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만에, 닭이 먼저다--과학의 한계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빈틈이 없어 보이지만 틀렸다. 이것은 과학의 문제 이전에 역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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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에, 닭이 먼저다--과학의 한계
 
   영원한 숙제처럼 보이던 닭과 달걀을 둘러싼 순환논리가 영국의 과학자에 의해 최종 결론이 났다고 한다. 다른 과학자와 철학자와 양계업자도 이에 하나같이 고개를 끄덕인다고 한다. 결론은 ‘달걀이 먼저’. 그 이유는 달걀의 유전자는 그 달걀이 부화해서 자라나는 닭의 유전자와 같지만, 최초로 달걀을 낳은 닭 이전의 조류는 그 달걀과 유전자와 다르기 때문이란다.
  
   과학적으로나 논리적으로나 빈틈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틀렸다. 왜? 이것은 과학의 문제 이전에 역사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번 경우도 그렇지만, 사람들이 지금까지 아무도 이 문제를 풀지 못한 것은 역사의 문제를 오로지 과학과 논리학의 문제로만 인식했기 때문이다.
  
   모든 가축이나 가금이 그렇듯이 닭도 처음에는 야생의 동물을 길들인 것이다. 야생 동물도 아무 거나 길들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가축이나 가금으로 길들인 동물은 극소수이다. 인간이 아무리 애를 써도 표범같이 야성이 너무 강한 것은 언제든지 도망가 버리기 때문이다.
  
   닭은 틀림없이 야생의 꿩을 길들인 인위적 선택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그 당시 인간은 인공부화 능력이 없었기 때문에 길들이기 쉬운 꿩 병아리를 길렀을 것이다. 여러 시행착오 끝에 꿩 병아리들을 성공적으로 길렀을 것이고 이들끼리 번식하게 만들어 점차 자연상태의 꿩과는 다른 유전자를 갖는 닭이 탄생하게 되었을 것이다. 오늘날 닭과 같은 조류가 생겨나기에는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을 것이다. 최소한 야생의 꿩 병아리로부터 시작하여 수십 세대, 수백 세대, 수천 세대가 흘렀을 것이다. 유전자의 변이도 아주 느렸을 것이다. 따라서 어느 시점부터 유전적으로 꿩인지 닭인지 구별하는 것은 대단히 힘들 것이다.
  
   결국 거슬러 올라가면 최초의 꿩 병아리는 비록 그 유전자는 꿩과 같지만, 인간이 길을 들였기 때문에 그것을 최초의 닭이라고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연 속에서 인간의 집으로 데려오는 순간, 그것은 자연과 격리되었고 그 후에 일어난 유전자 변이는 최초의 꿩 병아리들 유전자 풀 속에 기본적으로 다 들어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천적 요인 외에 후천적 요인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길러진 병아리는 사람만 보면 푸드득 달아나는 야생의 꿩과는 달리 주인을 졸졸 따라다녔거나 최소한 모이를 주면 쪼르르 달려왔을 가능성이 크다. 그게 바로 닭이다.
  
   아시아에서 최초로 오늘날의 베링해 부근을 걸어서 아메리카로 간 아시아인은 그 후 아시아인과 단절이 되고 그들끼리만 유전자를 주고받았다. 그 결과 새로운 인종이 탄생했다. 실은 아메리카로 이주하는 순간 이미 그들은 아메리카 원주민이 되었다. 만약 계속 그 바다가 육지였다면, 그들도 계속 아시아와 아메리카를 들락날락했을 것이고 그랬다면 새로운 종족이 생겨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여기서 어느 시점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해야 할까. 달걀 유전자와 닭의 유전자를 비교하듯이 아시아의 원 조상과 다른 유전자를 가진 어떤 아이(좀 더 정확히 말하면, 알에서 깨어나기 전의 김알지 같은 자궁에 착상한 수정란)부터 아메리카 원주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그런 식으로 따지만 애매하기 짝이 없다. 결론은 아메리카로 건너간 최초의 사람들이 모두 아메리카 원주민이다. 그들이 처음에는 아시아인과 유전자가 똑같았더라도 그것은 상관없는 일이다. 왜냐하면 따로 떨어져나가는 순간 그들끼리만 유전자가 섞이게 운명 지어졌으니까. 환경에 적응하여 생활양식도 사고방식도 달라졌을 테니까.
  
   닭도 마찬가지다. 인간이 최초로 꿩 병아리를 데려다 기르는 순간 그것은 이미 닭으로 운명 지어졌다. 그것이 최초의 닭이었다. 더 이상 그들은 야생의 꿩과 사랑을 나누지 않았을 테니까. 더 이상 사람을 피하지 않았을 테니까.
  
   어떤 문제가 개미 쳇바퀴 돌 듯 미궁 속에서 헤매는 것은 그 문제 자체 때문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생각의 틀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닭과 달걀을 둘러싼 순환논리도 바로 그런 것이다. 유전학의 발달 덕분에 다윈급 천재 과학자가 결론을 내렸다고 해서 그것이 곧 정답이 될 수는 없다. 그것은 과학 이전에 역사의 문제인데, 역사의 관점으로 검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또한 그 탁월한 과학자도 역사 문제에선 문외한이기 때문이다.
  
   (2006. 5. 30.)
  
  
[ 2006-05-30, 07:30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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