼발을 성큼 내딛었다. 날마다 평등, 밤마다 분배를 외치며 아예 분배의 수레를 성장의 말 앞에 두었다(put
  the cart before the horse). 말도 달릴 수 없었고 수레도 요란하기만 할 뿐 갈수록 텅텅 빌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노무현 정부에 접어들면서, 60년대 이후 세계평균 성장률의 2배 이상을 웃돌던 개미왕국 한국이 세계평균을 밑도는 베짱이왕국으로 전락했다. 우습지도 않게 김영삼 정부처럼 환율이 대폭 낮아지는 바람에 달러 환산 GDP만 높아져서 일인당
  GDP 2만불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성장의 말이 달리지 못하고 터벅터벅 걸어가자, 거꾸로 매달린 분배의 수레는 점점 소리만 요란해졌다. 졸업증명서는 실업증명서로 바뀌었다. 실업수당이나 기초생활보조비, 건강보험 등으로 복지예산은 눈덩이처럼 불어나는데 세금은 갈수록 적게 걷히자, 노무현 정부는 정의의 칼을 휘두르며 대통령이 직접 언급하길 세금의 90%나 낸다는 20%의 부자로부터 갖은 명목으로 세금을 더 쥐어짜려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한다.
  '종합부동산세 한 번 내 보세요~ ^.^ '
  
   노무현 정부는 ‘아담 스미스의 손’이 세계10위 시장에 김영삼 정부 때보다 더 거대한 폭탄을 장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는 듯하다. 국가경제가 또 한 번 경(硬)착륙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 때는 한국의 지니계수가 중국보다 높아질지 모른다. 그러면 지옥에서 모택동과 김일성은 두 손을 마주치며 하이파이브를 외치고, 천국에서 이승만과 박정희는 한 손으로는 자기 가슴을 치고 다른 한 손은 들어 닭똥같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서로 훔쳐 줄 것이다.
   (2006. 5. 28.)
  
[ 2006-05-29, 07:2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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