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개혁(14),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나쁜가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라고 내버려두면 90%의 학생은 알아서 공부하지 않고 알아서 머릿속이 다 빌 때까지 논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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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개혁(14),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나쁜가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파행적 공교육의 대표주자로 지탄받은 지 오래되었다. 학교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이 둘을 없애야 한다는 소리가 광범위한 지지를 받았다.
   학교 교사들도 이에 많은 동조를 했다. 약간의 경제적인 도움이 다소 아쉽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학교 교육 정상화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감내할 마음의 자세가 되어 있었다.
  
   15여년 전부터 교사의 양심을 걸고 한사코 이를 거부하고 정규 수업만 고집한 고결한 분도 더러 있다. 자연 이런 분은 담임도 거부했고 보충교재도 수업시간에 쓰지 않았다. 학부모 촌지뿐만 아니라 부교재 채택료에서도 원천적으로 자유롭게 된 셈이다.
  
   힘들게 공부해야 하는 학생들은 당연히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을 대부분 달가워하지 않았다. 그러나 단 1년만 지나면 태도가 묘하게 바뀐다.
  
   학부모 입장은 좀 달랐다. 모르긴 해도 과반수 이상의 학부모는 고등학생이 벌건 대낮에 하교하는 건 가슴 답답해 눈뜨고는 못 봐 준다. 고액 과외를 할 수 있는 학부모야 자율학습과 보충수업 폐지를 옛날부터 쌍수를 들고 환영했다. 수준이 낮은 수업과 열악한 환경에서 억지로 공부하는 자식이 안쓰러웠던 것이다.
  
   자율학습비와 보충수업비조차 부담스러웠던 학부모는 막연한 희망을 품고 이의 폐지를 은근히 바랐다. 다만 가난하되 교육열이 높은 학부모는 이 두 제도야말로 가장 저렴하면서 가장 효과적인 공부 방법이란 걸 알고 적극 지지했다. 이들은 현 고등학교 2학년부터 전면적으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이 폐지되자 속앓이를 하게 되었다. 보습학원과 독서실에 보내려면, 그 비용이 최소한 10배가 들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집에서 공부하라고 하는 수밖에 없었다.
  
  --옛날에 비하면 호강이다. 지금 대통령도 상고밖에 안 나왔지만, 혼자 열심히 독서해서 누구보다 똑똑한 사람이 되었단다. 마침내 대통령까지 되었지. 거기 비하면 너는 얼마나 행복하니? 약간 시끄럽긴 하지만, 집에서 열심히 하면 얼마든지 잘할 수 있을 것이다. 다 마음먹기 아니냐? 게다가 힘들긴 하지만 너보고 돈 벌라고는 하지 않는다. 학비는 걱정 마라.
  
   문제는 언제나 이상과 현실이다. 이상은 현실과 괴리되면 더 이상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환상이다. 신기루이다. 이상은 냉엄한 현실을 바탕으로 할 때 비로소 현실을 변화시키는 희망의 별이 된다. 정확한 현실 인식 없이 책상 위에 턱을 괴고 상상해서 만든 이론을 또 다른 이론과 논쟁해서 이긴 결론을 이상이라고 하여 힘있는 자가 밀어붙이면, 그것은 현실을 끝없이 왜곡하여 끝내는 이상이라고 확신한 목표와 현실은 점점 더 유리된다.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라는 점을 먼저 알아야 한다. 이를 마치 원인인 양, 다시 말해 이것만 제거하면 저절로 교육정상화가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마치 얼굴에 빼곡한 여드름을 짜내기만 하면 얼굴이 저절로 백옥같이 되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일시적으로 얼굴이 벌겋게 되지만, 곧 얼굴이 하얗게 되리라고 생각하는 10대는 없을 것이다. 왜? 여드름이 나는 원인을 제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율학습과 보충수업은 정규수업만으로는 입시에 대비할 수 없기 때문에 최소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기 위해 학교 당국으로서는 최선의 현실책으로 선택한 것이다. 이것은 평준화되면서 과거 3류학교에서 먼저 시작된 것이다. 학습 능력이 뛰어난 학생들이 대거 들어오면서 가슴이 벅차게 된 학교가 정말 의욕적으로 무지막지하게 스파르타식 교육을 시켰더니, 비교육적인 면도 많았지만, 결과적으로 엄청난 효과를 거두면서 언론의 각광을 받게 되었다.
  
   그 후 이들의 방식이 전국적으로 요원의 불길처럼 번져갔던 것이다. 희망 학생만 하면 되지 않느냐고 하지만, 그것도 현실적으로 꼭 들어맞는 말이 아니다. 입시 자체가 무차별적이고 획일적인 것이어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도 부유층 자제들이 사는 학군을 제외하고는 그런 식으로 하는 게 제일 효과적이다.
  
   반에서 60명되는 학급도 대여섯 명만 빠져도, 선생님이 왠지 힘이 빠지고 학생들도 자꾸만 그 쪽 자리를 힐끔힐끔 바라보게 된다. 이윽고 한 학생이 죽을상을 하고 선생님께 오늘 한 번만 봐 달라고 한다. 마음씨 좋은 선생님은 이 수에 대부분 넘어간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이렇게 조금만 선생님이 사정을 봐 주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그 학급은 무너진다. 놀면 같이 놀고 공부하면 같이 공부하길 좋아하는 게 우리의 심성 중 하나인지도 모른다.
  
   정부에서 아무리 성적 위주로 학생을 선발하지 않겠다고 해도 학부모는 믿을 수 없다. 특기 적성이란 게 황당하기 그지없어서 학생들 잡는 수단밖에 안 된다. 게다가 수행평가라는 괴물까지 등장해서 학생들은 죽을 맛이다. 학원을 한두 개 더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경제 사정이 넉넉하고 교육 수준이 높은 학부모는 쾌재를 부른다. 심지어 그들은 전국 대회를 후원하여 자기 자식을 전국 우승시킬 수도 있다. 고액과외 쯤이야 아무 것도 아니다. 잠재적인 경쟁자가 대폭 탈락하여 더 잘되었다고 생각한다.
  
   이젠 가난하면서 머리 좋은 학생은 공부 잘하기가 무척 힘들게 되었다. 저렴하게 학교에서 자율학습과 보충수업과 모의고사로 이들을 조금씩 단련하면 자기도 모르게 성적이 올라갔는데, 이제는 이것이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정부의 정책을 아예 무시하고 학생들을 더욱 다그치는 지방 명문고가 살 판이 났다. 전국 석차가 거의 환상적으로 오른다.
  
   결국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는 정책이 도리어 가난한 사람의 신분 상승 기회를 박탈하는 정책으로 둔갑하게 되었다. 부의 세습만이 아니라 지식의 세습까지 이루어질 판이다.
   서구에서는 말은 그럴 듯하게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 귀족의 의무)라고 하여 가진 자가 엄청난 돈을 들여 최고의 교육을 받게 해 놓고는 마치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부와 지식과 도덕을 얻는 것처럼 호도하고 있지만, 그것은 속임수에 지나지 않는다.
  
   서민들에게는 그런 좋은 교육 기회가 아예 주어지지를 않는다. 집은 학교보다 더 열악함에도 불구하고, 집에서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고 우기지만, 이 말은 부자들이, 중산층이 자기도 그렇게 자식을 내팽개치지 않는 한 아무 설득력이 없다.
  
   그것은 자유라는 교묘한 이데올로기로 평등을 짓밟는 행위에 지나지 않는다.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극소수의 예외를 가리키며 자기하기 나름이라고 강변하면서, 더욱 자기의 기득권을 교육을 통해 교묘하게 세습시킨다.
  
   돈이 아무리 있어도 명문 사립고가 없어서 보낼 수 없는 한국의 학부모는 부와 지위와 지식을 세습하기 위해 고액과외를 택했다고도 볼 수 있다. 고액과외를 탓하기 전에 등록금을 많이 내고 교육을 확실히 시켜주는 학교를 허용해야 한다. 만약 미국에 돈이 천문학적으로 드는 명문 사립고가 없다면, 모르긴 해도 우리 나라는 감히 쳐다보지 못할 정도의 고액과외를 시킬 것이다.
   세기의 천재인 볼테르, 루소 등이 과외 교사였던 걸 상상해 보라. 귀족과 왕족은 당대 최고의 석학들을 가정 교사로 부려 먹었던 것이다.
  
   이제 헌법 재판소에서 과외가 불법이 아니라는 최종 결론이 났다.
  어떻게 할 것인가. 또 막기만 할 것인가.
   문제는 정면으로 풀어야 한다. 원인 치료를 해야 한다. 지난번에 주장한 대로 입시 과목을 네 과목 이내로 줄이고 이들을 각기 100점 만점으로 하여 학생들의 입시 부담을 대폭 줄여 주어야 할 것이다. 수능을 9등급으로 한다니, 성적이 아닌 방법으로 학생을 선발한다느니라는 선무당 사람잡는 짓은 제발 그만 두어야 한다. 그런 식으로 하면 부자만 더욱 확실하게 자식을 부자로 만들게 된다.
  
   또한 최소한 교사 임용고사에 합격한 유능한 학교 교사를 활용하고 노는 학교 교실을 이용하여 수당도 현실화하고 한 교사로부터 보충 수업 받는 학생수도 대폭 줄여서 학부모의 경제 부담도 줄여 주고 학생의 실력 향상도 꾀하는 쪽으로 나가야 할 줄 안다. 모의고사도 일 년에 4번은 볼 수 있게 허용하여 학생들이 항상 긴장한 상태로 공부할 수 있게 하여야 한다.
  
   공부밖에 모를 것 같았던 아인슈타인도 공부가 좋아서 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다. 스스로 알아서 공부하라고 내버려두면 90%의 학생은 알아서 공부하지 않고 알아서 머릿속이 다 빌 때까지 논다.
  
   이불 속에서 상상한 이론으로 현실을 개탄하지 말고, 가난한 학생의 집에 가 보고 학교 현장에 최소한 1년은 근무해 보고, 하다 못해 구경이라도 해 보고 현실에 바탕한 공교육 정상화로 교육의 큰 물줄기를 잡기 바란다.
   --계속-- (2000. 4. 28.)
  
  
[ 2006-06-17, 23:02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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