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의 근심, 박주영
냉정히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고 자신의 강점을 살리면, 유연성과 융통성이 떨어지는 알프스의 용병들이 요들송을 부르며 고향 앞으로 돌아가게 만들 수가 있다.

최성재     필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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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근심, 박주영
  스위스가 2006 월드컵에서 G조 1위로 16강에 올라갈 가능성이 높다. 그런 스위스가 호기심인지, 자신감인지, 음모인지 2005 청소년월드컵에서 스위스의 어린 용병을 상대로 그라운드를 누볐던 박주영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다.
  
   기대 이상의 선전을 거듭하고 있는 아드보카트(안복환)호는 아직 박주영 카드를 뽑아들지 않고 있다. 스위스전에서도 박주영이 선발 출장은 힘들 것 같고 후반에 교체 선수로 뛸 것 같다. 4-4-2 포진에서 조재진이나 안정환의 뒤를 받쳐주는 섀도우 스트라이커(shadow
  striker) 역할을 맡을 듯하다. 박주영은 평가전에서 이천수와 교체되는 수가 많았지만, 측면 돌파 능력이나 수비 가담 능력이 토털 축구의 신봉자 안복환의 기대 수준에 못 미쳐 붙박이 선수가 되지 못했다. 입이 무거운 안복환이 지휘봉을 쥐고 있는 한, 3-4-3, 또는 4-3-3 어디에도 박주영이 주전으로 뛰기 힘들다.
  
   태극전사의 고질병 중에서 선천적인 요소는 체격과 체력이다. 다행히 체격은 30년에 걸친 세계최고의 경제성장률로 온 국민이 배부르게 먹게 되자 급격히 향상되었다. 거기에 프로 축구의 정착과 히딩크(희동구)의 담금질로 덩치에 걸맞는 체력도 갖추게 되었다. 탁월한 투지에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는 끈기가 덧보태지면서 체력은 세계정상급으로 올라섰다. 이 체격과 체력을 바탕으로 전 선수가 상대보다 한 발씩 더 뛰어 부족한 기량을 협력수비와 파상공격으로 조직력을 극대화하여 웬간해선 잘 지지 않는 팀으로 변모했다. 마지막으로 한국인 특유의 신바람이 더해지자, 아무리 생각해도 꿈만 같은 일이 벌어졌다. 단숨에 월드컵 4강으로 우뚝 섰던 것이다.
  
   2002 월드컵에서 휘날리는 태극기를 향해 꽃을 뿌린 팀과 막 울려 퍼지려던 애국가에 소금을 뿌린 팀들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다. 폴란드, 포르투갈, 스페인, 이태리--이들은 한국을 막 사춘기에 접어든 개나 하룻강아지 취급했지만, 하나하나 그라운드에 통한의 눈물을 뿌려야 했다.
  
   폴란드는 체격 조건이 한국보다 나았다. 그러나 오랜 공산독재와 배고픔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그들의 체력은 한국보다 떨어졌다. 그리고 나머지 지중해연안 국가들은 라틴계열로 한국보다 체격이든 체력이든 나을 게 없었다. 기량이 한두 수 떨어지는 건 틀림없었지만, 혹독한 훈련으로 뛰고 또 뛰어도 지치지 않고, 희동구식 과학적 전술로 기회를 만들고 또 만들다가 마침표를 콕 찍고 상대에겐 무수한 쉼표만 허용하는 것으로 희동구의 어퍼컷 신호에 맞춰 5천만이 태극기를 휘날리며 애국가를 열창했던 것이다. 2006 월드컵에서 프랑스에 극적으로 비긴 것도 선수들의 피부 색깔이 많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들이 기본적으로 지중해 연안 국가군에 든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라인강만 건너고 알프스만 넘으면 풍경은 싹 달라진다. 거기엔 덩치가 지구상에서 제일 큰 게르만족이 살고 있다. 2002 월드컵에서 한국은 ‘옛 영광’으로 그라운드를 호령하던 독일의 전차군단에겐 맥도 추지 못했다. 그들의 월등한 체격과 체력, 그리고 한국 이상의 조직력, 한국보다 여전히 한 수 위인 기량 등에서 도저히 어떻게 해 볼 수가 없었던 것이다. 결과는 1:0이었지만, 그것은 숫자였을 뿐 사실상 완패였다. 4강에서 맞붙은 터키는 우리와 같은 우랄 알타이계이지만, 그들은 혼혈이라 거의 서구화되었다. 체격조건이나 체력이 우리보다 나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50년대 공포의 대왕 헝가리처럼 같은 우랄 알타이 계통으로 유라시아 초원을 말 타고 달리던 호쾌한 속도전을 펼쳤다. 거기에 유럽의 프로축구를 초토화시키기 일보 직전까지 갔던 막강 화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한국의 또 다른 약점은 기량과 유연성 부족이다. 남미는 체격이나 체력, 조직력 어느 것 하나 유럽에 상대가 안 된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시간과 공간을 절묘하게 이용하는 기량과 유연성이 있다. 이로써 그들은 유럽과 사이좋게 세계축구계를 양분하고 있다. 한국이 남미 축구와 맞붙으면 실속 없이 열심히 뛰어다니기만 한다. 그들이 다람쥐 같은가 하면 이리 같고 여우 같은가 하면 미꾸라지 같기 때문이다.
  
   한국에 갑자기 박주영이 나타났다. 브라질로 축구 유학을 떠나 익힌 그의 기량과 유연성은 군계일학이었다. 거기에 독일의 전설적 골 게터 뮐러를 연상시키는 영리함까지 갖췄다. 호들갑스럽게 일제히 겨우 스무 살의 박주영에게 축구 천재라는 별명을 붙였다. 문제는 이내 조용히 다가왔다. 대한축구협회는 번갈아 청소년대표 팀과 월드컵대표 팀으로 그를 불러들여 그에게 해결사 역할을 맡겼던 것이다. 놀랍게도 양쪽을 오가며 승승장구! 그러나 그는 역시 뼈와 살을 가진 인간이었다. 결정적인 순간, 축구 천재는 스위스와의 대전에서 체력이 고갈되어 허둥댔다. 그에게 쏠리던 카메라의 줌은 사라지고, 그에게 몰려들던 유럽 스카우터의 발길은 뚝 끊겼다. 이 때 그를 유심히 본 사람이 핌 베어벡, 희동구의 조련사이자 안복환의 조련사였다. --별 것 아니네!
  
   알프스 치즈로 다져진 십자가 전사의 덩치를 김치와 고추장으로 젖 먹던 힘을 끌어올리는 태극 전사의 깡다구가 당해내는 것은 무리다. 방패도 방패지만, 창이 너무 무디다. 다행히 여기 한 때 부상에 시달리다가 제2의 이동국이 되지 않고 체력과 승부욕을 회복한 박주영이 있다. 그 뒤에는 주몽의 화살을 들고 게르만족 숲을 헤집고 다닌 박지성과 이영표가 있다. 설기현과 안정환도 있다. 충분히 해 볼 만하다. OP(관측소)에는 망원경으로 지켜보는, 치밀하고 냉혹한 안복환이 손가락 호루라기를 입에 대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다.
  
   기량과 유연성은 수준급이지만, 사기 저하와 훈련 부족으로 조직력이 와해된 아프리카의 토고에 역전승한 것은 장하나 한국은 몰라도 세계를 열광의 도가니로 몰아넣을 만한 일은 아니다. 같은 아프리카 팀이라도 가나처럼 기량과 유연성에 조직력을 갖춘 팀에게는 태극 전사는 헛발질하기 일쑤다. 태극전사의 수준은 아직 이 정도이다. 그러나 냉정히 자신의 약점을 파악하고 자신의 강점을 살리면, 슬쩍 부딪쳐도 상대가 나동그라지는 통뼈에 반 수 위의 기량과 냉철한 머리 그리고 만만찮은 조직력을 갖췄지만, 유연성과 융통성이 떨어지는 알프스의 용병들이 요들송을 부르며 고향 앞으로 돌아가게 만들 수가 있다. 그러면 5천만이 일제히 동방의 새벽을 깨우리라. 대한민국!
  
   (2006. 6. 23.)
[ 2006-06-23, 14:03 ] 트위터트위터  페이스북페이스북   네이버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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